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주지투(講奏止妬, 奏辭를 講해서 질투를 멎게하다)
어떤 유명한 재상이 곧 명재상의 사위였으니, 사위 재상이 심히 조심하여 매양 임금님께 주대(奏對)함에 당하여, 반드시 하루의 말미를 기약하여 분향 정관하여 단정히 앉아 먼저 그 주사(奏辭)를 강(講)해 본 후에 입주(入奏)하는 고로, 언제든지 임금께서 가납하시는데,
그 부인이 성품이 심히 투기가 많아서 사위재상이 항상 괴로워하거늘, 하루는 사위재상이 연회로부터 돌아오매, 부인이 그 기생과 더불어 희롱하였음을 듣고, 극히 질투하여 싸울쌔, 사위재상이 이에 말하되,
"명일 대궐에 들어갈 때 꼭 여쭐 일이 있다." 하며 드디어 향불을 피우고 공복을 함께 한 후에 비복들에게 명령하여 가로되, "만일 훔쳐듣는 자가 있으면 스스로 죽음을 당하리라." 한데,
부인이 "전에는 이런 영을 내리는 것을 듣지 못했더니, 이제 반드시 별다른 일이 있도다?" 하여 곧 벽에 붙어서서 듣거늘,
사위재상이 그 상주할 일을 강해 가로되,
"소신은 관리의 제일높은 위치에서 성품이 심히 우열하여 마침내 사나운 처의 투기를 금치 못하니, 이는 곧 능히 집안을 다스리지 못함이라. 제가(齊家)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감히 국정에 간여하리오. 청컨대 물러 가겠나이다."
하고, 강해 마치고는 취침하거늘,
부인이 크게 두려워하여, 곧 그 아비에게 달려가서 가로되,
"오늘 지아비가 이와 같은 일을 강주(講奏)하였는지라, 만약 상감께 그와 같이 상주하신다면 여식은 어찌 살 수 있으리오. 원컨대 급히 그치게 하여 줍소서."
그 아비가 크게 꾸짖어 가로되,
"네가 이미 가장(家長)의 일을 알고 스스로 조신치 못하고, 이러한 큰 화를 취하였으니 다시 누구를 허물하고 원망하겠냐? 또한 이미 주달할 말을 강했으면 반드시 내 말을 듣지 않으리니, 네가 다못 애걸해 보라. 혹시 용서를 받을지 모르니."
부인이 곧 지아비의 앞에 나와 절하면서 청해 가로되,
"이제로부터는 만일 투기하는 행실이 있으면 비록 목을 베시든지 쫒아내시든지 첩은 또한 달게 받으리니, 빌건댄 주달하올말씀을 멈추어주시고 써 그 실천 여부를 보아 주소서".
사위재상이 일부러 억지로 쫓는 듯한 빛을 보였더니, 이로부터 부인이 절대로 다시 투기를 하지 않았다 한다.
야사씨 가로되,
주역에 가로되 "위엄을 가해서 고함은 몸을 배반함을 이름이라."하니 언필칭 가장이 되는 자가 능히 집안을 바로하는 위엄이 있으니, 그 길함을 가이 알 것이다. 사위재상이 능히 반신치 못하였고, 다뭇 괴계로써 부인을 속여 질투를 끊치게 하였으니, 그 근본이 옅은지라 어찌 시러금 정가(正家)의 법이라고 할 수 있으랴.
<蓂葉志諧>
# 설몽포병(說夢飽餠, 꿈을 말하고, 떡을 배부르게 먹다)
한 스님이 성품이 몹시 인색하거늘, 정월 대보름에 둥근떡 세 그릇을 지었는데, 두 그릇은 크고, 한 그릇은 작은지라. 스님이 조그만 그릇으로써 사미승(沙彌僧)에게 주고자 하였는데, 사미가 마음속으로 이를 알아차리고, 그 스승을 속이고자 하여, 떡을 먹음에 그 스승에게 청해 가로되,
"이는 산인(山人)의 성찬이라 오늘밤에 내가 길한 꿈을 얻어서 한 번 배부르게 먹을 징조 같아, 먼저 꿈을 말하고 후에 먹는 것이 옳으리라."
스승이 가로되,
"그렇게 해라."
