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佛陀, 그 說敎의 實踐(3), 彈琴의 比喩/雪山이 黃金으로 바뀐다 해도/기쁨을 음식삼아 살다

如岡園 2021. 7. 8. 20:51

          # 彈琴의 比喩

 

  한때 붓다는 摩竭陀국의 서울 王舍城 부근의 靈鷲山(기자꾸타)에 있었다.

 그 무렵에 靈鷲山에 가까운 한적한 숲속에 守籠那(쏘나)라는 비구가 修行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수행 태도는 무척 가혹했으나 좀처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가 없어 바야흐로 그의 심중에 迷妄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도 모질게 수행을 하고 있다. 붓다의 제자 중에도 나처럼 열심히 수행하는 자는 없을게다. 그렇지만 나는 곧장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가 없으니 웬 일인가 차라리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게 옳을지도 몰라. 우리집에는 재산도 있다. 그 정도의 재산이 있다면 얼마라도 행복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이 길을 버리고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는게 옳을지도 몰라."

 붓다는 守籠那의 마음을 알고 그를 찾아 갔다. 수롱나는 자신의 심경을 느낀대로 털어놓았다. 

 "守籠那여, 그대가 집에 있을 때엔 거문고를 잘 켰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거문고 켜기를 즐겼습니다."

 "그렇다면 수롱나여, 잘 알겠지. 거문고를 켜자면 絃을 너무 세차게 그어서는 좋은 소리가 나지 않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현을 너무 약하게 긋는다고 해도 좋은 소리는 나지 않거든!"

 "과연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 소리가 나는가."

 "그것을 너무 세차게 긋지 말고 너무 약하게도 긋지 않고 가락에 알맞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선 좋은 소리를 낼 수가 없읍니다."

 "수롱나여, 佛道의 修行 또한 그와 같다고 생각하는게 좋으니라. 刻苦가 지나치면 마음이 헝크러져 고즈넉할 수가 없고, 弛緩이 지나치면 懈怠에 떨어진다. 수롱나여, 여기서도 그대는 그 中道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이로부터 守籠那(쏘나)는 이 彈琴의 비유를 가슴 깊이 새기고 다시금 修行을 계속하여 깨달음의 境地를 얻을 수 있었다.

 

     # 雪山이 黃金으로 바뀐다 해도

 

 붓다가 拘薩羅國의 설산 부근의 숲속에 홀로 있을 때가 있다. 雪山(히마반드)은 요즘의 히말라야 山이다.

  붓다는 그때 숲속의 오두막집에 홀로 앉아 명상하다가 이런 일을 생각했다.

  "政治라는 것은 죽이는 일도 없고, 죽여지는 일도 없고, 征服하는 일도 없고, 征服 당하는 일도 없이, 슬퍼하는 일도 없고, 슬퍼지는 일도 없이 道理대로 行할 수가 없는 것인가."

그러니까 나쁜 惡魔(마라, 방해의 뜻)가 나타나서 소근대었다.

 "붓다여, 당신의 정치를 해 보십시요. 당신이 통치하여 죽이는 일, 죽여지는 일이 없는, 정복하는 일, 정복되는 일도 없는, 그리고 슬퍼지는일, 슬프게 하는 일이 없는, 道理대로 되는 정치를 실현해 보십시요. "

 붓다는 깜짝 놀라 악마에게 말했다.

 "惡魔여, 그대는 나에게 무엇으로 政治를 행하라 하는가."

 악마는 다시 한 번 속삭였다.

 "붓다여, 당신의 네 개의 如意足(iddhIpada의 譯. 이를 神足이라고 옮기기도 한다. 뜻대로 되는 힘을 갖춤을 일컫는 말. 거기엔 네 가지가 있다. 欲(目的에의 집중), 勤(意志의 集中), 觀(觀察의 集中)을 四如意足이라 일컫는다)을 修習해서 무슨 일이든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결심만 한다면 山의 王者, 히말라야를 남김없이 황금으로 化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붓다는 偈로써 이에 대답했다.

 "저 雪山을 黃金으로 化하고 다시 거기에다 두 배로 만든다 한들 한 사람의 欲望을 채울 수 없나니 사람들아, 이를 명심하고 올바로 행하라."

 그것은 분명히 붓다를 유혹한 權勢慾에 대한 경계였다.

 聖者의 智慧와 自信은 종종 정치문제에 대해 위험한 위치에 놓인 적이 있다. 붓다에게도 역시 정치의 理想的인 방책에 대한 思索을 하는 중머물고 있을 때였다. 에  자신이 정치에 발을 들어놓으려는 유혹에 빠질 번한 위험이 닥쳐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곧 진리와 이상을 쫓는 聖者의 길이 탐욕과 汚濁의 渦中을 가는 王者의 길과는 전혀 다름을 깨달았던 것이다.     

 

          # 기쁨을 음식삼아 살다

 

붓다가 摩竭陀국의 五葦(판자사라)라는 고을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그날은 마침 젊은 남녀들이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날이었다. 서양의 관습에 비추어 보면 마치 발렌타인과 같은 祭日이다.

 그날 아침도 붓다는 여늬 때와 같이 托鉢을 하러 그 마을에 들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祭日에 넋이 팔린 까닭인지 아무도 붓다의 탁발에 공양을 하지 않았다. 經典의 표현을 따른다면, 그날 붓다는 <깨끗이 씻긴 鉢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악마가 붓다 앞에 나타나 소근댔다.

  "沙門아, 먹을 것을 얻었는가."

  "악마여, 오늘은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네."

  "그러면 다시 한 번 마을로 가세. 이번엔 공양을 바치도록 할 터이니."

 그렇지만,  붓다는 의연히 偈로써 대답했다.

 "비록 얻을 수 없었다 해도 보아라, 우리는 즐거이 사노라."

  마치 光音天(爬羅文敎 神의 一群. 無上의 사랑을 상징한다.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살고 말할 때엔 그 입으로부터 맑은빛을 낸다고 한다)과도 같이 우리는 기쁨을 음식으로 삼고 사노라"

  그것은 분명히 食慾의 유혹에 견디려는 붓다의 苦行이다.

  붓다라 한들 매일의 탁발에 언제나 好適한 공양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날은 젊은 남녀들이 선물을 주고 받느라고 들떠 있었기 때문에 한낱 沙門의 탁발에 마음들을 쓸 경황이 없었을 게다.  빈 손으로 돌아온 붓다는 空腹에 시달리면서도 지금 다시 마을로 돌아가면  선물교환도 끝나고 다시 공양을 받을 수 있으려니 하는 생각을 했지만, 붓다는 의연히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깨달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