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제국
# 나폴레옹 보나팔드
콜시카島 出生. 사관학교를 나와 포병장교로서 軍門에 들어가 지휘자로서의 신망을 얻다. 자코반 黨과 가까이 하고 왕당파의 내란진압에 명성을 올림.
# 군사활동을 전개
에집트 원정; 1898.4 에집트를 공략하고 씨리아까지 공략하려 하였으나 실패. 英 넬손 제독이 프랑스 함대 격멸. 나폴레옹 패배. 부류우에멜의 병란. 본국의 내홍을 틈타 에집트에서 파리로 돌아와서 쿠우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다(1799.11.10)
# 1804년 국민투표를 實施하여 皇帝로서 추대. 프랑스 第一帝政의 始作
# 트라팔카 해전
1805년 영국이 佛에 선전. 나폴레옹 海戰에서 넬손 제독에게 패망.
대륙에서는 天下에 호령. 도아취란드 오스트리아에 침략하여 나폴레옹의 足下에 굴복. 프레스불그 和議 成立.
# 1806년 8월 바바리아, 뷸덴벨그, 바아덴 이하 16個 國을 統合, 라인邦을 組織.
神聖로오마제국은 독일 황제 프란시스코(오스트리아 왕)의 勅令으로서 解散. 드디어 도이취 제국은 멸망.
# 1806년 10월 나폴레옹이 프러씨아 내정에 간섭함을 불만히 생각한 프러씨아는 러시아 황제 아렉싼달 1세와 동맹체결하고 프랑스에 宣戰.
1807년 2월 프러씨아는 패망하고 칠지트 조약을 체결.
# 1806년 11월 大陸封鎖令.
武力으로 압도하지 못한 英國을 經濟的으로 멸망케 하겠다는 최후의 對英政策.
1. 全잉글랜드 領土封鎖
2. 大陸 諸國의 英國과의 通商 禁止
3. 프랑스 및 同盟國 內의 英國人을 포로로 認定하고 그 財産을 沒收.
# 이에 타격을 받은 러시아가 1810년 이것을 위반하였으므로 1812년에 遠征.
# 나폴레옹 極盛時代
대륙봉쇄령을 발표하고 영국을 제외한 全유럽을 호령하던 시대를 말한다.
유우럽 大陸의 全部를 直轄地로 編入
革命 本來의 自由 精神은 喪失되고 軍事的 帝國主義的 傾向이 露骨化.
황후 조세핀을 폐위하고 1810년 오스트리아의 王家 합스불그의 皇女 마리아 루이자와 결혼.
이베리아 반도 폴튜칼을 굴복시킴.
이스파니아의 내정에 간섭(1808)
오스트리아를 네 번째로 굴속 시킴(1809년)
# 나폴레옹의 몰락
몰락의 원인; 러시아 원정의 실패
제국민의 자유 전쟁
大陸封鎖를 실시하여 帝國主義 政策을 취하고 諸國民의 독립성 자주성을 무시
끊임없는 對外 戰爭에 프랑스 국민이 불만
他國에서 프랑스 軍制를 모방하여 전력을 강화
# 러시아 遠征
1812년 대륙봉쇄를 파기한 러시아에 대하여 6月, 나폴레옹은 45萬의 大軍을 친솔하고 국경 넘어 Borodino에서 러시아 軍을 퇴각 시킴.
처참을 극한 강행군으로 전진을 거듭, 러시아 軍은 퇴각에 퇴각을 거듭하다가 同年 9月 首都 모스크바에 佛軍이 入城하자 首都마저 포기하고 市民도 軍과 같이 후퇴하였다. 9월 14일 모스코바에 入城하였을 때 軍은 勿論이거니와 市民조차 없어졌으므로 佛軍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대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날 밤중에는 대화재가 일어나 20일까지 계속되어 全市街의 4分의 3이 재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리하여 食糧과 宿舍에 대곤란을 겪고 드디어 10月 中旬 나폴레옹은 부득이 퇴각을 명령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프랑스 軍을 추격하는 데 있어서 민첩한 騎兵을 파견하여 퇴각하는 프랑스 軍을 교란케 하였다. 11月 下旬 Beresina 江을 넘었을 때는 불과 3만 밖에는 남지 않았다 한다. 나폴레옹이 軍事的으로 이러한 궁지에 함입함에 원래부터 나폴레옹 軍에 가맹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프러씨아와 오오스트리아는 단독으로 러시아와 평화 교섭을 하고 파리에서는 反戰的 氣勢가 표면화하였으므로 나폴레옹은 부하장병을 버리고 단독행동으로 귀환하였다. 때는 1812 年 12月이었다.
# 프러씨아의 분기
# 나폴레옹의 몰락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大失敗에 돌아가자 佛國民은 동요하였으며 軍隊士氣가 弱化.
1813년 러시아가 주동이 되어 諸4回 對佛大同盟을 결성하고 프랑스에 開戰. 라이프치히의 전투에서 佛軍大破. 1814년 3월 파리를 함락. 나폴레옹 退位. 엘바 島로 들어갔다. 루이 18세의 전제주의 부활. 국민 불만.
# 백일천하
1815년 3월 나폴레옹은 엘바 島를 탈출하여 키안느에 상륙. 파리에 입성하여 또다시 황제로 즉위. 列國은 동맹군을 결성하고 프러씨아의 브류헬 장군과 영국의 웰링톤을 나폴레옹 征討將軍으로 파견. 나폴레옹 급거 벨기이로 진격. 브류헬을 격파하고 다시 웰링톤을 워터루우에서 쳤으나 도리어 대패를 당하고 6月 파리로 도망. 이것을 나폴레옹의 百日天下라 함(1815年 3月 1日~7月3日).
동맹군은 이것을 추격하여 파리에 再次 入城하고 루이 18세를 復位. 12월 파리조약을 체결. 이에 의하여 프랑스 국경은 1789년의 상태로 복구하고 7억 프랑을 배상금으로 지불하게 되었으며 나폴레옹을 체포하여 St Helenae島에 流配. 이리하여 一世를 風靡한 나폴레옹의 支配는 종결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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