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수필

죽음에 대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如岡園 2009. 5. 28. 01:51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신비다. 거기에는 같은 원소의 결합과 분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부끄럽게 여길 일이 못된다. 그것은 이성적인 존재[인간]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으며 또 우리를 구성한 이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죽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 순박하지도 않고 마음의 동요에서 풀려나지도 못했으며, 외부의 사물로부터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의혹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모든 사람에게 호의를 갖고 있지도 못하다. 또한 지혜는 오직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죽은 후에 명성을 남기려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즉, 그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도 결국은 죽게 되고 그 뒤를 이은 사람도 죽어서, 마치 한동안 불타 오르다가 꺼져 가는 관솔불처럼 그에 관한 기억도 얼마간 전해지다가 이윽고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그러나 자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그 기억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라. 대체 그것이 당신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죽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또한 살아 있는 인간에게 칭찬이 어떤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어떤 편의가 제공되는 것이 고작이다. 어쨌던 당신은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을 소홀히 하고 장차 남이 자기를 뭐라고 말할까 하는 데 집착하고 있다.

 

 사람들은 시골이나 바닷가나 산에 은신할 장소를 마련한다. 당신에게도 그런 곳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범속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제나 마음이 내킬 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떤 장소도 자기 자신의 영혼 속보다 더 평화롭고 한적한 은신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금세 마음이 아주 평안해지는 그 어떤 것을 자기 속에 갖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말하는 이 평안은 정신의 훌륭한 질서를 말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이 은신처를 자기 자신 속에 마련하여 원기(元氣)를 회복하라.

 그리고 거기에는 간결하고 본질적인 신조를 마련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신조라면 상기하자마자 금세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고 당신이 주목하는 것들에 대한 모든 불만을 씻어 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대체 무엇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가? 인간의 악에 대해서인가? 그렇다면 다음의 결론을 상기하라. 즉 이성적인 동물은 서로 돕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으며 서로 참는다는 것은 정의의 한 부분이고, 인간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중에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을,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적의와 의혹과 증오, 살해 때문에 땅속에 묻히고 재로 변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쯤에서 당신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당신은 우주로부터 자기에게 할당된 일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다음의 명제를 상기하라. "세계에는 신의 섭리가 있는가, 아니면 원자(原子)만 있는데 여기에서 사물이 우연히 결합되는가?" 그리고 우주는 국가와 비슷하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실에 의해 입증되고 있는가를, 그러면 마침내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아니면 육체적인 것들이 당신을 구속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정신이 자기의 위력을 알게 되면 육체의 입김이 온화해지든 사나와지든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하라. 그리고 고통이나 쾌락에 대해 당신이 지금까지 듣고 인정해 온 것을 모두 차분히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마침내 평안한 마음을 찾게 될 것이다.

 아니면 부질없는 명예욕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렇다면 모든 일이 얼마나 빨리 잊혀지는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로 뻗어 나간 시간 속에 영원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갈채의 공허함과 우리를 찬양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얼마나 쉽게 변하고 지각이 없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이 얼마나 좋은가를 상기하라. 지구도 한 점(點)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은 그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 몇이나 되는 사람이, 또 어떤 사람이 당신을 칭찬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당신 안에 있는 영지(領地)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흐리게 하지 말고 편협하게 생각지 말며 자유로와야 한다. 그리고 만사를 사나이로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죽어야 할 존재로서 대하라. 그리고 당신이 명심해야 할 좌우명 속에 다음의 두 가지를 채택하라. 첫째로 사물은 밖에 고정되어 있으므로 영혼에 영향을 주지 못하며,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것은 오직 마음 속의 주관(主觀)이다. 둘째로 당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곧 변하여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이것을 언제나 상기하라.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주관이다."

 

 언제나 다음과 같은 일을 기억하라. 즉 얼마나 많은 의사들이 몇 번이나 눈살을 찌푸리며 환자를 진찰하였나를. 그러나 결국은 그 자신도 죽고 말았다. 또 얼마나 많은 점성가들이 남의 죽음을 무슨 끔찍한 일처럼 예언하고, 얼마나 많은 철학자들이 죽음과 불멸에 대해 끝없이 의논했으며, 얼마나 많은 장군들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얼마나 많은 폭군들이 불사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서운 오만을 부리며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휘두르다가 죽어 갔는가를. 또 얼마나 많은 도시들이 폐허가 되었는가를. 예컨대 헬리케나 폼페이나 헤르쿨라네움이나 그밖에 무수한 도시들이 그렇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연이어 죽어 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묻어 주고 나서 남의 손에 의해 무덤에 묻히고, 그는 또 다른 사람에 의해 무덤에 묻힌다. 이 모든 일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일어난다.

 요컨대 인간사(人間事)가 얼마나 덧없고 보람없는가를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어제는 피가 돌았는데 내일은 미이라나 재로 변한다. 그러므로 이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평안히 당신의 여로(旅路)를 마치도록 하라. 마치 잘 여문 올리브 열매가 자기를 낳은 땅을 찬양하고 자기를 여물게 한 나무에 감사하면서 떨어지듯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고대 로마 황제. 5賢帝 중의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