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事熟語 神話傳說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기습작전/ 서부전선 이상없다/ 사면초가

如岡園 2007. 6. 25. 09:51

          #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1775년 자치독립을 원하는 북미의 영국식민지와 영국 본국 사이의 대립은 마침내 미국 독립전쟁으로 발전할 기세를 보였다. 남부 버지니아 식민지도 태도를 결정해야만 했다. 이 때 패트릭 헨리는 대의원회의 연설에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도리 밖에 없다고 절규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원합니까? 생명은 존귀하고 평화는 감미로우니 사슬에 묶인 노예의 신세가 되더라도 이것을 얻고자 합니까? 당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떤 길을 택할지 모르나 나는 외칩니다.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 후 이 말은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민중이 즐겨 외치는 구호가 되었으며 프랑스 혁명과 2월 혁명때도 쓰여졌다.

 1945년 겨울, 해방의 감격과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날벼락같은 신탁통치안이 발표되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일어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이 구호를 외치며 반탁시위를 벌인 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기습작전(奇襲作戰)

 안 중근 열사가 만주 할빈 역두에서 침략의 원흉 이또오 히로부미를 쏴 죽인 일은 세계적으로도 한국 남아의 의기를 떨친 일이다. 그가 여순에서 일본 정부의 재판을 받을 당시의 일이다.

 "그대는 어째서 이또오 후작을 암살했는가?", "나는 이등(伊藤)이를 암살한 사실이 없다."

 재판관은 당황했다. 현행범으로 잡힌 것이니 달리 진범이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내가 이등이를 죽인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나는 대한독립군의 육군중장으로서 침략의 괴수를 상대로 기습작전을 폈던 것이요 그 작전이 주효하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번 행위는 전투행위이지 범죄로 구성되는 암살행위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로 당당한 진술이었다 한다. 그러기에 역사 기록에도 그의 뜻을 받들어 암살이라는 용어를 피하여 달리 표현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

 독일의 작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작품 <서부전선 이상없다>(1929)는 제1차 세계대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데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서부전선이란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선을 말하며 치열한 공방전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숨져갔다. 그러나 전선은 이상없이 건재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는 별로 읽히지 않으나 그래도 그 제목만은 곧잘 인용되어, 한때 "취직 전선에 이상 있다", "결혼 전선 이상 없다"는 말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 사면초가(四面楚歌)

 주위가 온통 적이요 자기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두고 흔히 '사면초가'라고 한다.

 항 우는 유 방과 천하의 패권을 다투기를 5년, 마침내 천하를 갈라주고 유 방과 강화를 이루었다. 그리하여 동쪽으로 돌아가는 도중, 한신이 지휘하는 한군(漢軍)에게 포위를 당하였다.

 항 우의 군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군량도 동이 나 있었다. 밤이 되자 어디선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혹은 가까이서, 동에서도 서에서도 북에서도 남에서도 노래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이윽히 귀를 기울이니 그것은 초나라의 노래소리였다. 장 량의 계략이었는데 과연 항 우의 군사인 초나라의 농군들은 그리운 고향의 노래소리에 향수에 젖어 전의를 잃고 도망쳐 갔다. 이미 한(漢)에 투항한 초나라 군사들의 노래소리였던 것이다.

 "한나라는 이미 초나라를 가로챘다는 말인가. 저리도 많은 초나라의 군사가 투항하다니!" 항 우는 이제 마지막임을 깨닫고 휘장 속으로 들어가서 작별의 술자리를 베풀었다. 항 우의 군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는 미녀가 있어 항시 항 우의 곁을 떠나지 않는 터였다. 또한 '추'라고 하는 준마(駿馬)가 있어 항 우는 언제나 '추'를 타고 싸왔었다. 항우는 이제 우(虞) 미인이 애처로왔다. 비분강개하여 손수 시를 지어 노래하였다.

 "힘은 산을 뽑고 얼은 세상을 덮치건만

  때가 불리하니 '추' 안가는구나

  추 안가는구나, 어이할꺼나

  우(虞)여, 우여, 그대를 어이할꺼나"

항 우는 몇번이나 노래하였다. 우 미인도 이별이 애틋하여 자지러질듯이 노래하였다.

 "한나라 군사가 우리를 메워

  사방에 들리나니 초나라 노래소리

  나라님도 의기가 다하셨으니

  이몸이 어찌 살아남을까 보냐"

 귀신도 섬찍해 할 항 우의 얼굴에 몇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중의 신하들도 모두 울고 아무도 얼굴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항 우에게 매달려 있던 우 미인은 항우에게서 보검을 빌어 그 연약한 살결에다 꽂고 자결하였다. 그날 밤 불과 8백여 기마병을 이끌고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적군에게 쳐들어가 스스로 목을 베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권세나 권력의 끝이라는 게, 예나 이제나 똑같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