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심리학

마음의 안정-방위기제/마음에도 없는 일을 한다(반동형성)

如岡園 2018. 2. 23. 12:39

     복종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원 맨 회사라는 것이 있지만 이런 회사의 사장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사장의 명령 하나로 대개의 일은 즉각 실행된다. 사원은 사장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정말 통제가 잘 되어 있어서 원만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반대로 사장의 독재가 통하지 않는 회사는 사장이 만사를 처리해 나갈 수 없으니까 중요한 일은 중역 회의의 결의를 거치게 되어 때로는 견해가 백출해서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장의 의견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중역이 물론 있다.

 이런 두 회사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누구라도 원 맨 회사 편이 통제가 있어서 잘 되어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사원의 입장에서 보면 합의제의 회사가 훨씬 잘 되어가고 있는 일이 적지 않다.

 원 맨 회사의 사원이  복종하는 척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사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서의 복종이 아니라 사장이 무서우니까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심과는 반대로(반동형성) 복종하는 척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약 이런 원 맨 사장이 죽기라도 하면 그런 회사는 통제가 되지 않는다. 가령, 사장의 아들이 사장 직을 이어가려는 경우 지금까지 사장의 눈치만을 살피던 중역들이 단연 반기를 들고 자기들의 지위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하여 십중팔구 집안 싸움이 벌어져서, 이 때문에 회사의 운영은 정지될 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역이나 사원의 의견을 존중해서 그 기구에 의해서 움직여 왔던 회사는 사장이 죽어도 거의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회사의 통제는 문란해지지 않고 사무는 순조롭게 인계될 뿐이다.

 그러니까 사원에게 마음에도 없는 아첨을 하게 하거나 절대 복종을 강요하는 원 맨 회사는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마는 실상은 아주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원이 모두 반동형성(反動形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심과는 딴판으로 행동하는 것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질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심과는 반대로 가장한다

 사람은 날 때부터 모두 제멋대로 하기를 좋아하며 또 갖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런 욕망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드러냈다가는 크게 위험하다.

 그러니까 사장한데 벼락을 맞고, 이 녀석이 싶어도 그런 표정은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지극히 죄송(반동 형성)한 얼굴을 하며 미움을 사지 않도록 한다.

 또 원래 성욕이 강한 사람은 여성에 대해서는 강한 성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런 욕망을, 자리를 가리지 않고 아무데서나 충족시키려 들다간 스스로 파멸해버릴 테니까 그런 욕망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무엇으로 단단히 속박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정조나 순결을 내세우며 자타가 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한다.

 날때부터 인색한 사람도 그것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남들로부터 조롱을 받고 멸시 당한다. 그래서 때때로 후하다고 여겨질 만한 행위(반동 형성)를 한다.

 이처럼 반동 형성은 욕망이 많은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가 지닌 바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날 위험이 있을 때 그것과는 도리어 반대되는 행위를 해서 잘 봐 주었으면 하는 동기에서 행하여진다.

 따라서 반동 형성은 인간에게는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기능이라고도 하겠다.

 그러나 거짓말을 방편이라고 하지만 거짓말은 어디까지나 거짓말이지 참말은 아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죄 많음을 은폐하는 것이거나, 아무리 공손해도 그것이 무례를 가리고 있거나 아무리 정조관념이 강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음란의 반동 형성이면 남들로부터 참된 존경도 얻지 못할 것이며, 그 사람 자신도 진보하지 않는다.

 도리혀 그런 허식에 빠져 있다가는 생각지도 않던 계제에 결점이 드러나서 수치스러운 변을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이런 반동 형성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고 있는 본인은 자기는 경건하다거나 공손하다거나 용기가 있다고 굳게 보고 있지만, 실은 반동 형성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면 마지막이며 고칠 도리가 없다. 


     자기 관찰에 겸허하라

 사람이란 아무튼 자신의 추한 점이나 약한 점을 똑바로 정시하기를 싫어한다. 이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자기는 좀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렇게 하여 반동 형성이 행하여지는 것이므로 반동 형성을 한다는 것은 본능적인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의 실체를 잘못 보게 되면 그 결점을 고칠 기회를 놓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자기를 실력 이상으로 과대 평가하게 된다.

 부자집의 호강하던 아들이 덮어놓고 이것 저것 사업에 손을 대다가 재산을 몽땅 잃어버리는 일은 적지 않다.

 이런 것도 자기 관찰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동적으로 자신을 유능한 인물로 만들어 보고 싶어서 여러가지 일을 하지만, 원래 이것이 본인의 과대 망상이니까 잘 될 이가 없다.

 재산을 송두리채 잃어버리고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게 되어서 비로소 눈을 뜨고 자신의 사고 방식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다. 눈을 뜨는 것은 차라리 아직 실패하기 전이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은 자신의 실체가 과연 어느 정도이며 자신의 본심은 과연 어디 있는가 하는 자기 관찰을 끊임없이 행하고 있어야만 한다.

 나는 정말 용기가 있는지 어떤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소심하기 때문의 반동 형성은 아닌지. 나는 남들로부터 인심 잘 쓴다고 칭찬을 듣지만 인심을 쓰는 것은 본심이 아니고, 반대로 너는 인색하다는 말을 듣기가 두려워서 반동 형성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와같이 칭찬을 받았다고 좋아하지만 말고 비록 싫드라도 자신의 결점을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가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결점을 정시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이며 결점을 알고 있음으로 해서 그것을 수정하여 존경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대개 자기 관찰이 철저치 못한 점에 그 원인이 있다.

 전술의 요체는 적을 알고 나를 안 연후에 병마를 움직이는 데 있다고 하지만, 자기 관찰이 철저치 못한 사람은 우선 나 자신을 잘못 판단하고 있다.

 이런 사람은 또 적(敵), 다시말하면 상대편이나 일의 난이(難易)에 관해서도 대개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따라서 실패하는 일이 허다하다. 

 반대로 자기 관찰에 겸허한 사람은 일에 대한 관찰도 신중하다. 그러므로 터무니 없는 실패 따위를 할 위험은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다. 

 어릴 때는 반동 형성은 자기 방위의 유력한 무기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특히 본능적이니까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대로 해서 남과 충돌하거나 혼이 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쌓아 감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반동 형성의 방식을 터득해 간다. 싫은 사람이라도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어떻게 잘 해나가게 된다.

 그러나 차츰 커 감에 따라서 반동 형성을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가를 잘 인식해서 그런 반동 형성을 제거했을 경우의 자기의 정체를 잘 파악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성공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