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妄疵取哂(망자취서)/輕侮懷慙(경모회참)/羞妓賦詩(수기부시)

如岡園 2021. 11. 24. 23:23

          # 망자취서(妄疵取哂, 죽은자를 흠함을 비웃다)

 

 백호 임제가 글재주가 기막혀서 오성 이상공이 깊이 심복했거늘, 일찌기 한 서생이 있어 기꺼이 망녕되이 고인의 지은 바를 논하더니, 하루는 오성에게 가서 가로되, 

 "임제의 글은 文理가 계속치 않으므로 족히 일컬을 것이 못합니다." 한데, 때에 마침 임제가 죽었을 때라, 오성이 그 망녕되이 헐어 말하는 것이 우스워서 아랫채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응해 가로되,

 "죽은 임제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산 임제는 진실로 헐어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 하니 듣는 이가 다 웃었다. 

 

야사씨 가로되

 문장에는 저절로 값이 있으니, 반드시 능히 안 이후에 알 것이요, 그 경지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능히 아는 자도 있지 못하리라.

 배호와 같은 자는 가위 재주가 일세에 으뜸이니 이 서생이 망녕되이 와전하여 헐어 말하는 것은 실로 가위 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드는 것과 같도다.

 어찌 망녕되지 않으리오. 자기가 모자라고 남의 좋은 것을 꾸짖는 자를 경계함이로다.

                                                                                                                    <蓂葉志諧>

 

          # 경모회참(輕侮懷慙, 가벼이 없신여기는 마음의 부끄러움 )

 

 韓西平 浚謙이 기묘년 사마장원이 되어 문명이 있더니, 일찌기 홍하의를 찾아 동호 독서당에 나아갔는데 하의가 마침 누워자고, 학사 신광필이 홀로 앉아 있다가 사겸이 뵈일쌔 신이 가로되,

 "그대는 어떤 위인이뇨?"

 서평이 가로되 

 "생은 시골의 武夫이니 隸禁衛人과 마침 벗을 찾아 여기를 지나다가 높으신 곳을 범하여 당돌하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

 신학사가 가로되,

 "별일없으니 그냥 앉으시오." 하며 인하여 가로되,

 "경치가 심히 좋은 고로 내 풍월을 짓고저 하니, 그대는 가히 운을 부를 수 있겠는가?"

 서평이 가로되,

 "풍월이 무엇인지 모르는 터에 운을 부른다는 것이 또한 무슨 일이리까!"

 신학사가 가로되, 

 "사물에 부딪쳐 흥이 일고 풍경을 묘사하면 가로되  풍월이니, 음향의 서로 같은 자를 불러서 사람으로 하여금 글귀 끝에 押韻하는 것이 운을 부르는 것이라."

 서평이 가로되,

 "일찌기 학업을 잃고 오직 활쏘기만 익혔으니 어찌써 운자를 알리오."

 신 학사 가로되,

 "차례로 아는 바 글자를 불러보라."

 서평이 가로되

 "생은 무인이니 청컨댄 늘 하는 버릇에 따라 부르리이다."

하며 이에 불러 가로되

"鄕角弓 黑角弓의 弓字가 어떠하오."

 신학사 가로되, 

 "좋도다."

 곧 일귀를 지어 가로되, 

  "讀書堂半月如弓(독서당 반월이 활과 같도다)이라."

하며 신 학사가 또한 가로되,

"다시 부르라."

 서평이 가로되

"순풍역풍(順風逆風)의 風字는 어떠하시오."

 신학사가 가로되

"기특하도다. 운이 같도다."

하고 다시 한 귀를 읊으니 가로되,

"醉脫烏沙倚岸風이라

'취하여 오사를 벗고 언덕 바람을 맞는도다.' 

신 학사가 또한 가로되

"다시 부르라."

 서평이 가로되,

"邊中貫中의 中字가 어떠하오."

 신 학사가 가로되,

 '기특하고 기특하도다. 세 글자의 운이 다 같으니 그대는 글자를 모른다고 말하고 마침 한 가지 운을 부르니, 어찌 그 우연히 합침이 이와 같은고!"

