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라밋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동과 서는 사막을, 북쪽은 나일강 유역을 안고 있는 나라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나일의 상류는 범람하고 그리하여 이집트의 국토는 비옥해졌으며 그 주민 함족은 농경에 기쁨을 듬뿍 가졌었다.
그리스의 史家 헤르도토스의 말마따나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었다.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라면 나일강의 델타(Delta)다. 이집트의 경의와 비밀은 나일의 델타를 떠나 증명할 수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집트 하면 곧 연상되는 것이 하나 있다. 피라밋이다. 그것은 이집트 문명의 거룩한 역사다.
기원 전 3200년 경 이집트는 이미 통일국가를 이룩했으며 절대적인 왕권이 확립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들추어 보면 거의 30개의 왕조가 교체되었는데, 그것을 보통 古王國, 中王國, 新王國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러한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것은 피라밋(이집트語 피레무스=높이)일 게다. 이 유적은 나일강의 델타지방에 있는 고대 국왕의 무덤이다. 그 규모의 방대함은 왕권을 모름지기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모양은, 밑바닥이 정사각형, 네 개의 斜面은 각각 이등변삼각형이며, 꼭대기는 맞닿고 있다. 한가운데 왕의 미이라를 안치하는 방이 있고 사 면엔 그 방으로 깊숙이 파고든 창문 하나가 뚫어져 있는데 보름날 밤이면 달빛이 일직선으로 스며, 미이라의 얼굴을 비쳐준다. 이집트의 측량술은 이만큼 정확했었다.
이 피라밋이 현재 대소 도합 30개쯤 남아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은 기제에 있는 쿠후왕의 피라밋으로 높이 백 사십 미터, 밑변의 길이 이백사십 미터의 규모다.
쿠후왕은 제4왕조의 왕이다. 헤르도토스는 이를 케오프스 왕이라고 하며, 피라밋의 흥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케오프스는 모든 신전을 폐쇄했으며, 이집트인의 예배를 금지시켰고, 그리하여 그들을 모두 피라밋 건설의 강제 노동에 동원케 헸다.
아라비아 산중의 채석장에서 나일강까지 돌을 나르는 사람도 있었고, 강을 건너 운반해 온 돌을 다시 루비아산까지 옮겨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노동은 십만명의 사람이 3개월 교대로 종사했고 돌을 운반하는 도로를 만드는 데에만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피라밋을 세우는 토대와 왕의 관을 넣을 지하실을 만드는 데 십년, 그러니까 피라밋에만 이십년의 세월을 바친 셈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10만명의 이집트인이 40년간 끊임없이 강제노동을 한 결과, 얻은 것이 쿠후왕의 피라밋이었다.
헤르도토스의 말을 빌리면 왕은 마침내 자금이 궁해서 사랑하는 딸의 몸까지 팔아야만 했다는 말을 하고 있으나 이는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다.
아무튼 케오프스와 그의 아들 케플랜의 治世 105년 동안은 줄곧 신전이 닫쳐 있었고 이집트인은 무척도 많은 괴로움을 겪었다. 그들 왕의 이름을 입에 담기마저 꺼려했다는 이집트인의 심정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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