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佛陀, 그 說敎의 실천(2), 짚을 베개삼고 자라/ 마음의 알맞음/ 量을 알고 음식을 들라

如岡園 2021. 4. 29. 21:20

     # 짚을 베개삼고 자라

 

붓다가 제자들과 함께 毘舍離(베사리)의 大林(마하바나) 精舍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精舍 강당의 옥상에는 첨탑이 솟아 있어 堂閣講堂이라 불러지고 있었다.

 毘舍離는 跋耆(밧지) 연합의 수도로서 남쪽은 恒河를 사이에 두고 摩伽陀國에 접하고 서쪽은 고사라 國과 접하여 당시의 2大 王國에 둘러싸여 끊임없는 그네들의 괴로움을 받으면서 會議政體를 질 운영하여 그 독립을 保持하고 있는 나라였다.

 어느날 붓다는 제자들을 모아 비사리 사람들을 비유하여 이야기했다.

 "비구들아, 이곳 사람들은 밤에 짚을 베개삼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그래서 摩伽陀國의 亞자世(야자다삿스) 왕은 이 나라를 넘보려 하지만 아직 기회를 잡지 못한다.

 비구들아, 만일에 장래라도 그네들이 유약한 생활에 빠져 부드러운 잠자리에 자고, 새깃의 베개를 베고, 해뜰 때까지 자는 경우가 생긴다면 야자다삿스 왕은 이 나라를 침공할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마음가짐을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비사리 사람들만이 아니라고 붓다는 말했다.

 "비구들아, 지금 그대들도 짚을 베개삼고 放逸하지 말자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악마가 그대들의 마음을 침범하려 해도 그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렇지만 비구들아, 장래 만일에라도 그대들이 유약한 생활에 빠져 부드러운 잠자리에 자고 새깃의 베개를 베고 해가 뜰때까지 잠잔다면 그때야말로 악마는 곧 그대들을 침범할 기회를 붙잡을 것이다."

 붓다와 그 제자들로 구성되는 공동단체, 즉 불교단체를 붓다는 '僧伽(산가)'라는 말로 불렀다.

 '僧伽'라는 말의 語源은 곧 비사리 사람들이 갖고 있던 정치체제 곧 會議政治體制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짚을 베개삼고 자는' 비사리 사람들의 번영은 붓다와 그 제자들에겐 남의 일 같지 않았을 것이다.

 

     # 마음의 '알맞음'

 

 어느날 고사라의 서울 사위성(사밧디)에 波斯匿(파사나디)를 비롯해 다섯 왕이 모였다.

 그들은 성찬을 먹고 美酒를 들며 미녀들을 모아 가진 환락을 즐기고 있었는데 누군가 갑자기

 "이승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무엇일까?"

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촛점은 엉뚱한 데로 모여졌다.

 어느 임금은 '色은 欲愛의 第一' 이라 주장했다.

 色이란 눈에 보이는 事物을 일컫는 말이니까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뜻일게다.

 어느 임금은 '聲은 愛慾의 第一' 이라 주장했다.

 聲이란 귀에 들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니까 그것은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이 이승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는 뜻일게다.

 어느 임금은 '맛이 愛慾의 第一'이라 했다.

이 임금은 지극한 食道樂者였던 모양이다.

 또 한 임금은 '觸이 愛慾의 第一'이라 했는데, 여자의 살결을 어루만지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이야기는 自古로부터 각자 趣向이 다르니까 十人十色이기 일쑤다.

 이 때도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하고 왁자지껄하고 있었는데 婆娑匿왕이 이 일을 붓다에게 물어 보자고 제안햇다.

 "여보게들 가세나. 붓다 앞으로 가서 이 일을 물어보세. 붓다의 裁斷이 내리면 그대로 쫓기로 하세."

 이리하여 붓다는 다섯 임금의 방문을 받고 각자의 주장을 듣고 나서 이렇게 裁斷하여 말했다.

 "왕들이여, 나는 마음의 알맞음을 愛慾의 제일로 삼고 있소."

 이 한마디에 갖가지 주장들이 모두 빛을 잃었다.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에 따라 기호가 다르다. '알맞음'을 벗어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 먹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이 현명한 裁斷 앞에 여러 임금들이 곧 설득된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優婆塞(Upasaka의 音譯. 在俗의 男性信者를 일컫는 말. 여성은 優婆夷Upasika라고 부른다.)는 詩를 지어 붓다를 찬양했다.

         "향그런 紅蓮은

          아침에 피었어도 향내 아직 머금고

          보아라, 붓다의 빛나는 모습은

          하늘 속에 비껴 있는 햇님 과도 같고나"

 

     # 量을 알고 음식을 들라

 

 붓다는 자주 왕들의 내방을 받고 그때마다 극히 구체적인 敎示를 내릴 때가 많았다.

 이날도 붓다는 구살라왕 婆娑匿(파사나디)의 내방을 받았다.

 보니, 왕은 씩씩거리며 큰 숨을 내쉬고 있었다. 까닭을 물었더니 波斯匿왕은 자주 大食을 드는데 이날도 美食을 실컷 먹고 붓다에게 막 왔다는 것이다.

 큰 숨을 들이쉬는 왕의 모습을 이윽히 미소를 띠고 보던 붓다는 왕을 위해 一偈(詩 한수)를 읊었다.

         "사람은 자신이 繫念해서

          量을 알고 음식을 들라

          그러면 괴로움도 적을게요

          늙음이 더디고 壽를 지니리"

그때 鬱多羅(우따라)라는 소년이 왕을 侍立하고 뒤에 있었다. 왕은 그 소년을 돌아보고 말했다.

 "우따라야, 너는 世尊이 지금하신 偈를 외었다가 내가 식사할 때는 언제나 읊도록 해라. 그러면 내가 매일 백전씩 너에게 주리라."

 거기서 소년은 붓다로부터 그 偈를 외어 波斯匿왕의 식사 때는 매일같이 게를 읊었다.

 왕은 그 偈를 들으며 식사를 했기 때문에 차차 식사의 양을 줄일 수 있었고 그 결과 비만한 몸이 점점 홀쭉해져 매우 건강해지고 용모마저 단정해졌다. 그리하여 어느 날 왕은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환희에 가득 차서 붓다 계신 곳을 향해 절하면서 세 번 이렇게 부르짖었다.

 "진실로 世尊은 두 가지 이익을 저에게 끼쳤습니다. 저는 세존으로 인하여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을 함께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卑近한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行往坐臥, 긱다긱반하는 중에서도 붓다의 가르침은 찬연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이 곳에 든 붓다의 偈는 굳이 불교의 원리에 비추어 보면 이른바 中道思想에 속하는 것이다.

 붓다의 中道는 금욕주의도 아니고 쾌락주의도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일상식생활에 비유하여 말한다면 '量을 알고 음식을 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