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基督敎의 說話(7), 先知者가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 없다/太初에 말씀이 있었다/가나의 婚禮

如岡園 2021. 7. 26. 18:01

          #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받는 자 없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4장 24절)

 이것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한 설교 중에 있는 말이다.

  여기서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 특히 엘리야와 엘리사가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닌 이방인을 위해 기적을 행한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헤브라이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해서 그것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갈릴리아 사람들은 크게 분노해서 예수를 마을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이 귀절은 뛰어난 사람이 왕왕 고향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할 때 쓰여진다. 

 

          # 太初에 말씀이 있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신약성서 요한복음의 맨 첫 귀절이다. 성경 귀절의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지극히 짤막하면서도 추상적인 표현이어서 해석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겠으나, 말이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신성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이러한 사상은 고대의 여러 민족에서 엿볼 수 있다. 희랍신화나 호머에서는 언어 자체에 어떤 자동적 능력이 있다는 의미로 표현되어 나온다.

 인류문화의 진보가 언어로 말미암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먼 옛날 선조들이 언어에 대해서 그만큼 경의를 지녀왔었다는 것은 의미 깊은 사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후대에 내려와서 괴테의 파우스트 속에서 파우스트 박사가 바이블을 펼쳐놓고 철학적인 독백을 하는 대목이 있다.

  "맨처음에 로고스가 있었다. 언어가 있었다.' 나는 여기 지쳐버렸다. - 나로서는 언어를 그렇게 높이 평가할 수는 없어. 무언가 다른 것으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안되지. '처음에 뜻이 있었다.' 이렇게 섣불리 붓을 놀릴 수도 없지-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뜻'이었을까. 그건 이렇게 쓰여질 것인가 보다. '처음에 힘이 있었다.'고 허지만 이것으론 어쩐지 안심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 아, 하늘의 도움이신가- 얼핏 생각이 났어 이거면 되겠지. '처음에 행동이 있었느니라.'"

 파우스트박사는 고대인과는 달리 언어에만 모든 신뢰를 둘 수는 없었다. 그는 언어의 세계를 한참 헤매던 끝에 실천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차피 인간은 이론과 실천이라는 극과 극 사이에 매달린 한조각 쇠붙이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 가나의 婚禮

 

  가나란 곳은 갈릴리의 도시로 그리스도 시대에 나사렛 동북쪽 약 8마일 지점에 서 있었던 것으로 알지고 있다. 

 어느 날 이 가나에서 혼례잔치가 있었다. 예수도 그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초청을 받아 제자들과 더불어 거기로 갔다. 피로연이 막 한창인데 포도주가 동이 나고 말았다. 마리아는 예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저희들이 포도주가 떨어져 쩔쩔매는구나."

 "어머니,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다시 하인더러 일렀다.

  "무슨 말이든지 그가 하라는대로만 하시오."

  그런데 그 집에는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결례(潔禮)를 위해 두세통들이 돌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다. 예수는 하인을 보고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명했다. 하인들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길어 부었을 때 예수는 다시 하인에게 일렀다.

 "이제는 이것을 퍼서 연회의 우두머리에게 가져가라."

 연회의 우두머리는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신랑을 불러 물어 보았다.

 "사람들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어 두었군요."

 이것은 예수가 베푼 최초의 기적이었다. 이로써 예수는 그 영광을 나타내어 제자들이 더욱 그를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2장 1~1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