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괘폭인포(掛瀑認布, 그림 속 폭포를 바래진 천으로 알다)
한 사람이 그림을 알지 못하고 도화서 별제(圖畵署別提)를 하고자 하여, 스스로 일컫되,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며, 또한 그림을 안다고 자랑하는 고로, 인하여 도화서(圖畵署) 제조(提調)에게 뵈옵게 될쌔 제조가 시험코저 하는데, 한 그림을 내어 보이니, 곧 여산폭포의 그림이었다. 그 사람은 실로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못 오묘함을 칭차하였을 뿐이었는데, 제조가 그 참으로 아는 자로 알고 별제(別提)를 주고자 하였거늘, 그 사람이 그 빛을 보고 마음에 기꺼워하여 가만히 속으로 생각하되, 만약 새로운 말로 극찬하면 그 제조가 반드시 기뻐하리니, 내가 벼슬을 얻기만하면 가히 만전하리라 하고, 드디어 손으로 그림 가운데 폭포를 가리켜 가로되,
"이 폭포가 햇볕에 바랜 모양이 더욱 지극히 묘합니다." 한즉,
대개 폭포의 모양이 백련(白練)과 같으므로 이 사람이 그것을 바래진 천으로 그릇 안지라. 제조가 웃으면서 몰아내니 듣는 자가 모두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아는 것이 아는 게 되며, 알고는 알지 못함이 되지 않으니, 세상의 굳이 그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아는 자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지니, 가히써 폭포를 가리켜 포(布)로 삼는 자로 하여금 경계함인저.
<蓂葉志諧>
# 박혁상심(博奕傷心, 바둑 상심)
어떤이가 성품이 바둑을 즐겨 이웃집에 가서 바야흐로 대국했거늘, 한창 바둑이 익어갈 무렵 여종 창두가 분주히 달려와 고해 가로되,
"집에 불이 났습니다."
한즉, 그 사람이 손을 들어 천천히 소리내어,
"불이야...... 그 무슨 불인고?"
하였다.
또한 어떤이가 바야흐로 나그네로 더불어 대좌하여 바둑을 두더니, 노복이 시골로부터 돌아와 고해 가로되,
"노영감님께서 돌아가시었습니다."
한데, 그 사람이 오히려 손을 들어 바둑알을 내리면서 가로되
"아버님이 과연 죽었느냐! 참으로 가히 아깝도다!"
하니, 듣는 자가 허리를 잡치었다.
야사씨 가로되,
심하도다. 바둑이 사람을 그릇침이여. 집이 불타도 구할 줄 모르고, 아비가 죽어도 물러날 줄 모르거늘, 집안의 불을 구하지 않음은 오히려 가히 말할 만 하거니와, 아비의 죽음을 듣고도 물러가지 않음은 인간의 이치를 끊은 자라. 옛적 완적(阮籍)이 객으로 더불어 바둑을 두다가 어미의 상을 듣고 바둑을 마치며, 피를 두어 되(升)나 토하였어도 마침내 죄를 명교(名敎)에 얻었음이요, 하물며 완적에게 미치지 못한 자야 일러 무엇하랴.
<蓂葉志諧>
# 고주납대(告主納帒, 전대 속 신주에 고사하다)
옛적에 변보(邊報)로써 국내가 장차 소동코자 했거늘 서울 사대부의 집이 창황히 분주히 피난할쌔, 한 선비가 목주(木主)를 취하여 장차 전대에 넣어 가지고 이에 집안 사람에게 일러 가로되,
"신주(神主)를 옮기는데 가히 고사 한 마디 없을 수 없도다." 하여 이에 엎드려 읽어 가로되,
"감히 청컨댄 신주는 전대 속에서 나와 지이다."
하니 듣는 자가 모두 웃었다.
<蓂葉志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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