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취미 생활의 이상

如岡園 2006. 5. 10. 21:02

 사람이 감흥을 촉진하고 흥미를 가지고 어떤 일에 당면한 것과 같은 상태를 심리학 용어에서 취미라고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취미는 흥미와 낙을 본질로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도덕적 관점보다 흥미적인 관점에 더 많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취미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따라서 모든 일의 처리를 취미활동과 같은 관심과 열정으로 수행한다면 참으로 일은 능률적이며 신속하고 즐겁게 처리될 것이다.

 아무튼 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어떤 일에 몰두하는 생활 습성은 어떤 일의 성취 동인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다. 취미가 본업과는 달리 부차적인 것으로,심신의 위안이나 생활의 오락을 위한 것일지라도 취미생활에서 유발된 생활의 탄력성은 다른 일의 활동 능률에도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건전한 취미생활을 확정하여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그만큼 중요한 일이 된다.

 

 취미가 인간사에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이 낙이나 흥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는데 따지고 보면 인생고해에 일말의 낙이 없다면 당장 질식이라도 하고 말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인간은 굳이 쾌락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부지런히도 낙을 추구하여 왔고 인류 문화의 측면에 쾌락의 추구사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즐거움을 누린다는 일이 취미의 한 속성이라 하여 쾌락에 집착하다 보면 즐거움도 즐거움 나름이어서 취미의 본도를 그르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무릇 인생행락에는 투전노름 같은 '잡기'와, 유희로 대표되는'오락'이 있고,주색이 따르게 마련인 '향락'이 있으며,오락이나 향락보다는 아무래도 품격이 조금 높고 아취를 풍기는 '도락'이 있다. 그런데 '취미'는 낙을 정신적으로 승화시킨 활동이라는 점에서 심심풀이로 장난삼아 해보는 오락이나, 자칫 절조나 정도를 넘기 쉬운 주색이 따르는 향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차라리 도락에 가까운 인생행락이라 할만하다.

 

 사람의 얼굴이 천차만별이듯이 사람의 취미도 제각기 다른 것이니 내 취미로 남의 취미를 다루지 말아야 하고 남의 취미를 단순히 모방할 것만도 못된다. 취미는 그 사람의 사상과 교양과 성품의 자연스런 표현이지 쾌락의 도피처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취미생활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취미는 비생산성을 넘어선 시간의 낭비이며 본업을 망치는 도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거대한 기계문명과 대중사회의 몰개성은 취미생활마저 오도할 가능성이 짙다. 기계문명이 정신문화를 제압하고 있는  문화의 불균형 속에서 인격을 함양한다거나 인생의 의의와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취미생활 본래의 의의를 상실한 전시용 취미생활에 젖을 수도 있는 것이다.

 비뚤어진 근본이 취미의 정당성을 더럽히고 있는 경우는 현대사회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우리의 취미는 각자의 자부심과 성격에 따라서 인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상한 취미가 인품을 높여 주고 있다는 것에만 상도하여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의 취미를 그대로 흉내내는 넌센스를 저지르고 있는 것도 현대인인 것이다.

 현대의 취미생활은 다양하지만 정신적 깊이가 없고 오락성이나 향락성에 너무 크게 지배당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가 타산에 의한 취미생활까지 있는 것이고 보면 도대체 취미활동이라고 이름붙이기조차 거북함을 느낄 지경이다. 같은 취미를 가지는 동료간은 연령 지위 직업을 초월한 인간적 친근감을 가지기 마련인데 거꾸로 인간적 친근을 유지하기 위하여 억지 취미를 가지려는 노력도 있는 것이 현대의 생활이니 취미의 진면목조차 알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취미는 인간의 진실한 마음의 반영에서 우러나야 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미소이어야 하며 정감의 매력에서 싹터야 한다. 잡다한 인간이 잡다한 취미를 가졌으나 나의 진실한 취미는 나의 성벽에 따라 나의 영혼이 인도되는 곳에 있으니 각자의 독창에 따라서 자신의 취미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취미생활은 활동의 능률에도 관계되는 것이지만 심성의 고아함을 길러주는 데 더없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합리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서양식의 취미관은 자칫 잘못하면 취미가 이익 생활의 방편에 기울어지기 쉽거나 육감적인 것으로 빠지기 쉽다. 저속한 취미에 빠져 영혼을 더럽힌다면 시간 낭비는 물론 심성을 좀먹는 독소를 축적하는 일이다.자연과의 교감을 통하여 고아한 취미생활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의 전통적 취미생활은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많다.고독에 의해서 모든 것을 좀 깊이 보게 된 사람, 자기를 응시하게 된 사람에게 자연은 깊은 감동과 정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자연은 그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우리들과 말하지만 그 비밀을 고백하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취미를 표현하여 안빈낙도하면서 대우주의 법칙을 깨닫는다면 취미는 단순한 내 위락의 범주를 넘어선 인간수양이 아니겠는가.

 취미가 내포하는 의미는 외양이나 종별로써 따질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취향의 바탕이 문제이다. 벽면에 한폭의 그림을 걸어두는 것에도 그림을 건다는 사실만 가지고 취미를 논할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 어느 수준의 그림이냐가 취미를 파악하는 관건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취미는 보다 정신적인 바탕이 문제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상관에 아부하고 이권의 사냥을 위해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골프에 취미가 있다고 속단하는 일이나,억지 사교를 위한 바둑판의 응대를 참다운 취미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

 

 지성의 첨단에 서야 할 교양인이라면 자기 나름의 성벽에 좇아 본질에 입각한 취미생활을 확립함으로써 스스로 인품의 향기가 드러나고 정신적으로 결코 메마르지 않는 일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취미는 선천적 소질에 의하여 제약되는 면도 크고 ,성장환경이나 소속된 사회적 경제적 계층이나 성별,유행의 여하 등에 크게 좌우되는 것이긴 하나 궁극적으로 자기의 취미생활의 결정은 자기 자신의 인생의 깊이와 영혼의 소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강 김재환 선생 산문집 如岡散稁. 2003. 2.14. 도서출판 비움 pp 140~14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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