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삼라만상에는 이름이 있다. 개념을 대표하고 사물을 구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름이 있다. 그 이름으로 사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 존재 가치와 자리매김까지 하게 된다.
지명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지어 부른 어떤 고장이나 장소에 관한 이름이다. 산, 강 등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환경, 사람들이 생활해 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 등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지명은 여러 가지 정보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하고,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들어 있기 때문에 총체적으로는 세상의 일을 알아가는 데도 한 몫을 하게 된다.
지명에는 그 고장의 생활 모습이 담겨 있고 지명을 통하여 그 고장의 역사를 알 수 있기도 하다.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은 '새서원'이라고 부른다. '황암서원'이라고도 하고 옆 동네까지를 아울러 '마암부락'이라고 하며 그 중심 골짜기 이름을 '사당골'이라 한다.
제멋대로 지어 부른 이름은 아니다. 여기서 '사당골'은 사당(祠堂)이 있는 골짜기의 이름이요, 황암서원(黃岩書院)은 황암사(黃岩祠)를 서원으로 잘못 알고 이른 말이며, 새서원은 새로 생긴 서원이 있는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지역 역사를 밝힌 <화림지(花林誌)>를 상고한 바, 현(縣)의 서쪽 1리에 황암사(黃岩祠)가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황암사는 정유재란 당시 황석산성 싸움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충절을 기린 사액(賜額) 사원(祠院)이고 그 사원이 있었던 골짜기 이름인데, 일제 때 일본 놈이 태워 없애버리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지명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명을 통해서 문화유적지를 확인한 실례이다.
지명 전설은 전해오는 이야기를 통해 지명의 유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자료이다. 지명 전설은 어떤 전설이 자리를 잡고 증거물을 고착시켜 제목처럼 단순화시킨 것과 그 반대로 본디부터 있는 지명이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전설을 퍼뜨리는 것이 있는데 어떤 유형의 것이거나 자기 고장의 역사 곧 지방사 연구가 되며 나아가 민족과 국가의 역사 연구가 될 수 있고 향토를 사랑하는 계기가 된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효양산에는 금송아지 전설이 있는데 지명을 공교롭게 활용하여 잘못된 외세를 배척하고, 인근 지명까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대표적 지명전설이다.1942년에 채록된 전설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천 읍내와 부발면 사이에 효양산이라는 산이 있다. 이 산 이름을 시양산이라고도 부른다. 이 산은 옛날에 마구할미가 금강산을 싸가지고 강원도로 가다가 조금 덜어뜨린 것이 것이 효양산이 됐다고 한다. 이 산에 금송아지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산에 금송아지가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고 신기한 일이어서 사람들은 이 산과 금송아지를 잘 받들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렇게 하면 풍년이 들고 위대한 인물이 나고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한 옛날에 대국왕(大國王)의 아들이 아침에 세수를 하려고 세수대에 물을 떠서 보니까 세수대 물속에 이천(利川)의 효양산의 금송아지가 비쳤다. 그리고 조선 땅에 서기가 비치고 풍년이 들고 위인이 나고 있어서 이것을 그냥 두었다가는 큰일날 것 같아서 효양산의 금송아지를 몰래 뺏어와야겠다 하고 신하를 데리고 조선으로 나왔다. 그래서 이천에서 한 30리쯤 떨어진 오천(午川)이란 곳에 왔다. 오천의 앞들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 보고, 효양산이 여기서 얼마나 머냐고 물었더니 농부는, 제일역을 지나서 오천역을 거쳐서 구만리 들을 다 지나서 억만리를 가가지고 억만고개를 넘어서 보름다리를 건넌 다음에 억억다리를 또 건너서 이천역을 지나야 효양산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농부는 효양산까지 가는 동네와 다리와 고개 이름을 말해주었는데(이 모두는 현실지명으로도 존재함)대국왕 아들은 그것들을, 午川역을 오천(五千)이나 되는 역으로 알고, 구만리들을 九萬里나 되는 넓은 들로 알고, 억만고개를 넘는다는 것을, 고개를 億萬이나 넘어야 하는 걸로 알고, 보름다리를 건넌다는 것을 보름 동안이나 건너는 긴 긴 다리를 건너야 하는 걸로 알고, 억억다리를 건넌다는 것을 다리를 억억 개나 건너야 하는 걸로 알고, 이천역을 지나야 한다는 것은 역을 2천이나 지나야 하는 것으로 알아서, 이렇게 먼 곳에 있는 효양산에를 가려면 한두 달이 아니라 몇십 년을 가도 못다 갈 것 같아서, 망단하고 저의 나라로 돌아갔다는 그런 말이 전해지고 있다." 는 이야기가 있다. (1942. 9. 岩本健 口述 / 任晳宰. 韓國口傳說話)
현실에 있는 지명을 활용하여 이만큼 구체성을 띠고 있는 지명설화의 예도 드물 것이다. 효양산에는 토성(土城)이 이 있고 효양산(孝養山)이란, 화살 맞은 사슴이 달려와 살려달라고 서신일에게 쫓아왔음을 의역한 산 이름이다. 孝의 뜻이 '逐夜順於道'의 뜻도 있으니 이는 바로 사슴이 '道'를 좇는다는 소리이다.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준 초부(樵夫)의 이야기는 고려 때 이제현의 <역옹패설>에 문헌자료로 잘 남아 있다.
