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쥐를 잡지 않는 고양이

如岡園 2006. 6. 4. 09:07

 "쥐들이 극성을 부려 이웃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를 빌려와 잡게 하였더니 그 고양이는 쥐를 잡기

는커녕 오히려 쥐들과 어울려 장난을 치며 놀았다. 사람의 손에  편히 길러져 제 할 일을 게을리 

하였던 것이다. 나라의 법관이 부정한 짓을 한 자를 제재하는 일에 힘쓰지 않고, 장수가 적을 방

어하는 일에 태만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싶어 개탄하였다. 다른 어떤 사람이 쥐를 잘 잡는 고양이

가 있다 하여 데려와 쥐를 잡게 하였더니 밤낮으로 집 주위를 맴돌며 살피고 쥐가 발견되면 쏜살

같이 달려들어 잡아버리니 10여 일이 채 안 되어 쥐 떼가 잠잠하였다. 배가 고픈 고양이였던 것이

다. 이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을 볼 때마다 부정한 자를 제거하는 것과 비슷하여 느낀 점이 많았

다."

 

이것은 중종 때 사람 崔演의 <民齋集>에 있는 '猫捕鼠說'이란 이야기다.

쥐라는 동물은 호랑이나 사자처럼 위엄도 없으면서 잔재주를 잘 부려 쉬 잡히지도 않고 양식을

훔쳐 먹으며 가구를 마구 쏠아 망가뜨리곤 하여 여간 골치 아픈 짐승이 아니다.

 인간 세상에서 명예를 훔쳐 의리를 좀먹고 이익을 탐하여 남을 해치는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쥐새끼나 무엇이 다름이 있을까. 인성이 황폐하여 명분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실리에만 밝아

저마다 잘 살기를 택하다가 보니 쥐새끼와 같은 사람도 많아져 버린 세상이 되었다.

 義와 禮에서 우러난 羞惡와 辭讓의 마음으로 돌아서서 자정 작용이 일어났으면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쥐를 잡는 고양이의 역할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 본분을 망각한 살찐 고양이를 믿어서도 안된다. 그것은 기껏 사람의 눈을 피해 쥐

구멍이나 드나들며 소란을 피워대는 쥐보다도 더 무서운 피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직에서 일하는 사람은 쥐를 잡지 않는 살찐 고양이처럼 明哲保身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모

름지기 사회 정의에 입각하여 헌신 봉사하는 정신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재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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