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는 사람이 의지해 짚고 다니는 것, 즉 걸음을 도우려고 짚는 막대기를 이른다.
주로 승려나 노약자가 사용하는 도구로 노인의 상징처럼 되고 보니, 노인은 연륜으로 인해 사려가 깊고 지혜로워서 노인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도 그 연륜과 비교되어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외연을 넓혀 갔다.
그리하여 지팡이는 존경과 권위의 상징 나아가서는 신통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바리공주가 약을 구하러 서역으로 갈 때 짚고 간 무쇠지팡이는 한 번 짚으면 천 리, 두 번 짚으면 2 천 리, 세 번 짚으면 3천 리를 가 신통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모의 상을 당했을 때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다. 당금애기의 아들들이 대나무 밭에서 아버지를 찾자 대나무들이 네 아버지가 죽거든 대나무로 상주(喪主) 막대를 해 주면 3년간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는 설화로 인해 부모(父母) 상(喪)에 대지팡이를 짚게 된 것이다.
곳곳의 사찰에 유명 대사(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거목이 되었다는 전설 등등의 지팡이는 석장(錫杖)이다.
크리스트교의 하느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명하고 그 증거물로 지팡이를 주었다. 모세와 아론은 이로써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이런 경우 지팡이는 지도자나 신의 위력을 나타내는 권위의 상징인 것이다.
이런 것들과는 별도로 소박한 의미에서의 지팡이는 기댈 곳 없는 삶의 의지처(依支處), 노년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벗을 상징한다.
"늙고 병든 중에 가빈(家貧)하니 벗이 없다/ 호화로이 다닐 제는 올 이 갈 이도 하도 할사/ 이제는 삼척(三尺) 청려장(靑藜杖)이 지기(知己)론가 하노라"
조선 후기의 시조 작가 김우규(金友奎)는 외로움을 달래 주는 지팡이를 이렇게 찬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현실적인 지팡이의 의미는 노구(老軀)의 의지물(依支物)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노구(老軀)를 지팡이에 의지하며 걸어 가는 풍속도에는 신비로움이 깃든다. 연륜의 때가 묻어 서글프면서도 삶의 중심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여서 경외감(敬畏感)에 사로잡힌다.
중국 <拾遺記>에 청려장을 짚고 한밤중에 찾아온 노인의 고사 전승으로 효도를 표상하게 된 청려장으로 대표되는 지팡이 문화는 어른이 지니는 존경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예로부터 어른의 나이 50에 이르면 자식이 아버지께 가장(家杖)을 만들어 드렸고, 60에 이르면 고을에서 향장(鄕杖)을, 70세에는 나라에서 국장(國杖), 나이 80에 이르면 조정에서 임금이 조장(朝杖)을 내렸단다.
현대에 이른 지팡이의 의미와 기능은 사뭇 달라져 있다. 스포츠 용품으로서의 기능과 접목 되면서 신비감을 상실하고 노구의 의지물이라는 의미에 있어서도 허다한 의료보조 기구에 밀려났다. 지게 작대기로 쓰일 일도 없어지고 등산 스틱이 판을 치고 있으니 예스런 노인의 지팡이는 설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필자가 유독 청려장(靑藜杖)에 관심이 쏠렸던 것은 사라져 가는 전통 문화에 대한 아쉬움과 장인(匠人)에 대한 존경심, 관광 상품에 대한 호기심, 노령의 망념(妄念), 이런 것들이 복합된 소이(所以)에서인 것이다.
알다시피 청려장은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이다. 청려장을 짚으면 병에 걸리지 않아 장수한다고 한다. 중국 후한 때 유향이 청려장 지팡이로 땅을 치자 불빛이 일어났다 하며, 청려장은 가볍고 발광(發光)을 하므로 사귀(邪鬼)를 물리친다고 하였다. 16세기 이시진의 <本草綱目>에도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이 안 걸린다 하였으며 중풍에 걸린 사람도 쉽게 낫고 신경통에도 좋다고 전한다.
