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청춘을 위한 찬가(2)
시간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리고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크고 깊었던 상처가 하루 이틀 시침과 함께 아물어 갔다. 그리고 어느듯 거리에는 예대로의 생활이 뻔질하게 넘쳐 흐른다. 파괴된 터전 위에는 어느새 고층 건물이 하늘을 가리우고 죽어간 사람들의 기억은 사진틀 속의 벽화가 되어버렸다. 어느새 사람은 전쟁 영화를 심심풀이로 멀리서 흥미있게 바라보게까지 되었다.
모든 것이 예대로 돌아간 것이다. 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 아벨의 핏자국처럼 남아서 엉긴채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다. 20대를 문질러버리고 허덕이며 넘은 청년의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다. 차라리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다면 행복하리라. 그러나 허덕이며 넘긴 그 잊을 수 없는 생생한 체험들이 나날이 가슴 속에서 비대해져 가는 것이다. 전후의 혼란이 더욱더 불신을 안겨준다.
'아무도 믿지 말라. 너를 내 놓고는!'
어디를 둘러보아도 누구를 향해도 자기 내부에서는 이렇게 외친다.
참으로 누군가를 붙들고 외치고 싶다. 누구라도 좋으니 확 타버리도록 사랑해 보고 싶다.
자신을 잃어버린 나를 굳게 믿고 껴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의 사랑. 나로 하여금 나도 아직 무엇인가를 그대에게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사랑 말이다. 계산대 위를 더듬는 빨간 손톱의 채색된 사랑이나, 오늘 내 벳드가 공석이니까 채워달라는 타임 업 러브와, 정신착란자처럼 달려가 창부에게 배설해버린 젊음은 한결같이 공허하고 처절한 것이었다.
그렇게도 안타까이 믿고 싶었던 인간이, 꿈이, 자신이, 정말 어처구니 없이 풍선처럼 훌쩍 날아가버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숱한 여인의 낯에서 '사랑'이 아니라 이그러진 자기 자신의 姉妹의 얼굴을 보았고, 저기 먼지처럼 묻어 돌아가는 돈과 비굴과 절망으로 뿌옇게 그늘진 '灰色 人生'을 본 것이다.
다소곳이 피워보고 싶었던 꽃의 鄕愁.
타고 무너진 잿더미 위에 가냘프게 솟아난 꽃은 지금 지나친 肥料의 독소로 싱싱하게 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을 피게 하라. 좀 더 싱싱하고 믿음직한 꽃을......
이 나라의 정원사는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샅샅이 두루 꽃밭을 살펴 보라! 벌레가 어디로 스며들며, 이미 안고 온 병이 무엇인가를 세밀히 살펴보라.
좀 더 떡떳이 가슴을 펴고 구김살 없는 웃음을 꽃들이 웃게 하라. 지난날의 폭풍이 휩쓸어간 아픈 추억을 하나라도 잊도록 푸른 하늘과 따뜻한 햇볕, 달콤한 맑은 물을 마시게 하라.
"......내게 애정을 믿게 할 불은 이미 없어졌다. 내게 모험을 한다는 생각이 나게 할 얼음장 같은 내 방이 이미 없어졌다.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있는 것은 오직 절대적인 空虛 뿐이다. ......" (쌩 떼쥬베리)
그렇다. 바로 이 절대적인 공허 위에 우리는 상처투성이의 자기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1960년
'여강의 글B(논문·편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젊은날의 備忘錄에서(42) (0) | 2022.01.20 |
---|---|
젊은날의 비망록에서(41) (0) | 2022.01.12 |
젊은 날의 비망록에서(39) (0) | 2021.12.10 |
젊은날의 비망록에서(38) (0) | 2021.11.05 |
젊은날의 비망록에서(37) (0) | 2021.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