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사투리와 속담의 효용과 가치

如岡園 2019. 4. 12. 22:08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언어의 기능 그 자체라고 했다. 단어의 총화가 지닌 지상(至上)의 능력이 언어의 신성함을 밝혀주는 것이다.

 말은 사람과 동시에 태어난 것으로서 우리가 사회에서 사람의 힘을 느끼게 되는 것도 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말이 개인적으로는 인품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는 집단의 성향을 드러냄으로써 인성을 알게 되고 사회의 기풍이 파악된다. 인격이 파탄된 개인은 패악이 겉으로 드러나고 병든 사회는 병든 말을 토해내는 것이다.

 말처럼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것도 없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변하는 말, 그것을 말의 사회성이라 한다. 말의 정체성(正體性)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도 이 말의 사회성 앞에 부딪쳐 낭패를 당하는 일이 허다하다.

 겨레의 자주성, 독립성을 확보해야 할 시기에 있어서는 표준어의 정립이 대명제였고, 일제의 잔재를 떨어버리고 언어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할 시점에서는 외래어의 추방, 사투리의 정비로 국어를 정화하고 공용어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개별 언어의 개념설정에는 흔히 국가가 큰 기준이 된다. 그리하여 한 나라에서 쓰이는 말이면 한 언어로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투리는 언어에 있어서 하위류(下位類)에 속하는 변종들을 일컫는 말로, 하나의 언어가 지역적으로 달리 변화하여 어느 정도의 상이한 언어체계를 이룰 때 그 개별 언어에 대하여 지역 방언으로 취급하여 사투리 대접을 받는다.

 따라서 사투리는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이 만나도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는 것이다. 

 사투리는 일반적으로 하나이던 언어가 분화된 결과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언어통합의 결과에 말미암을 수도 있고, 때로는 시골뜨기말, 세련되지 못한 말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도시나 중심지의 말보다 격이 떨어지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지만 언어구조에 초점을 두는 입장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일이다. 사투리는 오히려 언어생활의 폭을 넓혀 주는 선 작용을 하기도 하는 것이니 표준어의 확립, 언어의 공용화를 정립하는 과정에서의 사투리의 추방은 우리의 언어의 폭을 좁히는 과오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에 있어서나 겨레에 있어서나 어휘(語彙) 수(數)의 다양한 확보 및 그 구사(驅使)는 문화의 척도, 지식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 볼 때 언어의 폭을 넓힌다는 의미에서도 언어생활에서의 사투리의 활용은 불가피한 것이다. 

 '뫼'와 '산'은 같은 말이지만 '뫼' 다르고 '산'이 다르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산이로다"라 한다면 얼마나 멋이 없겠는가.

 지방색을 드러내는 사투리의 구수한 맛은 언어의 풍미를 더하고 있다.

 지방대학 출신이 서울에 와서 국어교사를 하면서 빚어내는 넌센스를 애교로만 보아넘기기가 곤란한 시절도 있었지만, 1일 생활권의 교통망에 전송 통신수단을 통한 소통으로 언어가 쉽게 하나로 통일된 오늘에야 국어를 정화한다고 몰아낸 한자어, 수치스런 사투리가 소중하기 그지없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무지, 몰상식, 무책임에서 비롯된 외국말과 엉뚱한 조합을 이룬 신생 합성어, 얄궂은 줄임말의 문제, 우리말 조어체계에 맞지도 않는 말을 생성해 내는 일 등 독버섯처럼 번져가는 언어의 파괴와 변질 행위에는 항변이 따른다.


 속담은 민중의 지혜가 응축되어 널리 구전되는 민간 격언이며, 생활상의 일정 행위를 빗대어 현상을 강조하는 관용어귀이다. 세언(世諺), 속어(俗語), 속언(俗諺)이었으니 민중과의 밀착도가 훨씬 높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니 꾸며야 제 맛이기도 하다. 비유와 인유를 통해 내용이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이해가 빠르다면 그것보다 좋은 소통의 수단도 없을 것이다. 그러한 속담의 효과는 교화(敎化)의 기능, 풍자(諷刺)의 기능에서 발휘된다.

