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문
해마다 이른 봄의 졸업 시즌이 되면 흔히 입에 오르내리던 '좁은 문'이란 이 낱말.
까만 가운에 사각모를 쓰고 친지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수많은 학석사들이 교문을 나서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좁기만 한 취직의 문 '좁은 문'. 이제는 그 좁은 문도 시원찮아 하늘의 별따기란 말이 제격이 되어버렸으니, 그래서 훤한 것은 고생문 뿐이다.
이렇게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좁은 문'은 성서 마태복음 7장 13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가게 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 길로 가는 사람이 많으나, 생명에 이르는 문은 작고 그 길이 좁아 그 길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고 한 데서 비롯된 것.
즉 신앙에 의하여 참 생명을 찾는 길을 말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안락한 길보다 노력을 요하는 고난의 길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뜻에서 널리 쓰인다. 앙드레 지드의 아름다운 작품 <좁은 문>도 유명하다.
# 등룡문(登龍門)
용문(龍門)은 황하의 상류에 있는 좁은 골짜기의 이름인 바 매우 가파른 까닭에 큰 물고기도 거슬러 올라 가기가 어렵다. 그러나 일단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면 물고기가 대번에 용이 된다고 전하며, 등룡문(登龍門) 즉 용문을 오른다 함은 난관을 돌파하여 약진의 기회를 얻는다 함이다.
후한(後漢)도 이미 종말에 가까운 환제(桓帝)때의 일이다. 발호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은 포악한 외척 양기(梁冀)가 살해되고 이른바 오사(五邪)로 일컬어진 환관들이 날뛰기 시작했을 때, 일부 정의파 각료들은 그에 대해서 과감한 항쟁을 벌여 대규모의 탄압을 받던 무렵이었다.
그 항쟁의 중심 인물이요 정의파 각료 중의 영수로서 알려진 이가 이응(李膺)이었다. 감찰관으로 관계에 나서서 치안국장에까지 오른 인물이었는데 특히 청년 학도들 간에 평판이 높았으며 신진 각료들은 그의 천거를 받는 것을 '등룡문'이라 하였다. (後漢書)
# 형설의 공(螢雪之功)
반딧불과 눈빛을 등잔대신 써서 공부해 공을 이루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고생해서 보람이 있음을 말한다. 졸업 축사에 단골로 쓰이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도 더 오랜 옛날, 차윤(車胤)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부지런하여 수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나 집이 가난하여 등잔을 밝힐 기름이 군조로와 여름철에는 얇은 명주로 만든 자루에다 수십마리의 개똥벌레를 넣어 그 불빛으로 책을 읽었다. 그는 마침내 상서랑(尙書郞)이라 하여 천자를 가까이 모시고 칙서 따위를 맡아보는 높은 벼슬에 올랐다.
또 같은 무렵에 손강(孫康)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마음씨가 착하여 착한 친구하고만 사귀었다. 그런데 집이 가난하여 등잔을 밝힐 기름이 없어 겨울에는 눈이 쌓여 있는 창가에다 책상을 놓고 눈빛에 비춰가며 책을 읽었다. 그렇게 고심한 보람이 있어 그는 훗날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 천리안(千里眼)
멀리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천리안'이라 한다. 모 인터넷 이름으로 이것을 따 쓰기도 했다. 이 말은 이런 내력을 가지고 있다.
북위(北魏) 말엽, 양일(楊逸)이라는 청년이 광주(중국 하남성 한천현)의 장관으로 부임되어 왔다. 명문 출신으로서 나이는 29세. 고을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낮에는 음식을 잊고 밤에는 잠도 안자며 일한다고 하였다. 난리에다 흉년이 겹쳐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자 그는 창고를 열어 나누어 주었다. 담당자가 군주의 노여움을 염려하자 그는 말하였다. "나라의 근본은 사람이요 사람의 목숨을 잇는 건 식량이다. 창고를 열어 헤친 것이 죄라면 달게 받자구나."
그가 부임되어 온 이래로 이 고장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 현상이 생겼다. 예전에는 중앙에서 관료나 병사가 오면 반드시 주연이 베풀어지고 노자도 요구 당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이마적에는 스스로 음식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생색을 내어 깊숙한 술자리를 차려 놓아도 그들은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 까닭을 묻자 그들은 한결같이 대답하였다. "양 장관은 천리안을 지녔어. 눈가림이 안되거든."
그는 고을 안에다 샅샅이 염탐꾼을 두어 관료나 병사들의 동태를 살피게 했던 것이다. 군벌의 싸움에 말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나이 33세, 시민과 농민은 관리보다도 더욱 슬퍼했다고 한다.
# 홍일점(紅一點)
뭇남성 중의 한 사람의 여성을 홍일점이라고들 한다.
송나라 사람 왕안석은 탁월한 당송8대가문(唐宋八大家文)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지경이라 한다. 그가 지은 '석류의 시' 가운데 이런 귀절이 있다.
"만록총중(萬綠叢中)에 홍일점(紅一點)이 있나니 / 사람을 움직이는 봄빛은 모름지기 많아서는 안되느니라."
온통 초록빛이 우거진 가운데 석류꽃 한송이가 피어 있는 양을 그는 봄빛의 으뜸(春色第一)이라 하였다. 그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일컫는 것이리라. 이런 뜻에서 홍일점은 군계일학(群鷄一鶴)과도 같은 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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