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우연득처(偶然得妻)/유창이주(踰窓而走)/염조운흘(念趙云仡)

如岡園 2021. 5. 6. 16:45

          # 우연득처(偶然得妻, 우연으로 처를 얻다)

 

 아전으로 주씨 성 가진 자가 있어 풍신이 훌륭하였다. 멀리 先山을 돌아보고 고향으로 돌아올쌔 한 촌집에 투숙하였더니, 마침 주인 집에 醮禮지낸 신부가 있거늘, 주씨가 혹은 남은 떡찌꺼기라도 맛볼까 하고 옷을 차려입고 門屛 사이를 배회한즉, 주인집에서 과연 잔치를 베풀고, 주씨도 또한 그 좌석 사이에 앉았더니, 밤이 이에 깊어갈 때 여러 나그네들이 다 흩어지고, 새 사위가 술에 엉망이 되어 벼나까리 사이에서 뒤를 보다가 넘어진 채 일어나지 못하니, 주씨만 홀로 賓席에 있었는데, 주인집 사람이 주씨를 신랑으로 그릇 알고, 촛불을 든 자는 휘장을 걷어올리며, 예의를 관장한 자는 읍하면서 인도하거늘, 주씨가 드디어 입실하고 納婦하니, 꽃촛불 아래 신랑된 즐거움은 그지없었다.

 새벽녘에 신랑이 취했던 술이 바야흐로 깨어서 들어가고자 한즉, 重門이 닫혀 있고 고요하여, 사람의 소리라곤 없거늘, 문을 두드리며 크게 소리쳐 가로되,

  "나로 말하면 신랑이오. 신랑이오!" 

  "사위가 이미 嘉禮를 마치었거니 어떤 미친 놈이 감히 저러는고?"

하고 안에서 대답하매, 신랑이 분노가 탱중하여 후행온 친척들에게

 "내 일이 이미 지나갔도다. 내 일이 이미 지나갔도다.' 하니,

  이에 한참 떠들고 싸우고 한 끝에야 정확히 밖에 있는 자가 진짜 사위임을 알았다.

 주인 늙은이가 창황하여 주씨에게 가로되,

 "네가 대체 어떠한 사람이냐?"

 "엊저녁 기숙한 나그네로소이다." 하고 주씨가 답한즉

  "어떤 연고로 우리 집의 가문을 어지럽혔느뇨?"

  "掌禮자가 인도한 연고입니다."

 늙은이가 어찌할 길이 없어 주씨를 쫓고 새 사위를 들이려 하니, 주씨가 조용히 의관속대하고 뜰 아래 나와 절하며,

  "원컨대 한 마디 말씀드리고 나가겠나이다. 아무개는 듣자온즉 여인의 길은 한 번 허락한 후면 종신토록 고치지 않는다 하니, 한 번 그 절개를 잃음에 선비가 그 지아비됨을 부끄러워하고 鄕黨이 그 이름 일컬음을 부끄러워하나니, 부모된 자는 진실로 딸의 절개를 온전하기를 원합니까? 그 이지러질 것을 원합니까? 늙은이의 따님은 나에게 있어서 全節을 다했고, 저에게 있어서 이지러진 행실이 되나니, 이제 다못 터지는 분통을 이기지 못하여, 나에게 전절의 사람을 빼앗고, 저에게 이지러진 여인을 위하니, 그 계획함이 또한 그릇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본시 良佐가 없으니 아들과 사위의 예의를 잡는 것이 어찌 사람에 뒤떨어지리오. 영감께서는 세 번 다시 생각하소서."

  주인이 한참 중얼거리며 생각하다가

  "이미 늙은 도적의 술책 가운데 덜어졌으니, 이를 어찌하리오."

  드디어 사위와 장인의 사이를 정하였다. 그 후에 주씨가 그 문호를 세우고 자손이 크게 창성하였다 한다.     (太平閑話)

 

          # 유창이주(踰窓而走, 창문을 넘어 달아나다)

 

  한 선비가 있어 성은 유씨인데 嶺南에 놀다가 성산 기생 청련을 節愛하였거늘, 돌아오매 서로 사모하기를 마지않더니,

 처 송씨가 무서운 질투로 욕설을 퍼붓고 꾸짖기를 마지 않다가, 혹은 두드려 패기까지에 이르니, 유씨가 괴로움을 견딜 수 없는지라,

  시험삼아 위엄으로써 눌러 보려 하여, 하루는 관청일을 파하고 집에 돌아가서 의관속대를 벗지 않고 단정히 앉아 정색하며 가로되,

 "여자는 가히 질투치 못할지라. 詩에 文王의 后妃 질투 없음을 아름답다 하였고, 小學에 부인이 음란과 妬氣가 있으면 가히 쫓을 수 있다고 하였거늘, 그대는 어쩐 연고로 감히 투기가 이와 같은고?"

 하니,

 송이 극히 분통하여 곁에 있는 칼도마로 판을 치면서 일어나 크게 꾸짖어 가로되,

 "무엇이 문왕 후비며 무엇이 淫去妬去뇨?"

하고 어지럽게 유씨를 갈기니, 유씨가 다급하여 창문을 넘어 도망하여 달아났다 한다.     (太平閑話)

 

 

          # 염조운흘(念趙云㐹, 조운흘을 염하다)

 

  趙 石澗 云仡이 西海도 관찰사가 되었더니, 새벽이면 반드시 아미타불을 염하였다.

  하루는 백천에 당도하여 새벽에 창 밖에서 조 운흘을 염하는 소리가 들리거늘, 물으니 그는 邑倅 박희문이었다. 그 연유를 불으니 박이 가로되,

 "관찰사가 아미타불을 염하여 성불코자 하시니, 나는 조 운흘을 염하여 관찰사가 되고자 합니다." 하였다.           (太平閑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