명아주의 성분분석 자료에 의해서도 명아주의 전초(前草)에는 정유(精油)가 함유되어 있고 잎의 지질(脂質) 중 68퍼센트는 중성지방으로 팔미틴산, 유지(油脂) 등이 함유되어 있다고 하니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의료(醫療) 원시시대의 이야기이니 별도로 치고라도 명아주 지팡이인 청려장은 문학적으로나 정신건강으로서도 매력이 있는 물건이다.
명아주는 지팡이의 1등 소재로 신라시대부터 건강용, 놀이개용으로 만들어 왔다고 한다. 우선 근거가 미약한 약리작용(藥理作用)을 제쳐두고라도 나무가 아닌 풀줄기를 말린 소재라 가볍고 단단한 데다가 뿌리 부분의 용머리 형상이 기괴하여 권위를 상징하기에도 제격이다.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하회마을 기념 선물이 명아주 지팡이였단는 것도 청려장의 비중을 드러낸 결과일 것이다.
그러한 청려장은 대단한 물건이라 구하기가 참 어려운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관광지 기념품 가게를 뒤져도 갖가지 모양으로 장식된 나뭇가지 지팡이는 있어도 청려장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인생 말년에 와서 효도상품으로 청려장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담은 영상물을 접하면서 청려장이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이며 명아주의 별칭이 능쟁이, 홍심려, 학정초, 연지채, 도트라지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트라지'에 눈길이 멈췄다.
도트라지라면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일년초가 아니던가. 묵혀진 밭이나 밭 언덕, 마을 빈 터, 울타리 가장자리에 흐드러지게 자라나, 나물로도 해먹고 단오 쯤 해서는 그 이파리를 찧어 즙을 내어 문종이에 푸른 물을 들여 봉지를 만들고 그 속에 썩은 뽕나무 숯가루와 소금을 섞어 넣어 봉하여 낙화(落火)놀이를 했던 그 도트라지인 것이다.
때마침 계절도 명아주로 널리 알려진 그 도트라지가 키 높이 이상으로 자라 지팡이 감이 되고도 남을 즈음이라, 빈 터 밭 언덕에 무진장으로 도열한 지팡이 감 중에 마음에 드는 것 4주(株)를 골라 명아주 지팡이를 만들 작정을 하였다.
전문가의 설명으로는 명아주 지팡이의 제작법이 장황하고 엄정했지만 천성적으로 룰을 무시하는 내 손재주는 시간과 벗을 하면서 청려장(靑藜杖)을 다듬어 냈다. 그것은 장인(匠人)의 전문성을 벗어나 인생을, 늙음을, 병 들어감을 사색하면서 법열(法悅)을 느끼는 구도자(求道者)의 마음 같았다.
팔순을 훨쩍 넘겨버린 가을의 초입(初入)에서 나는 내 소박한 명아주 지팡이를 다듬으며 인생무상, 신념이 허물어진 공허감, 가치전도(價値顚倒), 이런 것에 대한 사념(思念)을 삭여나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든 명아주 지팡이 곧 청려장은 단장(短杖)으로 2주 행장(行杖)으로 2주 도합 4주로 완성되었지만 그것은 내가 짚고 다닐 지팡이도 아니고, 선뜻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도 않은 나만의 애완물(愛玩物)이어서 할 일 없이 실내에서 어루만지고 있다. 아마 김우규의 '삼척(三尺) 청려장(靑藜杖)이 지기(知己)의 벗'이라는 시조 싯귀에 매료(魅了)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사실 지팡이는 늙거나 병든 사람의 의지물이라는 입장에서 그것을 짚은 모습이 안쓰럽기 마련이다. 단장(短杖)으로서의 지팡이보다 구도자(求道者)의 행장(行杖)으로서의 의미에 무게를 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병을 낫게 한다는 전설의 명아주 지팡이, 존경과 권위, 신통력의 상징으로서의 청려장(靑藜杖)에 애꿎은 미련을 가졌던 노구(老軀)의 인생이 처량하기만 하다.
(2018. 12. 7. 길 제23호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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