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마춤
안성은 유기 그릇의 산지다. 거기 유기쟁이에게 특별히 마춘 방짜 유기를 흔히 안성마춤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미리 예정이나 하였던 것처럼 꽉 들어맞는 것을 안성마춤이라고 그런다. 그렇다면 유기가 그 말의 근원되기에는 알맞지 못하다. 물론 마춤이란 말은 같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지방 고로(古老)의 얘기를 들으면 안성에서는 갓바치들이 가죽신을 기성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으로 들여 주문을 받아 마추어서 지어 팔았더라고 한다.
그렇다면 신을 찾았을 때 꼭 발에 맞을 것이 분명하니 이 말도 상당히 근사하게 들린다.
그런데 고려조 공민왕 때 벼슬길에 오른 안성(安省)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 한쪽 눈이 작아서 아명을 소목(少目)이라 했는데 그 이름 그대로 과거하여 벼슬을 했더니, 왕의 말이 그 이름이 속스러워 쓰겠느냐고, 두 글자를 합쳐 한 글자(少+目=省)로 만들어 쓰게 하였다. 그래 그의 이름이 안성(安省)이 됐는데 이것이 안성마춤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이름을 마췄다는 얘기는 서적에 많이 나와 있으나, 이것이 안성마춤의 어원이 된다고 꼭히 주장할 근거는 없다. 어원을 따지는 데는 잘못하면 견강부회(牽强附會)가 따르기 마련이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 어우동
'어우동'이나 '옹녀'라 하면, 탕부(蕩婦)나 음녀(淫女)의 대명사 격으로 쓰이고 있는 말이다.
그 중에서 옹녀는 <변강쇠타령>의 여주인공으로 익히 아는 바이고, 그러면 또 어우동은 어떤 인물이었던가.
그는 조선조 초기 지승문 원사(知承文院事) 박 모씨의 딸로 자색이 있고 집도 부자였다. 종실 태강수의 아내가 되었는데, 음탕한 본성을 드러내었다.
한 번은 장색(匠色)을 불러 은그릇을 만드는데, 장인(匠人)이 의젓하고 준수하게 생겼었다. 그래 종의 옷으로 갈아 입고 곁에 가 붙어 앉아 그 솜씨를 칭찬하고 하더니, 결국 내실로 끌어들여 수욕(獸慾)을 채우고 남편이 돌아오면 숨곤 하였는데, 끝내 남편에게 들켜 쫓겨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더욱 방자해져서 계집종을 놓아 미남자가 지나면 불러 들이고, 또 계집종도 제 몫을 잡아 들이며, 때로는 거리에 나아가 돌아다니다가 끄는 이가 있으면 자고 들어오기가 일쑤였다. 또 종실 방산수와도 사통하고, 아주 집에 맞아들여 부부같이 지내기도 하였다. 제법 서로 시로 화답하였다고도 전한다.
그밖에 무수한 조관과 선비가 관련되어 모진 형벌을 받고 귀양간 사람이 수십인이요, 드러나지 않은 사람은 헤일 수 없었다.
사헌부에서 죄를 논할 제 죽이기까지는 않을 뜻이었으나, 위의 명령으로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거리에서 그 종년과 함께 목베이었다.
수원의 한 기생이 손님을 안받는다고 볼기를 맞고는, "어우동은 음란했다는 죄로 벌을 받더니 나는 음란하지 않다는 죄로 또 매를 맞으니, 조정의 법이 이처럼 공번되지 못한가?"고 하여 한때 얘깃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
# 자린고비
'자린고비'라고 하면 인색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국적으로 역사상으로 인색하기가 첫째가는 인물로, 성명을 고비(高蜚)라 하는 실재의 인물이 있었다고도 하는데 상고할 도리는 없다. 지방에 따라 '자리꼽배기'라고도 하여, 많은 소화(笑話)가 그를 주인공으로 삼아 얘기되고 있다.
반찬 사는 돈이 아까와 자반을 하나 사다 천정에 걸어 놓고 쳐다 보며 밥을 먹는데, 아이놈이 연거푸 두 번 쳐다 보니까 철썩 하고 때리며, "이 자식 짜게 쳐먹고 물 찾을라."했다든가.
또 밥상에 김치 한 통을 포기채 내놓고 손님접대를 하는데 모두 젓가락으로 건드려만 보고 만다. 그래 그냥 놓아두면 겨울을 나겠는데 뱃심 좋은 사람이 있어서 장도칼을 뽑더니 썩썩 썰어 놓고 마구 줏어 먹는다. 그걸 보는 그 길로 병이 들어 여러 날만에야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고도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느냐고 비결을 물었더니, 내 가르쳐 주마고 산으로 끌고 올라간다. 높은 바위 벼랑에 선 소나무로 올라 가란다. 그리고 두 손으로 매달려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손을 놓으라고 한다. 다음엔 나머지 손을 놓으라고 하기에, "누굴 죽으라는 얘기냐?"고 했더니, "그럼 내려오라"고 하여 놓고, "돈이 생기거든 말야 아까 그 마지막 손 쥐었듯이 손아귀에 돈을 꼭 쥐고 놓지 말란 말야 알았나?" 하였더란다.
# 노다지
광산에서 금이 생으로 쏟아지는 것을 노다지라고 하는데, 흔히 이런 말로 설명되어지고 있다.
평안도의 운산은 유명한 금 산지인데 구 한국 말엽 미국인이 특별히 왕명으로 인수받아 막대한 이익을 올렸던 곳이다. 한번은 광부들이 착굴해 들어가는데 육안으로도 싯누런 금맥이 보이므로 떠들고 있으려니, 미국인 광주가 들어오며 "노 텃취(No touch) !"하고 소리쳤기 때문에 영어를 모르는 그들은 그것이 생금줄이란 말이거니 하여 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국의 금광에서 공통된 상식이 하나 있다. 천안 직산 하면 사금 산지로 손꼽았었고 광산에서 함지로 금을 이는 사람치고 그곳 출신 아닌 사람이 없다 할 정도였다. 그들은 그 지방 말투로 노다지라는 말을 잘 쓴다. "낮이고 밤이고 노다지 노름만 한다."하는 식이다. 그래 거기서 온 말이라고 설명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보다도 더 그럴싸한 설명이 있다. 앞서의 운산에서 난 원광을 궤짝에 넣어 기차로 수송할 때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노 텃취"라는 글씨를 궤짝마다 크게 적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배주고 뱃속 빌어먹는다는 식으로 보물을 송두리째 내어 주었던 쓰라린 추억의 단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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