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의 글A(창작수필)

사랑의 매

如岡園 2006. 12. 29. 11:16

 집 안 텃밭에 매화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사람은 늙을수록 외모가 추하게 보이지만 나무는 오래된 것일수록 품위가 있어 보인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은행나무 향나무  팽나무 칭칭나무 괴화나무 등속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 것도 그 나이값에 해당하는 세월이 묻은 때와 연륜이 쌓인 품위 때문이다. 매화나무 역시 오랜 세월이 흐른 것일수록 그 등걸이 품위가 있고 거기에 핀 꽃은 같은 매화꽃일지라도 더 아름다워 보인다.

 텃밭이 있는 집에 살면서 자연히 자연과 친하게 살며, "매화 옛 등걸에 춘절이 돌아오니/옛 피던 가지에 피엄즉 하다마는/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라는 시조가 떠올랐던 나는, 고작 10년 세월을 지난 매화나무에 핀 꽃이 아무래도 부족한 느낌이 든 데다 이 놈의 매화나무가 가지만 무성하여, 웃자란 나뭇가지를 해마다 잘라내곤 하였는데, 그 잘라낸 나뭇가지가 회초리 감으로 일품이었다. 괜히 회초리질 할 일도 없으면서 옛날 회초리 들고 교편잡던 때가 생각나서 다발다발로 묶어 두었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집 주변에 있는 학교의 울타리를 정리하면서 뿌리째 파헤쳐 놓은 대나무 줄기가 마디마디 교묘한 문양을 하고 있어 그것 또한 지휘봉이나 회초리 감으로 근사해 모양 좋은 것만을 골라, 매화나무가지 회초리와 더불어 뒤뜰에 묶어 두었으니 사군자(四君子) 중 매죽(梅竹)의 회초리가 쌍을 이루게 된 셈이었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삶의 의욕과 희망을 되찾아 주는 눈 속의 꽃이라 절개를 상징한다. 우리네 풍습에 양가의 여인들은 대나무의 절개 상징에 더하여 매죽잠(梅竹簪)을 사용하였고, 성삼문은 매죽헌(梅竹軒)이라 호하여 단종에 대한 연군의 뜻을 눈 속에 피는 매화로 표상하고 대나무의 뜻을 더하여 충신의 의지를 상징하였다.

 백미고사(白眉故事)에 의하면 매화는 사랑을 상징하는 백 가지 꽃 중에서 으뜸이라, 모란이 부귀, 연꽃이 군자, 난초가 은군자, 국화가 은일자, 해당화가 신선인 데 비해, 매화는 사랑을 상징하여 민화의 화조도(花鳥圖)에도 곧잘 그려지는 것이니 정겨움이 깊다.

 마침 초등학생 손자를 기르고 있는 며느리가 손자놈 길들이는데 안성맞춤이다 싶었든지 매화나무가지 회초리와 대나무 매를 함께 챙겨두는 걸 보고,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의 마음이나 자식을 가르쳐 기르는 에미의 마음이 같다 싶어 쾌재를 발한 적이 있다.

 사랑을 표상하고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 가지와 대나무 줄기로 다듬은 채찍이라니 얼마나 근사한 사랑의 매인가!

 

 편달(鞭撻), 교편(敎鞭),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채찍'이란, 사람살이의 과정에서 본성적 나태를 일깨우는 데 있어 얼마나 유용한 방편인가!

 정신적 성장,성숙을 촉발하는 데는 감성을 자극할 수도 있고 감각을 자극할 수도 있다. 감성의 자극만으로 성숙이 촉발된다면 그지없이 바람직한 방법이겠지만 그것으로 안 될 때는 감각적 자극이 필요한데, 그것이 곧 회초리를 동원한 사랑의 매이고 이른바 편달(鞭撻)이렷다.

 우리네 전통적 서당식 교육에서 회초리는 필수의 교구(敎具)였다.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고 그 부형이 훈장에게 회초리를 한 다발 가져다 주는 풍토였으니, 감성의 자극 이상의 감각적 자극, 육체적 자극을 통해서라도 가르침의 목적을 이루어 달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을 신뢰하고 자식을 잘 가르쳐 달라고 훈장에게 회초리를 선물하는 풍토 속의 교육과 촌지(寸志)를 왈가왈부하는 오늘날 교육 풍토는 어느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인가? 격세의 느낌이 있어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지만 사랑의 매가 사라진 오늘날의 교육 방법이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 것인가 회의가 깊어갈 따름이어서 새삼 '편달(鞭撻)'이라는 낱말이 생각난다.

 매를 쳐서라도 잘 가르쳐 달라고 훈장에게 회초리를 선사했던 옛날의 어버이와, 사랑의 매, 사소한 손찌검에도 폭행 교사로 고발하는 오늘의 어버이는 무엇에서 상극(相剋)하는가!

 맹목적 근시안적인 개선이 개악을 조장하고, 과거를 부정하여 溫故知新 日新又日新하지 않는 현세의 오만이 병폐라는 생각이다. 상대를 불신하는 자기 중심의 사고, 그릇된 이기심이 빚은 비극이다. 교편(敎鞭)을 잡는 선생은 없어지고 얄팍한 지식의 황금 알을 쏟아내는 술사(術士)가 판을 친다.

 사랑의 매로 위장된 감정을 앞세운 졸속한  선생의 업보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됨의 교육이 아닌 조직 속의 한 분자로 전락된 부속품으로서의 인간 개체를 만들어 가고 있는, 교육 철학의 부재 현상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회의(懷疑)한다.

 

 달리는 말일지라도 채찍을 가하여야 더욱 잘 달릴 수 있다고 주마가편(走馬加鞭)하지 않았는가. 제발 좀 나를 잘 부추겨 달라고 옛 사람들은 자기보다 앞선 사람에게 지도편달(指導鞭撻)해 달라고 간청하지 않았는가. '편달'의 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편달의 채찍을 들어줄 좀 더 큰 규범의 무엇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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