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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역사와 일화(13), 아우레카-발견했다/幾何學에 王道는 없다

如岡園 2024. 8. 8. 18:01

          # 아우레카-발견했다

 

 고대 그리스, 시라쿠사의 철학자 알키메데스(기원전 187-212)의 말이다. 시라쿠사의 군주 히에르 왕은 순금의 덩어리를 직원에게 주어서 왕관을 만들었는데, 완성된 왕관에 불순물이 들어있지나 않을까 의심하고 알키메데스에게 조사하라고 명했다. 왕관을 부셔서 분석할 수도 없는 일이라, 알키메데스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어느날 목욕탕에 들어갔더니 더운물이 물통 가득히 차 있었다. 그 안에 들어가자 물이 넘쳐 흘렀다. 그 순간, 어떤 인스피레이션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물 가운데 물체를 넣으면 같은용량의 물이 배제된다. 금은 은보다 무거우니까 같은 무게의 은 덩어리는 금덩어리보다 많은 물을 배제할 것임에 틀림 없다. 이것이 소위<알키메데스의 원리>이다. 알키메데스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에우레카, 에우레카'라고 외치며, 발가벗은 채 집으로 달려와서는 곧 실험에 착수했다. 그리고 왕관에 불순물이 섞여 있음을 증명했다. 

 이미 아이들에까지도 알려진 고사이지만, 이 이야기는 진리를 위하여 몸부림치는 오래되고도 새로운 인간 정열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역시 알키메데스가 한 말 가운데, "나에게 支點을 달라. 그러면 지구를 움직여 보이겠다."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는 '지렛대의 원리'라는 물리 법칙을 비유하여 말한데 불과하지만, 이 역시 진리에 대한 신앙과 정열을 강열하게 느끼게 하는 말이다. 그것은 서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원칙적인 선언이요 르네쌍스의 휴머니즘에도 통하는 정신적 계보일 것이다.

 알키메데스의 최후 역시 너무나도 극적이었다. 시라쿠사가 외적의 공격을 받아, 마침내 성중으로 적이 쳐들어왔을 때, 늙은 알키메데스는 기하학의 문제를 풀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적병은 그를 끌고가려 했으나 알키메데스는 응하지 않고, "이 문제를 풀때까지 기다려 주시오." 하고 말했다. 피에 주린 병사들은 버럭 화를 내며 늙은 철학자를 베어 죽이고 말았다. 

 다른 많은 분야에 있어서도 그러하듯, 그리스는 알키메데스를 통하여 學究에 대한 하나의 理想像을 제공하고 있다. 

 

          # 幾何學에 王道는 없다

 

 기하학은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계절적으로 범람한 후, 논밭의 측량을 새로 하고 경계를 정할 필요성 때문에 생겨났던 것인데 그것을 학문으로서 체계세운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학자 유우클리트(기원전 867~283)이다.

 평면 기하학인 유우클리트 기하학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유우클리트의 업적은 13권으로 된 기하학 원본에 정리되어 있으며, 이것은 그 당시의 권위있는 교과서였다.

 유우클리트는 당시의 이집트 왕 프토레마이오스 1세의 초청을 받아 강의를 했다. 왕은 그 방대한 내용에 지레 겁을 먹었다.

 "좀더 알기 쉽게 기하학을 배우는 방법은 없는가?" 왕은 물었다.

 유우클리트는 대답했다.

 "기하학에 왕도는 없습니다." 

 학문의 권위를 말하는 에피소드다.

 확실히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학문, 특히 자연과학과 같은 엄밀한 이론의 세계에서는 어떠한 세속의 권력도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교육의 마당에서는 여러가지 현실적 제약이 존재하고 있다. 훌륭한 교육시설 가운데에서 유능한 교사에 의하여 주어지는 교육이, 불충분한 시설하에서 무능한 교사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교육보다 유효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학문에는 왕도가 존재하며 아마도 이상적인 교육이란 모든 학도로 하여금 왕도를 걷게 하고 있는 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