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
민주 정치의 이상을 간결하게 표현한 것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1809~1865)이 게티스버그에서 행한 연설에서 나온다.
게티스버그는 펜실바니아주의 남부에 있는 도시로 남북전쟁의 싸움터였다. 이곳에서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대격전이 벌어져 북군이 대승했다. 전쟁은 그후 2년간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戰場의 한쪽에 그해 가을 남북전쟁에서 쓰러진 용사들을 모시는 국립묘지가 만들어졌고 11월 19일에 그 奉獻式이 거행되었다. 이에 링컨이 한 연설이 소위 <게티스버그 연설>이다.
링컨의 이 연설은 미리 예상되었던 다른 연설자가 두 시간에 걸쳐서 열변을 토한 뒤에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요청을 받고 한 것이었다. 前者의 열변은 어떠한 내용이었는지 사람들이 깨끗이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링컨이 한 불과 2백 수십語의 그 연설은 불후의 것이 되어 남아 있다. 미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은 그 全文을 암기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링컨은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쓰러진 용사들의 공을 찬양한 다음에 다음과 같은 말로써 끝을 맺았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이에 그 결의를 굳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 죽은 자들로 하여금 개죽음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이 국민은 하느님 아래 새로이 자유를 가꾸어 낸다는 것을. 그리고 譯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를 지상에서 절멸시키지 않는 다는 것을'
'인민의, 인민에 의한 , 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말이 이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링컨도 '저'라고 말하였듯이 그도 다른 사람의 말을 사용한 것이었다. 당시의 設敎家 디오도 파커(1810~~1860}라는 사람의 저서에 이미 이 말이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링컨이 아마 이 말을 파커로부터 빌린 것 같이 생각된다. 파커보다 전에는 정치가이고 변론가인 다니엘 웨브스트(1782~1852)가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옛날이다.
14세기의 영국에 죤 위클리프라는 종교개혁의 선구자가 있다. 그는 성서의 英譯을 처음으로 완성시킨 사람으로 유명한데, 1384년에 출판된 그의 영어판 구약성서의 서문에 이 말이 나와 있다. 종교개혁과 민주주의가 결합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영어의 Government에는 '政府'라는 뜻도 있어서 이 名句도 그렇게 번역되는 일이 있지만 여기서는 '統治', '政
治'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또 '인민의 정치' 라는 것도 인민이 행하는 정치, 곧 인민의 주권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또 인민을 다스리는 것, 곧 통치자로서의 인민을 나타냈다는 주장, 기타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被治者로서의 인민을 나타냈다는 주장, 기타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피치자로서의 인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 될 것 같다.
"국민의 일부를 끝까지 속일 수는 있다. 국민의 전부를 한때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전부를 끝까지 속일 수는 없다."라는 말도 링턴이 남긴 말로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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