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정우풍(僞政寓諷, 위정을 풍자한 이야기)
어떤 광대가 일찌기 상감 앞에서 한 개의 빈 섬을 끌어안고 와서, 그 입을 밖으로 향하고 광대의 짝이 크게 불러 가로되
"네 섬의 입은 내 입보다 크니 어쩐 연고냐?"
광대가 가로되,
"옛적에 만 석군이 있었고 또한 이천 석군이 있었으되, 이제 나는 다뭇 한 섬 뿐인데, 그 입이 비록 크나 그 배는 뷔어 있다."
한데,
상감께서 웃으시며 쌀을 내려 광대를 우대하시니, 광대가 또한 희롱하는 말을 여쭈어 가로되,
"신이 청컨댄 이조 판서의 노릇을 하여 드디어 정장(政狀)을 열어 입으로 의망(擬望)을 부르되, 처음에 갑(甲)인 자로써 머리를 삼으며 을(乙)로써 다음을 삼고, 병(丙)인 자로 끝을 삼다가, 돌이켜 깨쳐 다로되, 제가 거의 잊을 번하엿소이다. 병조판서가 청한 사람이 있어 이 손(手)을 바꾼 것은 가히 듣지 아니치 못하리다." 하고,
마땅히 이로써 먼저 의망에 넣어 다시 고쳐 부르니, 상감께서 이에 크게 웃으시었다.
야사씨 가로되
연분에 따라 청하거나 부탁하는 일이 세상의 고질과 폐단이 되어, 광대와 같은 천한 무리라도 또한 때의 조정이 사사로운 일을 먼저하고 공무를 나중한다는 것을 알거늘, 이 광대의 풍자에 붙임이 그 또한 우맹(優孟)의 유라 할진저.
<冥葉志諧>
# 대답무액(對答撫額, 이마를 어루만지는 대답)
한 지방관이 성품이 인색하고 말이 많아서 미리 아랫관리들에게 일러 가로되,
"객이 오거든 네가 나의 어루만지는 바를 보라. 내가 이마를 어루만지면 상객(上客)이요, 코를 어루만지면 중객(中客)이요, 수염을 어루만지면 하객(下客)이니, 그들을 접대하는 것이 풍부하고 인색함이 이로써 고하가 있는 줄 알아라."
하거늘,
객(客)이 그 속을 아는 사람이 있어 주인 사또를 들어와 보고 인사를 한 후에 자세히 사또의 이마 위를 본 후에, 낮은 목소리로 가로되,
"사또의 이마 위에 벌레가 붙었습니다."
하즉, 사또가 곧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거늘 하리(下吏)가 상객이라 하여, 마땅히 성찬으로써 대접했다 한다.
야사씨 가로되
내가 만약 술책을 끼고 사람을 대접하면 남도 또한 지혜로써 나를 속이리라. 남을 대우하는 길이 가히 성신(誠信)으로써 근본을 삼아야 할지니라.
<冥葉志諧>
# 무매곡계(無妹哭計, 죽을 누이도 없는데 부음에 곡을 하다니)
어떤 어리석은 사또가 동헌에 앉아 있는데, 형리가 앞에 있거늘 통인 아이가 형리에게 일러 가로되,
"저의 누이가 갔사옵니다."
사또가 자기의 누이의 부음(訃音)인 줄 그릇 알고 놀란 겨를에 크게 한 소리 일 곡(一哭)하다가 곡하기를 마치고 물어 가로되,
"묻는 날은 어느 날이며 운명은 무슨 병으로 죽었느냐?"
통인이 나아가 대하여 가로되,
"흉부(凶訃)가 영감께 고함이 아니요, 이에 형리에게 고한 것입니다."
한데, 사또가 눈물을 거두며 서서히 가로되,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과연 누이가 없도다."
하거늘, 여러 관리가 입을 막고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백성과 관리가 친해야 할 것이나, 진실로 삼가고 간약해 마땅하나, 옛날로부터 이조(吏曹)의 전관(銓官)들의 주의(注擬)가 세력에 아부치 않으면 사사로운 일 뿐이었다. 연고로 이와 같은 어리석은 사또의 무리가 감히 지방장관이 되어 나갔었으니, 거의 조정을 가벼이하고 민생을 해함이 아니었으랴. 세상의 길이 진실로 개연하다 할 것이다.
<冥葉志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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