유모어의 한국학

지효지호(至孝知虎)/철송낙제(撤訟落梯)

如岡園 2018. 7. 9. 16:12

          # 지효지호(至孝知虎,지극한 효성을 호랑이가 알다)

 안협(安峽) 민가에 여인이 있어 나이 십 칠 세에 이천(伊川) 농부의 집으로 시집가서 시집간지 몇 달 되지 않아 그 남편이 병사하였다.

 남편의 집엔 별로 아들 딸이 없고 자못 시어머니 한 분이 있을 뿐이었는데 늙고 또한 눈멀었었다. 여인의 부모와 이웃사람들이 그의 일찍 과부가 되어 의지할 곳 없음을 불쌍히 여겨, 다 권하여 다시 시집가라 하거늘, 여인이 듣지 않고 가로되,

 "인간의 길이란 한 번 더불어 성혼하였으면 죽을 때까지 고치지 않음이니 하물며 내가 비록 개가하려고 하나 이 의지없는 시어머니를 두고 가면 하느님이 반드시 싫어하리니, 내 참아 할 수 없도다." 

하고, 이리저리 품팔이한 값으로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더니.

 이와같이 하기를 십 년에도 고향에 돌아갈 줄 모르거늘, 여인의 친정 어머니가 그 과부로 늙고 가난에 쪼들리는 딸을 불쌍히 여겨, 그 자식을 시켜 딸에게 편지케 하고,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여 한 번 보고 죽겠으니 오라."

한데.

 여인이 부득이해서 시어머니에게 고하되,

 "건너 마을에 굿이 있어, 와서 구경하라 하니 이제 잠간 가 보고 곧 돌아오리다."

하며 그의 손을 이끌어 가리켜 가로되,

 "밥은 여기 있고 물은 저기 있으니, 마땅히 배 고프시고 목 마르시면 마시고, 또한 잡숩고 나를 기다리소서."

하니, 시어머니가 가로되,

 "모름지기 속히 돌아오라. 오래 있지 말고."

 며느리가 공경히 그렇게 하마 하고 본가에 와서 보니, 어머니는 아무런 병이 없는지라 여인이 놀라 가로되,

 "제가 어머니 병이 위독하다고 해서 부득불 왔지만, 이렇게 앓지 않으시는 것을 알았더라면 어찌 왔겠습니까?"

 "네가 어찌 시어머니에겐 후하고 친정 어미에게 박하단 말이냐?"

하고 어머니가 노해 말하니,

 "그럴 리가 있으리까. 어머니는 아들 딸이 있어 봉양할 수 있지만, 저의 시어머님이야 하루라도 제가 없으면 그 생을 부지하기 어려우니, 어찌 가히 불쌍하지 않으리오."

 "네가 그렇다 하면 장차 그 집 귀신이 되겠느냐?"

 "자못 제가 참아 남편의 집을 저버리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뜻은 대개 그가 온 것을 인해서 그의 뜻을 돌리고자 함에 있었던 것이어서, 좋은 말로 위로해 주고, 닭을 삶고 개를 잡아 그 딸에게 먹이고자 하니, 여인이 먹지 않고 그 고기를 싸거늘 어머니가,

 "무엇을 하려고 그러느냐?"

 "장차 시어머니께 드리고자 해서 그럽니다."

 "마땅히 배불리 먹으라. 어찌 시모만을 생각하리오."

하고 어머니가 웃으며 말한즉, 여인이 그 어머니의 뜻을 알고 일부러 말하되,

 "제가 여러 해 보지 못한 사이에 잠간 친척을 보고 정담이나 한 다음 오겠소."

 하고 가만히 고기 등속을 가지고 남편의 집으로 향할쌔, 상거가 오십 리나 실히 되는지라, 어두운 저녁에 출발하여 반 마장도 오지 못하였는데, 달이 푸른 등나무 고목 사이에 비추이는데 멀리서 한 짐승이 뛰어옴이 호랑이나 표범 모양인데 돌아갈 마음이 화살 같았으나 시가를 잊을 수 없어 두려워하지 않고 걸어가며 자세히 보니 시집 늙은 개였다. 여인이 기뻐 탄식해 가로되,

 "밤중 협로에 나를 맞이하는 자는 너뿐이라."

하고 개와 함께 집에 돌아오니 시어머니가 잠자지 않고 고대하고 있다가 가로되,

 "왜 늦게 왔느냐? 왜 늦었느냐?"

 "구경에 미쳐 이렇게 늦었습니다."

하고 그 고기를 바치니, 시어머니가 바야흐로 따뜻한 물을 청하매, 며느리가 부엌에 불을 넣기 위하여 본즉, 함께 온 것은 개가 아니라 호랑이었다. 마음에 저윽이 괴상이 생각하였는데, 이튿날 아침에 호랑이가 짐짓 이웃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바라보고 가거늘, 이웃사람들이 비로소 그 이유를 알고 함께 탄식해 가로되,,

 "효성스럽도다 이 며느리여! 지극한 효행이 아니면 어찌 이와 같은 기적이 있으리오."

하고 그 일을 관가에 올려 고하여 그를 크게 포창하였다.

