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화이기성(畵梨記姓)/현명구실(眩名求實)/부설고담(婦說古談)

如岡園 2021. 8. 12. 18:50

          # 화이기성(畵梨記姓, 배 그림으로 성을 적다)

 

  어떤 사또가 캄캄하고 어리석어 건망증이 있거늘, 鄕任으로 있는 좌수가 배 씨인데 매양 入謁하매, 사또가 문득 그 성을 묻는지라 좌수가 괴로와서 사또에게 말해 가로되,

 "城主께서 매양 백성의 성을 물으시고, 또한 자고 나면 잊으시니, 배(梨)의 釋音이 소인의 성으로 더불어 음이 같은고로, 만약 배를 벽 위에 그리어 항상 눈앞에 있게 하면 가히 잊지 않으리이다."

  사또가 기뻐하여 가로되, "그렇게 하라." 하고 곧 배를 그 벽 위에 그리었는데, 적이 그 꼭지가 길었다.  

 다음날도 좌수가 들어갔더니, 사또가 벽화를 우럴어보면서 가로되, "그대가 蒙同 좌수[몽동이란 治石용으로 쓰는 둥근 쇠자루]가 아니냐".

  좌수가 일어나 절하면서 가로되,

 "소인의 성은 배 가요 몽동이 아닙니다. 성주는 전의 畵意를 아지 못하십니까?" 한데.

  사또가 부끄러운 빛이 있어서 이에 가로되,

  "내가 몽동으로 그릇 안 것은 그 자루의 길이가 서로 같은 고로 이와 같이 말함이로다."

  좌수가 엎드려 청해 가로되,

  "원컨대 성주는 적이 그 자루(배꼭지)를 짧게 하소서."

 사또가 곧 벽의 그림에 나아가 칼로써 그 꼭지를 베어 가로되,

  "비록 이 꼭지가 없다 하더라도 본체는 오히려 있을 테니, 어찌 다시 배 성을 잊으랴."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좌수가 그 사또의 건망증을 답답히 여겨, 그 그림을 다시 그릴 것을 청하매, 마침내 그 자루를 없애고 다뭇 한 둥근 형상만을 있게 하였도다. 타일에 성명을 기록함이 원형으로써 한다면 서로 가까이 그리지 않으면 호박이나 수박이 아니면 오리알이나 닭의알로 그릇 알진저.    <蓂葉志諧>

 

     # 현명구실(眩名求實, 이름따라 실지를 구하다 )

 

  옛적에 여러 陵所마다 助辨千戶가 있었으니 대개 능군이 얼굴을 잘 아는 자를 가리어서 시켰었다.

  助辨은 奠物하는 자이니, 속칭이 점점 와전되어 나중엔 조반천호(早飯千戶)라 일렀다.

  한 典祀官이 있어 일찍 일어나 배가 고프매 조반으로 천호에게 꾸짖은즉, 천호가 전에 그런 예가 없다고 사양하거늘, 그 관원이 크게 노하여 가로되,

  "네가 조반천호로서 이름이 돼 있으니 능히 밥을 지어 오지 않겠느냐?" 한즉,

  듣는 자가 웃었다.

 옛날에 州縣에 안일한 戶長이 있었는데, 이는 대개 먼저 임명된 늙은 아전이 하게 마련이어서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어떤 別星 사또가 어느 읍에 순력차 이르니 아전이 있어 와서 뵈입거늘, 물어 가로되,

 "너는 무엇을 하는 자뇨?"

 대해 가로되,

 "安逸戶長입니다."

 그 관원이 노하여 가로되,

 "적지 않은 별성이 와서 일컬은즉 실다운 향리는 어찌 와서 뵙지 않고 안일호장(호장이 아닌 자)이 감히 왔는고?"