 드디어 족히 落句를 이루어 가로되,

 "十里江山輸一笛하니 却疑身在畵圖中이라(십리강산에서 피리소리 흘러오니 도리어 이 내 몸이 그림 속에 파묻혔네.)" 한즉

 얼마 후에 홍 하의가 잠을 깨어 사겸에게 일러 가로되,

 "그대가 어디서 왔다고!"

 신학사가 가로되

 "韓內禁의 운자 부름이 기특하고 기특하도다."

 하며 인하여 그 일을 얘기할쌔 하의가 크게 웃으며 가로되,

 "그대는 속임을 당하였네. 이 사람은 나의 처남인 한 사겸이니 이번 새로 장원 급제한 사람일세"  

한즉

 신 학사가 악연히 놀래어 존경하여 그에게 속은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서평이 거짓 무인이라 칭하였는데 신 공이 깨닫지 못하고, 망녕되이 업신여기다가 그 앎에 이르러서는 망연 자실하여 공경하기를 겨를이 없게 하거늘, 韓文公이 이르되, '오만으로써 흉덕을 삼음이 그 마땅치 않으랴.' 한즉, 옛날로부터 현인 달사가 빛을 숨겨 세상을 희롱하는 이가 많은지라, 검은 말과 황소 또는 암컷과 수컷을 가려내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그 신 공의 서평을 대우하지 않은 것이 幾希한 바라. 가히 경계할 것이로다.

                                                         <蓂葉志諧>

 

          # 수기부시(羞妓賦詩, 기생에게 바친 부시)

 

 영남 사는 呂씨가 明經科를 얻어 湖西亞使가 되었더니, 하루는 여러 기생을 이끌고 뱃놀이 차로 백마강 중류에 이르러 여러 기생들을 돌아보고 이르되,

 "아름답도다 산하여 이것이 참으로 동국의 승지강산인데 바위를 가리켜 落花라 함은 어쩜이뇨!"

 한 기생이 대해 가로되

 "소인이 일찌기 듣건댄 '백제 의자왕이 날로 궁녀와 더불어 노닐쌔, 당나라 군사가 둘러 싸매 궁녀가 다 이 바위에 다투어 올라, 물에 던져 죽은 연고로 드디어 낙화암이라 이름한다.' 하옵니다." 한데  아사께서 어찌 모르리이까."

 여씨가 가로되

 "사서삼경을 내가 꿰어 뚫어 외우며 사략통감을 또한 다 섭렵하였으나, 東史에 이르러서는 자세히 보지 못하였느니라."

 기생이 가로되

 "일찌기 이 별성(사또)이 노시는 것을 보았으니 옛을 느낀 賦詩가 없지 않겠거늘 오늘 석상에 홀로 한 수의 시도 없으시나이까?"

 여씨는 능히 詩賦를 하지 못하여 기생에게서까지 업신여김을 당하기 싫어, 반나절이나 끙끙거리다가 겨우 두 귀의 글을 이루어 마디를 치면서 읊어 가로되, 

 

        憶昔曾遊地하니     

        淫帙國雖亡이라

        江山之如此好한데

        義慈王流連固無罪矣라.

       (옛님이 놀던 곳 돌이켜 보니

        음탕으로 나라는 망하였어라.

        강산이 이렇듯 아름다운데

        의자왕이 놀았단들 또 어떠리.)

 

 라고 하였다.

  이에 이르러 이 얘기를 듣는 이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야사씨 가로되

사람에게 재주와 무재가 있으니, 바야흐로 재주 없음을 보임은 가하거니와 재주 없는 것이 재주있는 체함은 망녕됨이라. 亞使가 기생의 말을 부끄러워하여 굳이 그 능하지 못한 바로써 詞林墨客에게 웃음을 샀으니, 망녕됨이 아니고 무엇이리오.

슬프도다. 明經科에 입방한 자가 이에 이 모양인즉 국가에서 사람을 위하는 본이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 

 

                                                                                   <蓂葉志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