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姑責翻身(고책번신)/命奴推齒(명노추치)/忘祥愧從(망상괴종)

如岡園 2021. 10. 20. 18:06

          고책번신(姑責翻身, 몸을 뜅겨치라고 시어미가 책하다)

 

 어떤 촌 할미가 그 젊은 며느리와 더불어 넓은 들에서 김을 맬쌔, 문득 소낙비가 크게 쏟아져 시냇물이 넘쳐흘러, 할미가 시냇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가에서 어정거리고 있었더니, 문득 한 청년이 있어 지나가면서 가로되,

 "날이 저물고 물이 깊은 고로 여인이 능히 건너지 못하리니, 제가  업어 건너드리리다."

 할미가 다행히 여겨,

 "원컨댄 먼저 며느리를 건너 준 뒤에 나를 건네라." 

 청년이 바로 그 며느리를 업고 먼저 건네 주고, 건너 언덕에 이르러 끌어안고 交合하거늘, 할미가 이를 바라보고 높은 소리로 외쳐 가로되, 

 "며느리야 며느리야...... 몸을 뜅겨쳐라. 몸을 엎치락 뒤치락하라......"

하였다.

 얼마 후에  또한 다시 할미를 업고 건너가서, 또한 누르니 며느리가 도리어 입술을 깨물면서 가로되, 

 "아까 나로 하여금 몸을 뜅겨쳐라 하시더니, 어머님은 능히 몸을 뜅겨치겠습니까? 이 판국에 능히......"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촌할미가 며느리를 꾸짖어 간통을 거절케 함이 어찌 그 준엄하뇨? 그 스스로가 당하게 됨에 미쳐 마음에 마음에 흡족 더러운 짓을 받으니, 마땅히 그며느리가 도리어 입술을 깨물만 하다. 

슬프도다. 세상의 사람 꾸짖음이 무겁고 주밀하고 자기를 꾸짖음은 가엽고 간약하니, 이것이 어찌 이상하리오.

           <명엽지해> 

 

          # 명노추치(命奴推齒, 종에게 이빨 찾아오라 하다)

 

 선비 최생의 아비가 함흥통판(咸興通判)이 되었더니, 최생이 따라가서 한 기생을 사랑하여 깊이 침혹하였거늘, 아비가 체차되어 돌아감에 최생이 기생으로 더불어 서로 이별할쌔 기생이 손을 잡고 울면서 가로되, 

 "한 번 이별한 후에는 다시 당신의 얼굴을 보기 어려우니, 원컨댄 낭군의 몸에서 무엇을 하나 떼어 주시면 한평생 잊지 않을 표적으로 삼겠습니다," 

하니 생이 곧 한 개의 이(齒)를 빼어 주었더니, 중도에 이르러 타고 가던 말을 길가 녹음 아래에서 먹이며 쉬다가, 바야흐로 기생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릴쌔, 어느새에 한 젊은이가 있어 그곳에 이르러 눈물을 닦으면서 울더니, 또 딴 젊은이가 따라와 그도 또한 눈물을 흘리는지라. 생이 마음에 괴상히 여겨 물어 가로되,

 "너의 무리는 어떠한 연유로 인하여 울고들 있느뇨?"

 한 놈이 나와서 가로되,

 "소인은 서울의 재상가집 종이온데, 일찌기 함흥 기생에게 빠진 뒤로 사랑에 깊이 탐익하여, 이미 오래 되었거늘, 기생이 통판의 아들에게 사랑을 받은 바 되어 그 옛날의 정분을 위하여 이따금 틈을 타 가지고 상종하였더니, 방백의 아들이 이제 또한 그 기생을 사랑하개 되매 문을 깊게 닫고 나오지 않는고로, 인연을 아주 끊고 돌아 가는 길인데, 이로써 지금 울고 있었습니다." 하니, 또 한 놈이 가로되,

