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佛敎, 그 思想의 原理(6), 愛欲의 가시/不殺生/나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

如岡園 2022. 8. 11. 21:21

          # 愛欲의 가시

  난타라는 비구는 붓다의 從弟 뻘이었는데 붓다의 盛名을 듣고 出家했지만 수도생활이 싫어서 속세의 생각이 간절했다.

 "벗들이여, 나는 출가의 생활을 견딜 수 없오. 나는 속세로 돌아갈까 하오."

 그는 그런 말을 친구들에게 실토하기도 했다. 그 말은 붓다에게도 들어갔다. 붓다는 난타를 불러 말했다. 

 "난타여, 그대는 벗들에게 속세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는데 그게 진실인가."

 "大德아,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난타여, 그대가 속세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대덕아, 제가 나라를 떠나올 때 釋伽족의 예쁜 아가씨가 손을 흔들며 '빨리 돌아오셔요.' 하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 붓다는 난타의 팔을 꼭 잡고 그를 天界로 데려갔다.

 거기엔 天女들이 가득히 天神, 釋提桓因에게 문안드리러 모여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그림 같았다.

 "난타여, 저 天女들과 釋伽族의 아가씨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대덕아, 저 天女들에 비하면 그네들은 잔나비나 진배 없습니다." 

 "그럼, 난타여, 그대는 저 天女를 얻도록 내가 증인이 되지."

 거기서 붓다와 난타는 祈陀精舍로 돌아왔다. 난타는 다시 수행을 계속했는데 주위의 비구들이 난타는 천녀를 얻는다는 약속아래 수행을 하고 있다고 쑤근대었다.

 난타는 그 소리를 듣자 분연히 修行에 전념하여 究極의 경지를 실현하게 되었다.

 난타는 다시금 붓다를 방문하여 먼저번의 약속을 해소해 달라고 했다.

 붓다는 그의 뜻을 알고 다음과 같은 偈를 설파했다. 

     진흙의 늪을 넘어,

     愛慾(kamianha의 譯. 性愛의 격렬한 상태)의 가시를 부시던

     인간의 어리석음을 滅하여

     苦樂에 흔들리지 않음이여.

     이런 사람을 진실로 比丘라 하나니 

 이것은 애욕에 사로잡힌 제자를 붓다가 어떻게 敎導했던가를 보여주는 드문 일화다.

 

          # 不殺生

 

 祇園精舍로부터 舍衛城 읍내까지 가자면 약 10리즘 되는 거리다. 그 길을 붓다나 그 제자들이 托鉢을 하기 위해 매일 같이 오가는 것이었다.

 어느 날 붓다는 사위성에서 탁발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개울가에 아이들이 한패 모여 노는 것을 보았다.

 무심한 아이들이 즐겨 노는 모습을 보자 붓다의 마음도 느긋이 끌렸다. 붓다가 이윽히 바라보니 아이들은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너희들도 남들한테 몹쓸 짓을 당하면 기분 좋을 리는 없겠지."

 아이들은 비로소 낯을 들고 붓다를 바라 보았다. 그가 붓다라는 것은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大德아, 몹쓸 일을 당한다면 저희들도 싫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아이들은 그 물고기를 개울에 놓아 주었다.

 그것을 보자 붓다는 부드러운 얼굴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이야기는 붓다의 어느 하루의 생활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엔 이른바 아히므사(Ahimsa 不害 혹은 不殺生이라고 번역된다.) 라는 붓다의 큰 가르침이 숨어 있었다. 

 

          # 나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없다

 

 拘嶐羅王 波斯匿(파세나디)에겐 末利(맛리가)라는 현명한 왕비가 있었다. 末利란 흰꽃이 줄줄이 피는 花木인데 이 왕비는 매일 같이 말리의 꽃가지를 동그랗게 해서 머리를 꾸미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어느 날 波斯匿王은 왕비와 함께 높은 누각에 올랐다. 발 아래는 拘薩羅의 산야가 아득히 펼쳐 있다.

 웅대한 조망이었다. 그때 왕은 문득 왕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末利여, 이 넓은 세상에 그대는 어떤 사람이 그대 자신보다 사랑스럽다고 생각되는 이가 있는가."

 왕비는 한 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마마, 저에겐 이승에서 자기보다 사랑스럽다고 생각되는 이가 없습니다. 마마께선 어떠하온지요."

  "말리여, 나도 그렇게 밖에 생각지 않는다."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했다. 그렇지만 곧 이 결론은 어딘가 틀려 있지 않을까 하고 왕은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날마다 가르침을 받는 붓다의 말씀에는 그런 것이 없었던 것만 같았다.

 파세나디 왕은 누각에서 내려와 기원정사로 붓다를 방문하고 이 일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붓다는 이 세상에서 자기자신보다 사랑스럽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다는 왕과 왕비의 결론을 듣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 偈로서 그들에게 가르침을 내렸다.

     사람의 생각은 어디에도 갈 수가 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간다 해도 사람은 자신보다 사랑스러운 이를 찾아낼 수가 없다.

     그와같이 남들에게 있어서도 자기는 이 위에 더 없이 사랑스럽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아는 이는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

 남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은 붓다가 아히므사라고 일컬어 五戒의 第一로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