이 효양산 아래 쪽 복하천 근처에 있는 큰바라기 산과 작은바라기산은 이 지역 백성들이 세종대왕 왕릉행차를 바라보았던 크고 작은 산 이름이란다. 가식이 없는 토박이 산 이름이다. 이천시 율면 산성리 돌원마을은 예로부터 돌이 많아 '돌원'인데 신미양요 때 광성진에서 순국한 어재연 장군이 태어난 마을이라 유명해졌다.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의 도드람 산도 전설이 담긴 산 이름인데, 이것은 돝울음 산의 통속발음이다. 저명산(猪鳴山)으로 개명되기도 했는데, 왜정 때 이런 지명의 개명을 학계에서는 창씨개명에 버금가는 창지개명(創地改名)으로 인식하여 꺼려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고유의 우리말 식 지명들이 이렇게 하여 한자명으로 바뀐 것은 부지기수이다. 돝귀동이 저이동(猪耳洞), 돝골이 저곡(猪谷)으로 바뀐 것도 같다.
통영(統營)이 충무(忠武)로, 충무가 또다시 통영으로 , 이렇게 정치성과 지방색의 대립으로 지역명이 개미 쳇바퀴 돌듯 한 곳도 있다.
고장의 이름은 고장의 특성과 내력을 담고 있어서 지명을 통해서 그 고장의 과거를 알 수 있기도 하다.
장승배기는 장승이 있었던 동네요, 말죽거리는 말에게 죽을 끓여 먹었던 곳, 향교리는 향교가 있었던 동네 이름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해지는 머리라서 두물머리, 두 물줄기가 만나 흐르는데 있는 동네라서 양수리다. 정릉동은 왕비의 묘 정릉이 있는 동네, 흥선대원군 때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던 산마루가 절두산(截頭山)이다.
참으로 지명의 나열만으로도 인간사 세상사의 한 흐름이 엮어진다.
을해년(乙亥年) 돼지해에 땅이름학회에서 돼지 관련 지명 2천 개를 조사한 것이 이채롭다. 돼지는 복운(福運)을 가져다준다는 속신(俗信)이 있어 관련지명이 많았단다.
그 중에서 돼지골이 가장 많아 82곳, 도야지배미 11곳, 돼지고개 10곳 등의 순서로 통계가 잡혀가는데 가장 긴 지명이 '도야지둥구러죽은골'이란다. 한국적 해학이 배어 있는 이름이라 정겹다.
지명이 지질적 상황을 암시하여 그를 통해 자원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부곡(釜谷)이다. 뜨거운 물, 온천이 있어서 '釜谷'이었던 것이다.
지명이 현재의 상황과 일치하는 예언 지명도 많다. 지명의 예교성(豫敎性)이나 상징성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회도 있다.
영종도(永宗島)의 토박이 땅이름은 제비섬[紫燕島], 제비는 비행기, '永宗'은 긴 마루 곧 활주로, 그리하여 국제공항이 되었다. 충북 청원의 飛上里[새오름] 飛下里[새내림]는 운기(運氣)가 달려서 국제공항에서 밀려났나?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가 된 서해 굴업도(堀業島), 위성관제소가 있는 경기 용인의 운학리(雲鶴里)[구름 위로 오르는 학]는 모두 그런 운명의 땅이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지명은 우리 민족 우리 조상들의 멋과 사연을 담아 지어지고 불리어져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길 21호. 2017.12.11. 如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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