 "소인은 본래 서울의 장사군으로, 작년에 北關에 갔다가 한 기생이 자색이 아름답다 함을 듣고, 衙童이 바야흐로 손에 넣었으매, 소인의 재화를 써 기며 틈을 타서 문득 통하여 두 사람의 정분이 교합하여 은밀하더니, 이제 아동은 겨우 이미 서울로 돌아가게 되매, 소인이 스스로 마음을 놓고 주물러 향락하였으나, 어찌 방백의 아들이 또한 얻어갈 줄 헤아렸으리오. 깊이 감영 안에 가두어 두어 다시는 엿볼 인연이 없었으므로 마음과 간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거늘, 이제 높으신 어른의 눈물 뿌리는 것을 보고, 또한 저 사람의 눈물 흘리는 것을 보니, 자연히 비감하여 몰란겨를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에 생이 기생 이름이 누구냐고 물은즉 두 놈이 곧 아울러 고하는데, 그것이 다 생이 가까이 한 바 기생이었다. 생이 악연 자실하여 가로되,

 "아프고 아프도다. 천한 물건은 족히 생각할 바 못된다."

 하며 곧 노복에 명하여 가서 그 이(齒)를 찾아오게 하니, 기생이 박장대소하면서 가로되, 

 "어리석은 자식은 모두 죽여 없앨 것이로다. 기생 집을 꾸짖은 것이 어리석지 않으면 망녕되다 할 것이다."

 하여 드디어 한 개의 포대를 뜰에 내던져 가로되,

 "너의 주인의 이빠디 따위를 내가 어찌 능히 가리어 알 수 있으랴. 네가 가히 가리어 가거라."

하여 노복이 나아가 본즉 이(齒)가 포대 안에 그득 찼는데, 가히 너댓 말이나 실히 되는지라, 노복이 웃으면서 물러 갔다고 한다. 

 

야사씨 가로되 楊子가 一毛를 떼어 천하를 이롭게 하더라도, 오히려 또한 하지 않는다 하였거든, 하물며 한 계집에게 미쳐서 마음에 흔연히 잇빨을 빼어 주고, 부모의 유체를 돌아다보지 않으니, 유혹됨이 심한 자이로다. 또한 나무 밑에서의 두 사람의 말을 들은 후에 크게 기생의 음란하고 더러운 것을 깨닫고, 이에 자기의 뺀 이를 돌리고자 하였거늘 이 잇빨은 가히 찾을 수가 있을 것이나, 그를 능히 다시 심을 수 있으랴?     

                      <명엽지해>

 

 

 

          # 망상괴종(忘祥愧從, 대상을 잊어 부끄러워진 종형)

 

 어떤이가 그 숙부의 大祥을 당하여 시골로부터 서울로 향할쌔 종일 길을 가다가 날이 어두어 숭례문에 이르렀거늘, 문이 이미 닫혔기에, 드디어 연못가 저자보는 이의 가게에 들어가, 신 신은 발로 앉은 채 그 파루 치기를 기다려, 바로 상가로 향할쌔, 고요하여 아무런 제사지내는 형적이 없고, 그 종형이 바야흐로 무릎을 펴고 한참 자는 판국이라, 속으로 생각키를 하늘이 장차 맑음에 반드시 이미 제사가 파했으리라 생각하며 종형을 불러일으키며,

 "고향의 사람들은 아예 말할 수 없삽고, 탄 말이 또한 용렬하여 입성치 못하였사와, 어제 밤에 길가에서 새웠으며, 이제 겨우 들어 왔사오니, 도무지 불민한 탓인가 하오며 죄송만만입니다."

 한즉, 종형이 가로되,

 "무엇이 스스로 죄가 있다 하여 사죄하여 마지 않으며, 무슨 대사가 있기로 恨이 미치지 못한다 하나?"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다른 일이 있으리까. 제가 성의가 없어서 오늘 숙부의 대상에 미처 참예치 못하였으니, 실로 자식의 도리가 아니옵니다. 어찌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한즉, 종형이 악연히 놀라며 가로되,

 "오늘이 과연 대상날이어늘 우리 집에서는 물론 생각도 못했구나!" 하였다. 

 

야사씨 가로되

남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버이에게 효도함은 죽을 때까지 그 부모를 생각하고, 오십에도 생각하는 이가 있겠거늘, 하물며 삼 년은 천하의 통상이 아니냐. 대소상 안에 호곡애모치 않는 날이 없어야 할 것인데, 그 사람은 물론 대상을 잊었으니, 어찌 가히 인간의 이치로써 꾸짖으랴.         

                                                                                                 <명엽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