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로마는 기원전 6세기 경부터 공화제를 채택, 차츰 세력을 더해 갔다. 265년에 이르러서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을 완성했는데, 그 결과 당시 지중해의 최강국이었던 카르타고와의 사이에 격심한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카르타고는 해양민족이었던 페니키아인이 북아프리카의 한 모퉁이에 植民하여 건설한 소수 전제의 국가로, 또 상업국으로 번영을 자랑함과 아울러 그 당시로서는 최대의 해군력을 누리고 있었다.
시실리섬의 이탈리아인이 시라쿠사의 압력을 받자, 처음에는 카르타고에게, 후에는 로마에게 구원을 청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두 나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이것이 포에니 전역의 시작이며 이후 두 나라는 세번에 걸쳐 숙명적인 대결을 되풀이 하게 되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46~341)은 주로 해전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뮤라에앞바다의 싸움이었다. 그 당시 비길데 없는 해군국이었던 카르타고에 대하여, 로마는 그리스의 원조로 군함을 만들어 이 해전에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로마인은 고부브서라는 신무기를 사용했다. 이는 끝에 쇠갈퀴가 달린 거대한 조橋로, 적함에 접근하면 이것으로 적함의 뱃전에 꽂고 군사들이 처들어갔다.
제2차 포에니 전투(기원전 218~201)는 한니발전투라고도 하는데 제1차전투에서의 패배로 복수심을 불태우며 자라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218년 봄, 스페인을 출발하여, 일찌기 군대가 넘어선 적이 없다는 알프스의 준령을 돌파하고 이탈리아에 침입 216년 칸네에의 싸움에서 로마군에게 궤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때 로마군의 생환자는 8만 6천명 가운데 1만 4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한니발은 전승의 기세를 몰아 드디어 로마의 성문 앞에 쇄도했다. <한니발이 온다> ! 그것은 그 당시 로마 시민의 공포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부패한 지도자들은 한니발의 전투에 뒷받침하지 않았다. 그리고 로마인은 인내와 용기로써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제2차 전역의 결과 카르타고는 로마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지중해 시장을 둘러싸고 로마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의 산문작가이며 <農業論>의 저자인 카토오는 원로원에서 연설을 할 때마다 연설 끝을 이렇게 맺아왔다.
" --그리고 나는 주장한다.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로마는 카르타고에 대하여 제3차 포에니 전쟁(기원전149~146)의 군사를 일으켰고, 이를 완전히 멸망시키기에 이르렀다.
카토오는 확실히 유능한 정치가요 학자였으나, 성품이 잔인하며, 겉으로는 점잖은 체하면서도 여자 노예나 여비서와 관계를 했다는 둥, 오래도록 타던 말을 헌신짝처럼 버렸다는둥, 상스러운 일화를 남기고 있었다. 한편 한니발은 智仁勇이 겸비한 명장이었지만 역사의 심판은 논리상의 심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것 같았다. 또 '카르타고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말은, 역사상 숙명적인 국가간의 대립에 있어서, 상대편을 철저히 격멸하라는 뜻으로 여러번 쓰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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