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어의 한국학

심모분작(沈毛分酌)/사부전약(士負前約)/양남상합(兩男相合)

如岡園 2022. 8. 6. 20:33

          # 심모분작(沈毛分酌, 음모 한 오리를 나누어 마시다.)

 

 호남 어느 절에서 무차대수륙재(無遮大水六齋)를 지낼 때, 남녀가 모여들어 구경군들이 무려 수천 명이나 되었다. 재가 파한 후에 나이 적은 사미승 아이가 도량(道場)을 소제하다가 여인들이 모여 앉아 놀던 곳에서 우연히 여자의 음모 한 오리를 주워 스스로 이르되, "오늘 기이한 보화를 얻었도다."  하며 그 털을 들고 기뻐 뛰거늘, 여러 스님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함께 모여 법석이로되, 사미승 아이가 굳게 잡고 놓지 않으며

 "내 눈이 묵사발이 되고 내 팔이 끊어질지라도 이 물건만은 가히 빼앗길 수없다." 

하고 뇌까리니, 여러 스님들이

 "이와같은 보물은 어느 개인의 사유물일 수는 없고, 마땅히 여럿이 공론하여 결정할 문제니라." 하고 종을 쳐서 산중 여러 스님이 가사장삼을 입고 큰방에 열좌하여 사미아이를 불러

  "이 물건이 도량 가운데 떨어져 있었으니, 마땅히 寺中의 공공한 물건이 아니냐 . 네가 비록 주웠다 하나 감히 어찌 이를 혼자 차지하리오?" 사미가 할수없이 그 터럭을 여러   스님 앞에 내어 놓은즉, 여러 스님이 유리 鉢盂(발우)에 담은 후에 부처님 탁자 위에 놓고

 "이것이 三寶를 藏했으니, 길이 후세에 서로 전할 보물이라." 하거늘 여러 스님이

 "그러한즉 우리들이 맛보지 못할 게 아니냐?"

 한즉, 혹자는 또한

 "그러면 마땅히 각각 잘라서 조금씩 나누어 가지는 것이 어떠냐?' 하니 여러 스님이 가로되 "두어 치밖에 안되는 그 털을 어찌 천여 명 스님이 나누어 가지리오?"

 그때 한 客僧이 끝자리에 앉았다가,

 "소승의 얕은 소견으로는 그 털을 밥짓는 큰 솥 가운데 넣어 쪄서 돌로 눌러서 물을 길어 큰 솥에 채운 후에, 여러 스님께서 나누어 마시면 어찌 公共의 좋은 일이 아니리오. 나와 같은 객승에게도 한 잔만 나누어 주신다면 행복이 그 위에 없겠노라." 한즉 여러 스님이

 "객 스님의 말씀이 성실한 말씀이라." 하고 그 말씀에 찬성했는데, 그때 마침 절에 백 세 노승이 가슴과 배가 아프기를 여러 해, 바야흐로 추위를 타서 문을 닫고 들어앉았거늘, 이 소리를 전해 듣고 흠연히 나타나 합장하며 객승에게 치하해 가로되,

 "陋寺에 오신 객스님이 어찌 그 일을 공론함이 공명정대 하뇨. 만일 그 터럭을 쪼개어 나눈다 하면, 늙은 병승과 같은 나는 그 터럭을 눈꼽만한 것도 돌아오지 않을 터이니...... 오늘 객스님 말씀에 가히 한 잔씩 나누너 먹는다 하니, 그것을 마신 후에는 저녁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여한은 없겠소이다. 원컨댄 객스님은 成佛, 成佛하소서." 하였다 한다.

                                                                                                                                              <蓂葉志諧> 

 

          # 사부전약(士負前約, 선비가 짊어진 이전의 약속)

 

 예전에 서로 사귀어 천하기 그지없는 갑과 을 두 선비가 서울로 글공부도 함께 왔겠다.

 이때 두 친구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여 "우리가 큰 뜻을 세우고 마땅히 학업에 힘쓸 바에야 더욱 절차탁마의 공을 더하여 입신양명의 터를 닦을 뿐이요, 지조를 옮겨 권문세도가의 문객질은 아예 하지 말자." 하고 굳게 맹세하였다.

 그러나 두 선비는 여러 해 세월이 흘렀음에도 등과치 못하거늘, 그 중에 한 선비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이는 들어가고 해는 저무는데 이름도 얻지 못하였으니 밖으로 활동하여 가만히 권문세도가에 부탁하여 實利를 거둘만 같지 못하다." 하고, 하루는 새벽에 몰래 권문세도가에 도착해 보니, 대문이 처음 열리며 구종별배가 늘어선 가운데, 뇌물을 가지고 기다리는 자가 많았다.

 드디어 몸을 이끌어 여러 겹의 문을 지나서, 멀리 대청 위를 바라본즉, 촛불이 적이 흔들리고 주인 대감이 장차 관아에 나가려고 하는지라, 곧 그 閤下에 창황히 通名하니 청지기가 이르되,

 "주인 대감께서 아직 기침치 않았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하며 객실을 가리키거늘,

 갑이 그 문을 열고 들어간즉 친구인 을이 먼저 들어와 있는지라, 두 사람이 서로 쳐다보니 어이없고, 놀랍고, 또한 크게 부끄러워 그 집에서 나와 흩어져 가버렸다 한다.

 듣는 자 웃지 않는 이 없더라.

                                               <蓂葉志諧> 

 

          # 양남상합(兩男相合, 두 남자의 상합)

 

 宣廟朝 무신 연간에 上의 玉侯가 편치 못하여 약방제조 이하가 다 궁중에서 잘 때에 醫官同知 이명원이 나이 칠십에 提調 崔尙書의 곁에서 자니, 밤이 되매 이명원이 直廳을 자기 집으로 그릇 알고, 또 최상서를 자기 처로 오인하여 상서의 웃배에 다리를 얹거늘, 상서가 下吏를 불러 쫓으니라.

 또 仁廟 경진연간에 의관동지 최득룡이 傳敎로 약방에서 자더니, 下番僉知 이순원과 함께 자니 순원이 득룡을 처로 알고 장차 깔아 누르려거늘, 득룡이 서서히 가로되, "兩男相合이 이익이 없다."하니 순원이 크게 부끄러워 교체를 기다리지 않고 숙직도 하지 않은채 달아났다더라. 

                                                                                                                     <蓂葉志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