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원리강독(院吏講讀 )/시인자벽(詩人字癖)/망피취신(妄피取哂)

如岡園 2020. 6. 3. 19:47

          # 원리강독(院吏講讀, 원리의 강독)

 무릇 벼슬아치가 오래 근무하여 나이 늙으면 이조(吏曹)에서 모여 대전(大典, 東國律文)을 능통하는 자라야 옮겨서 승정원에 발탁되는 것인데,

  어떤 관리로 무식한 자가 장차 강(講)에 응하고자 함에, 동부승지의 쪽지(소개장)를 받고, 이부시랑에게 청촉하여 먼저 양해를 얻고 강석(講席)에 이르매 관리가 한 자의 글자도 아지 못하는지라, 몸을 흔들어 머리를 끄덕거리며 다만 말하되,

 "동부승지 영감 동부승지 영감......"

하여 강독하는 것 같은 모양을 하였다.

상서는 좌석이 적이 먼고로 능히 자세히 듣지 못하여 시랑에게 물어 가로되,

 "관리가 능히 강독할 줄 알며 또한 글뜻을 아느냐?"

 시랑이 가로되,

 "저 자가 사람의 이르지 못할 바를 이릅니다."

한즉,

  상서가 마음 속에 그 관리가 능히 잘 강독하는 줄 알고, 곧 통방케 하여 드디어 입격함에 한강도승(漢江渡丞)이 되니, 때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성인과 악부(惡夫)가 비슷하고도 실은 다른 것은, 나쁜 보라색이 붉은색을 어지러이 함이요, 강아지풀은 묘종을 어지러이 함이니, 그 경계하는 뜻이 깊은지라.

 이 관리는 전혀 글을 하지 못하여 몸을 흔들어 소리를 지어 상서의 들음을 어지러이 하였으니, 세간에 어찌 다뭇 이 관리 뿐이리오.

 옳은 것 같으나 그른 것은 참됨을 어지러이 함이 많으니 군자가 가히 밝게 가리지 않으랴.     <蓂葉志諧>

 

          # 시인자벽(詩人字癖, 시인의 글자 습벽)

  윤결(尹潔)은 시인인데 젊어서부터 질병이 없이 매양 시를 지을 적에 능히 병(病)이란 글자를 붙여 보지 못하더니, 하루는 학질에 걸리매, 이불을 끌어안고 오한에 떨면서 가로되,

 "이제로부터 나의 시에 가히 병(病)자를 두리니 다행이로다."

한데 듣는 자 이(齒)를 드러내 놓고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옛말에 이르되, 흰털은 꽃숲에 꺼리는 바이어서, 시(詩)에 들면 새롭고, 부귀는 세정(世情)에 기쁜 일이나 시에 들면 더럽다 하니, 두 말이 믿을 만하도다. 병(病) 자가 시에 들어가게 되매 무슨 신기함이 있으리오.

두시(杜詩)에 가로되

 "학려삼추숙가인(瘧癘三秋孰可認)", 염병 삼 년을 누가 있어 참으리오.

함은 자미(子美= 杜氏)의 괴로와 한 바이라, 윤씨는 이를 즐거워하고, 병으로 다행함을 삼으니, 이는 지나친 벽시(癖詩)의 허물이라 할 것이다.          <蓂葉志諧>

 

         

          # 망피취신(妄피取哂, 망령되이 남을 헐어 말함은 도리어 웃음거리가 된다 )

  백호 임제(白湖 林悌)가 글재주가 기막혀서 오성 이상공(鰲城 李相公)이 깊이 심복했거늘,

  일찌기 한 서생이 있어 기꺼이 망녕되이 고인의 지은 바를 논하더니, 하루는 오성에게 가서 가로되,

 "임제의 글은 문리(文理)가 계속치 않으므로 족히 일컬을 것이 되지 못합니다." 한데,

 때에 마침 임제가 죽었을 때라 오성이 그 망령되이 헐어 말하는 것이 우스워서 아랫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응해 가로되,

  "죽은 임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산 임제는 진실로 헐어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

하니, 듣는 이가 다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문장에는 저절로 값이 있으니, 반드시 능히 안 이후에 알 것이요, 그 경지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능히 아는 자도 있지 못하리라.

백호와 같은 자는 가위 재주가 일세에 으뜸이니 이 서생이 망녕되이 와전하여 헐어 말하는 것은 실로 가위 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드는 것과 같도다.

 어찌 망녕되지 않으리오. 자기가 모자라고 남의 좋은 것을 꾸짖는 자를 경계함이로다.

                                                                                                                                     <蓂葉志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