                                                                  <破睡錄>


          # 철송낙제(撤訟落梯,사다리에 떨어져 송사를 철함)

 양주에 최씨가 세 딸을 두었는데 일찍 부모를 잃고 그의 오빠 최생(崔生)을 의탁하여 살거늘, 최생이 재물에 인색하여 그 누이들을 시집 보내지 않으니 그 맏누이는 나이 이십 오요, 가운데가 이십 이요, 끝이 십 구이니 스스로 울면서 꽃다운 나이를 보낼 뿐이러라. 

 마침 따뜻한 봄날을 당하여 세 딸이 집 뒷뜰에서 놀더니 그 맏딸이 가운데 딸을 보고 가로되,

 "뒷뜰에 아무 사람도 없는지라 너희들과 우리, 태수놀이 한 번 해 보자." 하며,

 드디어 스스로 태수라 일컬어 비껴 세워 둔 부러진 사닥다리 위에 걸터앉아 가운데 딸을 보고 형리(刑吏)라 명하고, 끝의 딸로 최생이라 하여 그 머리를 끌어 앞에다 엎어 놓고 수죄하여 가로되,

 "너희 세 누이가 이미 부모를 잃고 너를 아비와 같이 믿되, 나이 이미 출가할 때를 지나도 네가 시집 보내지 않음은 어쩐 연고뇨? 너의 조업(祖業)이 넉넉하고 논밭과 집이 그만한 데다 하물며 너의 누이 자색(姿色)이 함께 아름다와 이웃 마을에서도 칭찬하는 이가 많음에랴! 너의 죄는 마땅히 볼깃감이니 빨리 잡아 대령하라."

 그 막내가 재삼 머리를 조아리며 가로되,

 "난후(亂後)에 집안이 패하여 혼구(婚具)를 갖추기 힘들며, 양반을 가리고자 하나 가합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내가 혼사지내 주지 않고자 함은 아니외다."

 맏딸이 가로되,

 "너의 말은 거짓이다. 난후에 가패라 하나 난리를 겪은 자는 함께 시집보낸 것도 폐하느뇨? 한 사람도 가합한 이가 없다 하나 그러면 딸 있는 이는 모조리 다 헛되이 늙는단 말이냐? 만약 가로되 집안이 패하였다 하나 혼수(婚需)는 집안 형편에 따라 하면 되며, 만약 적합한 이가 없다하면 건너편 김생원의 아들이라도 또한 가하지 않으냐?" 

하였다. 

 때에 관가의 매사냥꾼이 매를 쫓아 뒤뜰 울타리에까지 왔다가 그 말을 듣고, 몰란 겨를에 소리를 내어 웃으니, 세 딸이 크게 놀라 달아나 흩으지매, 맏딸이 사다리 아래에 떨어져 그 다리가 상했다.

 매사냥꾼이 관아(官衙)로 돌아가매 길에서 한 사람의 행객을 만나서 물어 가로되, 

 "그대가 관인(官人)인가?"

 "그러하다."

 "태수가 있는가?"

 "계십니다만 다못 오늘에 실족(失足) 낙상(落傷)한 고로 내아(內衙)에 들어가 조리하고 계십니다."

 객이 부중(府中)에 들어간즉, 태수가 바야흐로 동헌(東軒)에 나와 앉았거늘 객이 물어 가로되,

 "그대의 낙상을 들었는데 벌써 나으시어 일을 보십니까?"

 "내가 어디서 낙상했겠소? 그 말은 어데서 들었소이까?"

 길가에서 관응수(官鷹手)에게 들었소이다."

 턔수가 괴상하여 매사냥군을 잡아다가 물으니, 사냥군이 함께 세 여인의 말을 고해 가로되,

 "백녀(伯女)가 자칭 태수라 하여 사다리에 앉았다가 낙상한 연고로, 이 나그네를 만나 웃음에 장난삼아 대답했소이다."

 태수가 객으로 더불어 박장대소하고 곧 명하여 최생을 잡아 오라 하여 물어 가로되,

 "네가 세 누이를 거느리며 나이 차도 시잡보내지 않으니 마땅히 그 죄가 있는지라."

하고 드디어 매를 때린즉, 최생의 대답이 한결같이 그 막내누이의 말과 같거늘,

 태수가 또한 맏딸의 말로써 순차로 말하여 꾸짖어 가로되,

 "건너편 김생의 아들이 또한 옳지 않으랴?" 하여,

 즉일로 길일을 택하여 혼수를 주어 성례(成禮)케 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웃음얘기로 전해 오는 것이다.


야사씨 가로되, 

크면 머리얹어 시집 감은 인간의 윤리라 어찌 써 가히 가난하다 하고 또 사람없다 하여 이를 폐하리오. 세 여인의 사사로운 송사가 비록 정정(貞靜)의 절개는 아니나 남몰래 서방질을 일삼는 데다 비하면 오히려 낫다 하겠다. 연고로 장난으로 인하여 성혼하여 드디어 그 소원을 이루었으니 또한 가히 이르되 가짜를 농하여 진짜가 되었다 할 것이다. 

                                                                                                                                  <冥葉志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