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흥삼하(順興三賀, 순흥의 세 가지 하례할 일)
순흥은 고을이 작고 기생이 패악한 데다 반찬솜씨 또한 박했다. 남정 승지(南政承旨)가 감사가 되고 김선생 문기(文起)가 아사(亞使)가 되고 최장령(崔掌令) 상생(常生)이 군수가 되었더니, 하루는 감사가 잔치를 베풀고 나그네를 속일쌔, 관기(官妓)의 치마빛이 엷게 붉고 감사의 코끝이 몹시 붉은지라, 아사가 주인을 보고 가로되
"기생의 치마빛이 비록 연분홍이나 주인의 코가 요란하도록 붉으니 한 번 치하할 만합니다." 한데,
얼마 후에 주인이 잔을 돌릴쌔 큰 잔을 잡으니 아사가 가로되,
"읍이 비록 작으나 술잔은 크니 가히 두 번 치하합니다."
이때 국과 밥을 들이니 아사가 가로되,
"밥이 이미 붉고 장(醬)이 가히 희니 세번째로 가히 치하할 만합니다." 하니
사람이 이를 일컬어 순흥 삼하(順興三賀)라 하였다. (太平閒話)
# 아애일목(我愛一目, 외눈박이를 나는 사랑한다)
한 선비가 애첩 백옥(白玉)이 있어, 외눈박이였으나 가무사죽(歌舞絲竹)에 능하였다.
일찌기 연석에서 기생들이 자리에 그득하되 백옥이 홀로 뛰어나니, 기생의 무리들이 서로 찌르면서 웃으며 가로되,
"어찌 외눈박이가 감히 저리 뽑낼가 보냐." 하더니,
얼마 후에 개 한 마리가 고기를 훔치다가 어지러이 짖으며 달아날쌔, 그 개 또한 외눈박이라 기생들이 크게 웃으며 가로되
"오늘은 외눈박이의 뜻얻는 날인가 봐. 외눈박이도 또한 다시 짝이 있을가? " 하거늘,
선비가 엿듣고 마음에 좋지 않게 생각하더니, 집에 돌아가 백옥과 더불어 대좌하여 익히 보다가 앞으로 나와 손을 잡으며 가로되,
"하늘이 이 사람을 냄에 그 입이 하나요, 그 코가 하나여서 그 직책을 능히 하였거늘, 홀로 그 두 눈이 번잡하지 않으랴. 그대의 그 한 눈이 심히 편리하도다. 방상씨(方相氏)가 비록 황금으로 눈이 넷이나, 장차 무엇에 쓰리오. 사람이 각각 제 좋은 것이 있으니, 남의 말을 어찌 족히 탓하랴." 하였다. (太平閒話)
# 피달실인(被撻室人, 집사람에게 매를 맞다)
조관(朝官)에 허(許)가 성을 가진 자가 있어 성품이 너무 부드럽고, 이씨 성을 가진 그의 아내는 성품이 억세고 매서웠다. 처 이씨가 항상 사자 모양 울부짖으면 남편 허씨는 무섭고 두려워 기운이 꺾이고 움추려들어, 감히 큰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더니,
하루는 이씨가 대로하여 허씨로 하여금 스스로 다리를 걷어 올리게 하고, 회차리로 갈겨 피를 보게 한지라,
한 벗이 이 소리를 듣고 다음 날에 허씨와 자리를 함께 하더니,
소리(小吏)가 죄를 범했거늘 그 노여움을 이기지 못하여 친히 회차리를 치게끔 되니,
허씨가 곁에서 이를 제지하여 가로되,
"그만쳐라, 내 그 전에 실인(室人)에게 회차리로 맞아보니 아픔을 참을길 없더라." 한데,
그의 벗이 저도 모르게 실소하였다. (太平閒話)
# 오아자계(誤我者鷄, 나를 망친 자는 닭이오)
고양현(高陽縣)에 한 선비 족속의 부인이 있더니, 나이 오십이 넘어서 다시 사내를 만날쌔, 얼굴에 이미 주름이 잡히고 머리털 또한 흰지라. 시집가는 날 저녁에 속으로 부끄럽게 여겼으나, 집에 수탉이 있어 새벽이면 늘 잘 우니, 속으로 계획하기를, 닭이 울 무렵에 신방에서 나오면 늙고 추한 얼굴을 가리울 수 있으리라 마음먹었던 바, 마침내 어린 종놈이 닭을 잡아 국을 끓인지라, 남편과 즐길쌔 이미 동창이 밝아 오매, 의상(衣裳)을 꺼꾸로 입었거늘 새 남편이 보니, 하얗게 다 늙은 한 노파라 자못 실망하니, 여인이 지극히 분통해 하면서, 연상 종놈을 때리며 가로돠,
"나를 망친 자는 닭이요, 닭을 망친 자는 너로구나."하였다. (太平閒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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