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B(논문·편글)

젊은 날의 비망록에서(39)

如岡園 2021. 12. 10. 13:21

不運한 청춘을 위한 찬가(1)

 

 전쟁의 아귀찬 발톱이 마구 찢고 갈갈이 헤쳐버린 폐허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젊음이 송두리째 날아간 자신의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하고 놀랐다. 순진무구하던 소년은 어느새 세상을 죄다 알아버린듯 노회한 청년으로 변신되어 있었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볼 때면 내 가슴은 뛰노라!' 하고 고운 꿈에 젖던 시절이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가 옳다.' 하던 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긍정이 한꺼번에 폭풍우 속에 흩날려 없어지고, 노을 비낀 피비릿내 나는 황야 앞에 망연히 선 청년은 "영원을 읊조리는 자를 죽여라. 인간을, 사랑을, 평화를 웅얼거리는 자를 죽여라. 오늘 나는 이렇듯 황야 위에 서 있을 뿐이다." 하고 침통하게 중얼거렸다. 

 성스러운 예배당의 종소리도, 은테 안경 위로 벗어진 대머리를 번쩍이며 성난듯 연설하는 위엄한 교훈도, 다시는 노회한 소년의 변모를 고칠 수는 없었다. 

 천만가지 원칙도 교훈도, 이들이 이유 없이 포탄 아래 갈갈이 찢겨 죽어 나자빠진 시체 앞에서 체험한 것보다도 진실하고 절박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다.', '세계는 인간으로 가득 찼어.' 하고 외치는 노아의 최후의 희망마저도 똑같이 전쟁에 염증이 난 크리스찬의 총알에 죽어버리는 생생한 장면을 우리는 '젊은 사자들'에서 보았다. 

 바로 이것이 애틋한 꿈도, 절절한 바램도, 포근한 사랑도 깡그리 잃어버리게 한 유일한 교훈이었던 것이다. 

 이제 내게 누가 과연, 어느 누구가, '인생은 이러 이러한 거니라!' 고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위선의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나는 욕망한다.' 하고 어떤 어두운 면이건 드러내고서 뚜렷이 선언하고 행동하라.

 내일을 믿을 수 없는 인간에게 두려울 것이 없다. 오직 오늘만이 있다. 오늘을 무한히 살라! 

 눈부시게 빛나야 했을 젊음이 고무지우개로 쓱 문지르듯이 지워버려졌을 때, 하필이면 이런 세상에 태어난 자기가 밟아뭉개고 싶도록 미워졌다. 청년은 우선 잘못태어난 자기에 대한 반항으로부터 일어서게 된 것이다.

 도덕적 양심, 표준적 가치관념, 영원에의 신뢰...... 이런 건 저 상투쟁이 위선자나 골동품화한 오조리티에게나 배가 터지도록 쳐먹여주라! 

 아무도 내가 빼앗긴 젊음을 되찾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이렇게 악을 쓰며 외친 청년의 가슴 속에는 그러나 저 잊을 수 없이 분하고 애절한 윌프렛 오우웬의 피어린 시가 흥건히 내배어 흘렀던 것이다.

 

     소무리처럼 죽어가는 이 사람을 위해 조종 소리가 어디 있는가

     기괴한 거포의 노호밖에는

     투덜거리듯 소총이 서둘러 주문을 외울 뿐이다

     더 이상 속이지 말아다오

     기도도 조종소리도 그쳐라

     서글픈 소리로 곡소리도 내지말라

     요란한 포탄의 함성 -

     미칠듯한 합창 슬픈 마을로부터 그들을 불러낸 나팔소리만으로도 족하노니

     이 숱한 전사자를 위해 밝힌 촛불이 어디 있는가?

     소년들의 손에서 말고

     그 눈에 고이는 성스런 눈물의 빛으로 조상케 하라

     소녀들의 창백한 얼굴 빛으로 그 주검을 감싸게 하라

     조용히 가다듬는 마음의 부드러움으로 꽃을 엮어 바치라

     뉘엿뉘엿 져가는 어스럼 앞에 이밤도 고요히 내리는 창문 

 

                                                                        196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