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유택 유감(幽宅遺憾)

如岡園 2006. 3. 29. 19:34

북망 아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스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이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배쫑 배쫑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었네.'

 

 어느 시인의 묘지송(墓地頌)이다.

 머언 들녘엔 마을이 있고 마을 뒤 완곡하게 뻗어 흐른 야산 그럴싸한 자리엔 인생의 무상을 침묵으로 표시하듯이 부드러운 흙, 파란 잔디를 뒤집어 쓰고 옹기종기 무덤들이 솟아 있다.

 어떤 영욕의 길도 무덤으로 통할 따름이기에 무덤에는 인생의 무상이 있고 슬픔이 서려 있지만 무덤은 한 세상을 살다간 인간의 흔적이라서 차라리 아늑한 생명감을 느껴 왔다.

 흙을 파 일구어 농사를 지으며 초가를 짓고 살다가 죽으면 양지살바른 산언덕에 동그마니 봉분을 짓고 잔디를 덮은 사자(死者)의 유택(幽宅)은 그대로 다정한 이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교통이 편리한 시골 차도를 지나다 보면 전래의 무덤에 대한 통념을 깨고 갑자기 새로이 단장한 무덤들이 위용을 드러내 위압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우람한 상석(床石)과 비석(碑石)은 말할 것도 없고 망주(望柱)에 향로석(香爐石) 곡장(曲墻)까지 둘러쳐 있어 명공장상(名公將相)의 역사적 인물의 묘를 새로이 치장한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지경이다.

 무덤에 비석을 세우는 것은 죽은 자의 체면을 세우기 위함보다 산 사람의 체면을 드러내기 위한 때가 많은 것이 현세의 병폐이기도 하다. 조상 숭배의 미풍 양속을 살리는 것은 좋지만 졸부가 된 후손이 너도나도 자기 현시의 방편으로 무덤을 단장한다면 가뜩이나 좁은 국토의 산야는 어떤 모습이 될까 하고 상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친다.

 하루 아침에 전통적 상례(喪禮)를 깨뜨리고 주검을 화장하여 한줌 재로 흩뿌리기가 어렵고 납골당을 마련하여 영령을 집단으로 모시는 일이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라면, 숨은 듯 조용히 자연의 한 부분으로 무덤이 존재할 수 있도록 인공적 치장이라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름없이 살다간 인생의 유택에 상석도 비문도 없으면 어떠냐. 양지살바른 곳에 봉분이 좀 낮아지긴 해도 자손의 정성어린 벌초의 손길이 미쳤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석물(石物)로 거만하게 치장한 무덤은 시체보관소 같아서 역겨움을 느낄 수 있지만 패랭이꽃 피는 외진 언덕에 잔디를 이고 다소곳이 자리잡은 무덤은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거부감이 덜할 것 아닌가. 

  

                                              如   岡  (1986. 5. 9  'ㅂ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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