 대개 사투리에 글자 아닌 새김이 아닐로 더불어 서로 같은고로, 그 호장 아닌 자가 온 것이 아닌가 의심함이니, 듣는 자가 크게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세상에 이름 따라 실지를 꾸짖어서 효과를 없애는 자가 있으니, 또한 명실 함께 어긋나 그릇 쓰는 자가 있으니, 옛적에 揚雄이 儒로써 이름이 있어, 망조에 신사하고, 노장용은 隱으로써 칭명하여 譏를 취하여 빨리 갔거늘, 이 두 명은 이름인즉 옳으나 실인즉 그르니, 또한 조반 안일과 함께 더불어 그 任이 비슷하다 할 것이다.     <蓂葉志諧>

 

     # 부설고담(婦說古談, 늙은 할미의 고담 이야기)

 

 어떤 늙은 할미의 아들이 신부를 얻었더니, 할미가 하루는 그 며느리에게 명하여, 옛날 얘기를 하라 하였거늘 며느리가 가로되,

 "근년에 있었던 일도 또한 고담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할미가 가로되 "그것이 능히 고담이 되고 말고!"

 며느리가 가로되,

  "제가 집에 있을 때에 물을 길러 우물에 갔더니, 이웃집 김 총각이 저를 이끌고 삼밭으로 들어간 후에 저의 두 다리를 들고 일어났다 엎드렸다 여러 번 한즉, 스스로 몰란겨를에 두 눈이 점점 가늘어지고 사지의 가닥이 풀어지는 것 같던데, 이것도 고담이 되리이까?"

  할미가 얼굴빛을 달리하여 가로되,

  "그런즉 너의 몸이 깨끗지 못하니, 친정집으로 돌아 가거라."

  며느리가 떠나옴에 다달아 정든 동네 할미들을 만나 그 일을 얘기하며 사죄할쌔, 그 할미가 가로되, "너는 어느 곳으로 가느냐.  내가 너에게 이를 말이 있도다. 너의 시어머니가 본래부터 능히 몸을 바르게 가지지 못했거늘, 어찌 능히 너를 바르게 하리오. 너의 시어머니가 일찌기 北庵스님으로 더불어 사통하였었더니, 그 일이 발각됨에 큰 북을 안고 큰 맷돌을 이고 업고, 화살로 귀를 찔리어 마을로 조리돌았거늘, 이 마을 노소가 다 보지 않은 이가 없는 터란다." 한데,

  며느리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되돌아 시집으로 갔는데, 시어미가 가로되,

  "내 이미 너를 쫓았거늘 네가 어찌 다시 왔는고?"

 며느리가 가로되,

  "제가 어느 곳에서 좀 소문을 듣건댄 시어머니의 행실은 또한 저만도 못합데다." 하며 인하여 자세히 틀어놀쌔,

 할미가 놀래 가로되,

  "이 말을 어디에서 들었느고? 그것은 전한 자가 잘못 전함이니, 내가 진 북은 바로 조고만 북이요 큰 북이 아니며, 이고 지고 한 것은 큰 맷돌이 아니고 작은 것이어서, 무어 걸머질 만하지 못하고, 만약 그 화살로 귀를 뀌었다 함은, 이에 그것이 軍門의 연장인데 촌가에서 어찌 능히 얻었으리오. 다뭇 쑥대 화살로써 꽂혔을 뿐이니, 너는 이로부터 다시 잡소리를 하지 말아라."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자기에게 착한 일을 한 연후에 가히 써 남의 착한 일을 꾸짖으며, 자기에게 악한 일이 없은 연후에 가히 남의 악을 금하겠거늘, 늙은 할미는 자기 행실의 바르지 못한 것을 생각지 않고, 그 며느리의 깨끗치 못함을 꾸짖으니, 슬프도다.

 속담에 '가마 밑을 웃는 솥'이 바로 이를 이름이니, 세상이 자기의 허물이 있어 가지고, 남의 그름을 책하는 자는 가히 보아 경계할지니라.    <명엽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