사미가 가로되,
"꿈에 우리 스승님이 단 위에서 송경할 즈음에 석탑께서 곤하여 졸더니, 문득 한 선녀가 있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아지 못하겠는데 선녀와 같은지라. 아래로 유마(維摩)를 시험하매 나이 겨우 이팔(二八, 16세)이라. 눈은 가을물결과 같고 눈알이 기름덩이와 같으며, 입으론 붉은 안개를 품고, 머리카락은 푸른 구름을 펴는 것과 같으며, 허리는 가는 버들과 같고, 손은 가느다란 파와 같은데 스승님 곁에 닥아 앉거늘, 스승님이 깨쳐 또한 보며 가로되, 어디서 온 낭자뇨? 낭자가 가로되, 첩은 이에 하늘의 진선이요. 스승님은 두솔천의 금선(金禪)이더니, 삼생에 인연이 있을쌔 한 번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스승이 이에 굼벙이의 영을 끌안고 빙설과 같은 살결을 가까이 하여 나비처럼 연모하고 벌처럼 탐하여 정신이 혼미하고 뜻이 홍륭하여 비록 공작이 붉은 하늘을 날아감과 원앙이 녹수에 논다 하더라도 족히 즐거움에 비유키 어려웠다." 하니,
스승이 듣고 취한 것 같고 어리석은 것 같아서, 입에 침을 흘리며 손으로써 패를 끌어 가로되, "기특하도다 너의 꿈이여, 내가 너의 꿈 이야기를 듣고 배가 이미 부른지라, 이 세 그릇의 떡을 네가 홀로 다 먹어라."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방포원정(方袍圓頂)이 참중같으나, 한 번 사미의 설몽을 듣고 심신이 혼미하여 도모지 계율을 잊고 사미의 술책 가운데 떨어지니, 그 깨침을 알지 못하겠도다. 슬프도다. 세상에 안으로 욕심이 많으나 밖으로 수식하는 자는 대개 이와같은 유에 가까운 것이 옳을진저. <蓂葉志諧>
# 열장복면(捩杖覆麵, 지팡이를 들어 국수를 뒤엎다)
한 노승이 손수 산밭을 개간하여 육묘(六畒)에 일으렀더니, 스님이 기뻐 가로되,
"내 올해에는 한 번 국수를 싫것 먹게 됐다."
사미가 가로되, "스님께서 잡숫고 나셔야 그제사 그게 잡숩는 게죠."
또한 보리를 수확하여 등장했을 때 스님이 가로되, "이제 국수 만드는 것이 이미 가까웠으니 가히 써 배부르리라."
사미승이 가로되, "스님께서 잡숫고 나셔야 그제사 그게 잡숫는 게죠."
이에 보리를 찌어 국수를 만들어 큰그릇에 담으니, 국수냄새가 코를 찌르는지라, 스님이 가로되
"이제 이미 국수를 만들었거니 어찌 배부르지 않으랴."
사미승 아이가 또한 가로되 "스님께서 잡숫고 나야 그제사 그게 잡숫는게죠."
스님이 노발대발하여 가로되, "국수를 만들어 앞에 놓으며 한 번 배부를 것이 곧 눈앞에 있는 일인데, 또 그래 잡숫고 나야만 그게 먹는 게 된다니, 어찌 그 입이 그리 덕성(德性)이 없음이 이와 같으냐."
장차 회초리 때리고자 하여 막대를 들고 뛰어 일어나며 국수를 들어 둘러엎었는데, 사미가 급히 달아나면서 가로되,
"내 무어랍데까. 잡숫고 나야만 그게 잡숫는 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말이 바로 그거예요." 여러 스님이 박장대소하였다.
속말에 이른바, '스승님께서 잡숫고 나야 그게 잡숫는 게죠.' 하는 말이 대개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야사씨 가로되
논어에 이르되 "한 번 마시고 한 번 죽음이 또한 일수가 있으니", 사미가 이른 바를 가이 알만 하도다. 슬프다 성인이 뜻이 없으면 반드시 없음이라 한즉 보리를 심고 국수를 먹음이 이에 가히 반드시 있을 수 있는 일이 마침내 있을 수 없는 일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무릇 세상의 일이 어려움이란 반드시 이와 같음이었음인저.
<명엽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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