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긍작(荷印矜爵, 인뒤웅이를 걸머지고 벼슬을 자랑한 사또)
어떤 사또가 길에서 세 사람을 만나니, 한 사람이 죽은 사슴을 걸머졌거늘 사또가 물어 가로되,
"너희들 세 사람이 동행하는데 사슴을 잡은 자는 누구뇨?"
사슴을 걸머진 자가 대해 가로되,
"이 사슴은 제가 잡은 바이라 제가 지고 가니, 어찌 가히 타인으로 하여금 지고 가게 하리이까."
사또가 묵연히 속으로 생각해 가로되,
'이 사람의 사슴 걸머진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 스스로 잡은 것을 알게 하여, 그 능함을 자랑코저 함이니, 관인(官印)은 나의 인(印)인데, 통인으로 하여금 갖고 있게 하면, 보는 자가 반드시 통인을 그릇알아서 인주(印主)를 삼으리라. 내가 스스로 짊어지고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인주(印主)임을 알게 함만 같지 못하는구나.' 생각하고 곧 통인을 불러 앞에 불러와 가로되,
"너의 가지고 있는 인(印)이 너의 도장이 아니요, 이에 나의 쓰는 바 인(印)이니, 내가 마땅히 짊어지리라."
하여 빼앗아 걸머지고 말을 타고 간즉, 길가에서 보는 자 해괴히 여겨 가로되,
"그 행색을 보면 나장이 앞에 있고, 통인이 따로 모시어 뒤에 있고, 구종이 좌우에 따르매, 이로써 관원이 그 인뒤웅이를 걸머진 것을 보면, 이는 분명히 아전이니, 그 뒤에 있는 자는 정확히 이 관원이어서, 아전으로 하여금 인뒤웅이를 걸머지고 앞에서 인도하는 것이라."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이 사또의 인뒤웅이를 걸머진 것은 그 자기가 사또임을 밝히고자 하였고, 길가에서 보는 자는 그것이 사또가 아니라고 보니, 이는 스스로 취한 바라. 세상에 고위에 있는 자가 그 직책을 일컫지 않는 자는 전혀 체면 없이 남의 미소를 사니, 어째서 이 사또와 다르랴. <蓂葉志諧>
#한식세배(寒食歲拜, 한식에 세배하는 풍속)
어느 고을 아전이 장차 관문(官門)에 들어갈쌔 그 친구 아전을 저자에서 만나 물어 가로되,
"그대 낮은 곳을 좇아 왔느냐?"
가로되,
"오늘은 단오날이므로 향청(鄕廳)에 세배하고 돌아가는 것이라." 한데,
아전이 웃으며 가로되,
"세배는 추석에나 할 예의인데 단오에 행함은 무슨 까닭이냐?"
아전이 사또 앞에 나아가 엎드렸는데 문득 웃음을 터뜨리거늘, 사또가 노하여 가로되,
"네가 하리로써 어찌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웃는단 말이냐?"
하며 인하여 끌어내다 볼기를 칠쌔, 하리가 실지로 고해 가로되
"동무 아무개가 추석에 세배하는 법이 있는 줄 모르고 오늘 단오날에 세배를 하나니, 이로써 능히 웃음을 참지 못했나이다."
하니
사또가 안석에 의지하여 박장대소하면서 가로되,
"너희들이 함께 어리석도다. 일찌기 세배의 예가 한식(寒食)에 있는 것을 몰랐더냐?"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굳이 그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군자로서는 그르다고 하였거늘, 이 사또를 두고 이름인저, 타일에 만약 다시 치인의 문답이 있으면 아지 못거라. 청명상사에 무슨 예가 있겠느냐고 하여라. <蓂葉志諧>
# 우피몽면(牛皮蒙面, 소껍데기를 입고 부끄러움을 면하다.)
옛적에 어떤 태수가 무섭게 캄캄하고 어리석었다. 정사(政事)를 돌아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하루는 관우(官牛)를 기르는 자가 와서 말하되, 소가 돌다리 구멍에서 실족하여 다리가 불어져 죽었으니, 어찌 처리했으면 좋사올지?"
태수가 처치할 바를 알지 못하다가 바삐 내아(內衙)에 들어가 그 처에게 물어 가로되,
"죽은 소의 고장(告狀)을 어떻게 처치해야 하겠소?"
처가 가로되
"이는 과히 어려운 일이 아니니, 고기는 관청에 낼 것이요, 껍질은 공방(工房)에 내릴 것이요, 심줄과 뿔은 군기(軍器)에 내려서 이로써 처치하는 것이 좋으리다." 한데.
태수가 그렇게 하마 하고 동헌으로 나가서 처의 말대로 처치하였더라.
며칠 후에 어리석은 백성이 그 아비의 상사(喪事)를 당하여 관에 고하여 물고첩(物故牒)을 청하거늘, 태수가 다시 아내의 가르쳐 준 수법을 쓰면서 가로되,
"고기는 관청에 가져오고, 껍데기는 공방에 가져가고, 근각은 군기에 가져가는 것이 마땅하리다." 하니, 사람들이 놀래어 웃지 않는 이 없었다.
그 지방의 도백(道伯)이 들은 후에 하고(下考)에 두어 장차 돌아가려 하매 그 처가 꾸짖어 가로되,
"그대로 인하여 다스리지 않아 마침내 파면케 되니, 비록 아전과 백성들은 말이 없을지나, 홀로 그 마음이 부끄럽지 않으리오."
하며 관아(官衙)를 나와 출발하는 날에,
"나는 옥교 가운데 숨어 앉으면 가히 부끄러울 게 없거니와 그대는 말 위에서 어찌 부끄러움을 견디리오."
한즉, 태수가 가로되
"나는 마땅히 소껍데기를 입고 가리라."
하거늘, 듣는 자 실소(失笑)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관의 시직(屍職)에 있는 자로 부끄러움을 어찌 몸을 숨긴다고 면할 수 있이랴? 그 지아비는 부끄러움을 모르나 그 아내는 부끄러움을 알더라. 만약 이 부인으로 하여금 좋은 짝을 얻어 서로 돕게 하였더면, 그 세상을 보익(補益)함이 어찌 적었으리오. <蓂葉志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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