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소리이며, 소리의 고저(高低) 장단(長短) 강약(强弱)을 일정한 순열로 조화 결합시켜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예술이 음악이다.
음악은 감각기관중에서 청각을 즐겁게 해준다. 음악은 배덕(背德)을 곁들이지 않은 관능적인 즐거움이며 참된 인간의 언어이다. 자기 안에 어떠한 음악도 갖지 않고 감미로운 음의 조화로도 움직이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모반과 모략과 약탈에 적합한 인간이라고도 하였다.
음악은 영혼을 자극하는 움직임을 갖고 있다. 음악의 힘에 낚여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고 할 수 없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 기분으로 인도하는 것이 음악이다.
소리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예(禮)는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법식(法式)이니, 악(樂)은 예(禮)와 병립하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 유교문화권에서의 음악에 대한 인식이었다.
악(樂)이 예(禮)와 병립(竝立)하여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이유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여 주는 도구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악(樂)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화해(和諧)를 말한다고 하였다. 예(禮)로써 인간의 질서를 정제(整除)하여 놓더라도 이것을 조화 있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하단다.
인간의 희로애락의 정감(情感)은 그것을 나타내는 당사자만이 아니라 보고 듣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니 문제가 된다. 잘 다스려진 사회의 음악은 안락한 생활의 모습을 반영하여 주고, 화목하지 못한 집단의 음악은 노성(怒聲)과 노기(怒氣)가 충만하고 좌절된 집단의 소리는 슬픔과 한(恨)에 찬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예(禮)로써 그 뜻을 인도하고 악(樂)으로써 그 소리를 화평하게 해야 하므로 성음(聲音)의 도(道)는 바로 치정(治政)의 도(道)의 중추가 된다고 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우리나라에 있어서 대중의 음악은 속가(俗歌)나 민요, 대중가요, 가곡 등으로 진폭을 넓혀가고 있는데, 음악사(音樂史)나 음악 이론에 문외한인 입장에서 장황한 이론을 펼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학생 때나 기타 사회생활의 인적사항 기록문서 취미란에 마땅히 적을 것이 없을 때에 단골메뉴로 올린 것이 음악 감상이란 수준으로 음악을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 솔직한 나의 음악 인식이고 수준이었다.
극단적인 음치(音癡)는 정서발달에 심각한 장애요소가 있다는 속설도 있어 어느 새 나는 그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나의 음감(音感)의 성숙은 전혀 논리적인 것이 못되고 자연발생적이었다. 사범학교 입시 실기에서 피아노 건반 앞에서 얼어버리고 초등학교 선생의 꿈을 접어야 했던 나는 지금도 악보는 모른다. 대나무를 베어다 손수 퉁소를 만들어 불고, 어머니를 졸라대어 하모니카를 사서 불어 입이 불어터지도록 되었어도 악보는 읽을 줄을 모른다.
사람이 귀를 가졌다면 산골 도랑의 여울에도 음악이 있고 갈대의 나부낌에도 음악이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운율이 있는 소리를 좋아한 것이 내 솔직한 음악 감각이었을 것이다.
퉁소와 하모니카를 조금 불어본 것 이외에는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고, 서양의 오페라나 교향악을 완전히 소화해 낼 만한 절대음감도 내게는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노래를 좋아할 소지(素地)는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시기, 돈을 번다고 일본으로 나가셨던 부친께서 조부님의 호통에 못 이기고 불려 들어올 때 사서 짊어지고 들어온 유성기 하나가 요물이었던가! 세 살 때부터 들어온 그 유성기에서 흘러나온 음악소리의 마력이 평생 나를 그것의 노예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목동으로 피리 불던 소년은 하모니카의 포로가 되었다가 달빛어린 동구밖 소나무 그늘에서 가곡으로 세레나데를 열창하였고, 읍내 공화당의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유행가 가락에 심취하며 청춘을 구가하였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카세트 테이프에 이은 고음질의 에잇트랙, 앰프와 턴테이블 CD플레이어 이퀄라이즈 스피커시스템을 콤포넌트한 전축에 접하면서는 음악의 진동에 가슴이 징하게 저려오던 것을 감지하면서 나는 어느덧 음악 감상의 마니아가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수되는 금전적 낭비, 먹고 사는 일도 아닌데 사람으로 살아가는 과정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엉뚱한 일도 있다.
인터넷 시대, 무한량의 음원이 자유롭게 유통된다. 음반에 바늘 긁히는 소리가 섞여야 맛이라는 보수적인 음악 감상 마니아도 있지만 급속 성장하는 아이티 기술에 힘입은 전자음을 따를 수 있겠는가.
저작권상의 문제는 있지만 무한정으로 공급되는 양질의 음원, 증폭기가 딸린 스피커 한 세트를 연결하면 작은 서재는 훌륭한 음악감상실이 된다.
오페라, 교향악, 클래식을 감상해야 진정한 뮤직 마니아로 대접하던 것도 옛말.
오빠는 강남 스타일, 아이 돌, 케이 팝, 소녀시대 같은, 폭풍이라도 일 듯한 율동을 수반한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가히 심령(心靈)의 덕육(德育)으로 심핵(心核)을 꿰뚫는 음향의 운동이라 이를 만하다고 할 것이다.
인터넷 온라인에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아예 '音으로 樂한다'를 카테고리의 하나로 설정하여, 음원 보유자에게는 실레가 되지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기 좋은 음악을 올려 소리를 즐긴다. 팝업으로 음원이 차단되어 먹통이 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전축을 열어 CD를 갈아 끼우거나, 턴테이블을 돌려 바늘 긁히는 소리로 클래식을 듣는 일보다는 손쉽고 즐겁다.
"불멸의 음악이여, 너는 내면의 바다다. 너는 깊은 영혼이다. 음악이여, 명징(明澄)한 여자 친구들이여, 지상의 날카로운 햇빛의 반짝임에 지친 달빛 같은 너의 빛은 부드럽고 상쾌하다. 음악이여, 처녀이며 어머니인 음악이여, 나의 슬픔의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이여, 나의 슬픔의 마음을 고요하고 확고하고 기쁜 것으로 해준 음악이여, 나의 사랑, 나의 보배인 것이여, 맑은 너의 입에 키쓰하리라."
로만 롤랑이 장크리스토프에서 음악을 예찬한 이 구절이 가슴을 울린다.
과학이 발전해 나가는 세상의 편의를 따르자면 이 즈음의 음악은 소리만이 아니라 눈으로도 보아야 할 것이니 늙어가면서 눈이 어두어지고 귀가 난청이 되어 가면 어쩔까 하고 그것이 두려워진다.
(2019. 10. 15. 수필 동인지 길 24호. 여강 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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