 다만 지난 시대의 생활과 밀착된 세언(世諺), 속언(俗諺)이었으니 시대감각이 떨어져 감응(感應)이 반감한다는 결함은 있다.

 풍자나 교훈을 담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관용어구(慣用語句)로서의 속담은 애초에는 개인적 구어적(口語的) 특수적인 것으로 부터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사회적, 문어적(文語的), 일반적인 것으로 귀결됨으로써 그 언어사회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얼굴이 된다. 

 흔히 속담은 전근대적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과거에 생성된 것이며 현재에는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 수가 있지만 그것은 속담을 정착하지 않았거나 언어대중의 인용사례가 드물었고 공감의 폭이 넓지 않았던 것이지 속담의 존재가치가 상실된 것은 아니다. 

  '0사와 변0사는 나라에서 낸 도둑놈', '중매 반 연애 반', '가는 날이 장날', '꿩 먹고 알 먹고', '병신자식 효도 본다', '동무 따라 강남 간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꿀 먹은 벙어리요 침 먹은 지네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도 손색이 없을 속담은 이루 열거하기가 거북할 정도로 많다.

 

 통신수단의 발전에 따른 지나친 언어의 축약, 의미전달의 기호화는 국어의 표기체계에 혼선을 빚게 된다. 그것 말고도 외국말과 조합을 이운 합성어의 문제, 한자어의 이해가 부족하여 '애증'과 '애정'이 의미상으로 혼선을 빚기도 한다.

 사투리와 속담이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밀려난 자리에 너무 많은 외래어(外來語), 신조어(新造語)가 자리 잡아 낡은 세대는 이방인이 되어 가고 있다. 낙향(落鄕)을 해 보았자 그 곳도 겨례의 본질은 없어진 지가 오래다.

 국어공부도 제대로 못했을 인사가 속담은 촌스럽고 저급하다고 생각하여 중국 고사를 담은 한문어구인 사자성어(四字成語) 몇몇을 외어 유식(有識)을 호도(糊塗)하는 것은 딱한 일일 뿐만 아니라 신판(新版) 사대사상(事大思想)이다. 

 은유(隱喩), 인유(引喩)의 고답적 표현기법을 빌려 소박한 비평의식을 드러낸 속담의 재인식이 우리의 언어생활에 자리 잡아야 한다. 아무리 세계화가 되고 외국문물이 범람을 해도 한민족은 그 민족 나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독특한 사상 감정 및 사고방식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 풍자나 교훈을 담아 비유의 방법으로 서술하는 관용어귀로서의 속담은 촌철살인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속담은 한 언어의 특별한 문화적 사회적 관념을 나타내기 때문에 어휘에 준하는 것으로 다루어 사전에도 등록되는 것이다.

 남북 간 통일이 이루어질 것은 철도와 도로의 연결보다 어쩌면 언어(言語)와 이념(理念), 의사(意思)의 소통이 먼저여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중국과의 교류가 겨우 시작되던 이른 시기에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곳 조선사람들이 배달겨례의 맥을 보존하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고향을 느꼈다.

 통일이 오면 진정한 우리 문화의 광맥을 찾아 복원하고 언어를 정화해야 할 것이다. 연변이건 북한이건 겨레의 순수한 언어와 문화가 잘 보존된 원류를 찾아 통일하고 그 정통성을 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흙속에 묻힌 속담을 찾아 되새기고, 지역의 성향을 간직한 사투리에 정감을 느껴 교감할 때 진정한 통일의 성취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2018. 12. 7 <길>23호.  여강 김재환)          

'여강의 글A(창작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音)으로 악(樂)한다  (0) 2020.01.01
명아주 지팡이  (0) 2019.03.11
교학(敎學)은 상장(相長)이랬다.  (0) 2019.01.09
동무 생각, 사우(思友)  (0) 2018.12.11
지명(地名)의 세상사  (0) 2018.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