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마르쿠스아울레리우스의 명상록(죽음에 대하여)

如岡園 2019. 11. 7. 16:55

 당신의 불행은 남의 지배적인 원리 속에 있는 것도, 그렇다고 당신의 환경이 변한데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럼 그 불행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불행이 무엇인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당신의 능력 속에 있다.

 그러므로 그 능력으로 하여금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하라. 즉 악인이나 선인에게 한결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라고 판단하게 하라. 왜냐하면 자연에 위배되는 생활을 하는 자나, 자연에 부합되는 생활을 하는 자에게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은 자연에 합당한 일도 아니고, 자연에 위배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한다는 것이 사물에 있어서 나쁜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변화의 결과로 존속된다는 것이 사물에 있어서 좋은 일도 아니다.

 시간이란 이를테면 강-모든 생성되는 것으로 이루어진-이요, 격렬한 흐름이다. 어떤 사물이 보이는가 했더니 곧 흘러가 버리고, 다른 사물이 그 자리에 나타났는가 했더니 그것도 역시 떠내려가 버린다.


 후에 지속되는 것은 앞에 있던 것과 언제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사물이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나가 그것이 불가피하게 순서를 갖게 되는 경우와는 달리, 합리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댸문이다. 그리고 마치 모든 존재가.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듯이 생성되는 모든 것은 단순히 계속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놀라운 친화성(親和性)을 나타내고 있다.


 파도가 밀려와 끊임없이 부서져도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는 바위처럼 살라. 물이랑이 그 주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나는 얼마나 운수가 고약한가. 이런 변을 당하다니!ㅡ " 아니, 그 반대다. 오히려 "나는 얼마나 운수가 좋은가! 이런 변을 당해도 나는 슬퍼하지 않고 현실에 압도되지 않으며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같은 일이 만인에게 일어날 수 있지만 누구나 태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것은 불운하고 저것은 행운이란 말인가? 어느 쪽이나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데도 당신은 그 일을 불행하다고 말하는가? 그리고 당신은 인간의 본성의 의지에 위배되지 않는 일을 인간 본성의 실패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당신은 본성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 당신의 올바른 행실을 방해하는가?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자제심을 갖고, 현명하고, 사려깊고, 솔직하고, 겸손하고, 자유롭고, 그 밖의 이와 같은 덕을 가로막는가? 이런 덕을 갖추면 인간의 본성은 자기의 본분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당신을 비판으로 이끌어 가면 다음과 같은 신조를 잊지 말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장하게 참고 견디는 것이 행운이다."


 언제나 가까운 길을 가라. 가까운 길이란 자연에 순응하는 길이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일을 가장  건전한 이성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고난이나 싸움, 모든 농간과 야비한 허세로부터 당신을 해방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