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오만의 폭로-<중생>
導 言
김성한의 단편소설 <衆生>은 이, 벼룩, 빈대, 파리를 의인화하여 강자의 허세와 오만을 풍자함으로써 민주 시대에 부조리하게 자생한 권력자의 무상을 풍자한 현대판 동물우화소설이다.
현실 문제를 고발함에 있어서 김성한이 동물우화의 수법을 활용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레고리와 풍자, 아이러니를 지향한 작품 세계의 폭을 한층 넓혀준 결과가 되기도 한다.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면서도 신랄하게 사회 현상을 비판함에 있어서 동물우화의 수법을 활용한 것은 이미 前代의 우리 동물우화소설에서 흔히 쓰여 왔던 방법이기도 하다.
梗 槪
이는 김좌수의 방 누덕옷 무진장의 보고를 차지한 백만장자이다.
재빠르고 날쌘 벼룩의 횡포에 피해를 입어 온 빈대가, 미국에서 들여 온 물약의 세례를 받고 정신을 잃은 벼룩을 짓눌러 때렸다. 둔하다느니, 바보라느니, 냄새가 고약하느니 하고 수모를 받아 오던 원한을 한꺼번에 풀어 보자는 것이다.
애걸복걸하는 벼룩에게 각하 대접을 받게 된 빈대는 오만한 자세로 벼룩을 짓누르고 있는데 김좌수 손자가 내갈긴 소변의 강이 벼룩을 덮쳤다.
소변의 강을 피해 후닥닥 뛰어 마른 육지에 오른 빈대는, 가까스로 채송화 잎사귀에 기어 오른 벼룩에게 목숨을 부지한 것이 내 덕인 줄 알아라고 하면서 복종을 강요한다.
이제부턴 옛날과는 달라 세상이 바뀐 것을 알라는 것이다.
벼룩은 빈대의 먹이 심부름까지 하는 형편이 된다.
파리가 이의 환갑잔치를 알렸다.
벼룩이 빈대를 각하로 모시는 것을 파리는 못마땅해 하며 날기 시작했다.
파리가 자랑스럽게 날아다니는 것, 김좌수가 거처하는 사랑방 앞 대추나무 위의 메뚜기까지를 건방지다고 하는 빈대를 무마하여, 메뚜기가 빈대를 등에 업고 이의 환갑 잔치에 당도 하였다.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 환담을 하는 자리에서 일이 벌어졌다.
빈대가 각하를 자처하여 이 시간부터 자신의 명령에 따르라며 이를 보고 그의 왕국에서 물러 나란다.
萬世一系로 내려온 땅에서 물러나라는 게 무슨 억지냐고 이의 부인이 땅을 치며 대어 들었다.
파리는 코웃음을 치고 메뚜기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빈대는 벼룩에게 자신이 각하가 된 所以然과 메뚜기가 공손히 업어 모신 자초지종을 설명하라고 한다.
벼룩이 자초지종이 다 뭐냐면서 홀짝 뛰어 빈대의 가슴팍을 들이 찼다. 메뚜기는 빈대의 두 뺨을 이리 치고 저리 쳤다. 이 부인이 남의 환갑 잔치에 와서 무슨 짓이냐고 뜯어 말렸다.
완력이 중지되고 말 잔치가 벌어졌다.
환갑잔치의 주인공 늙은 이는 빈대를 '고얀놈'이라고 꾸짖고, 이 부인은 뻔뻔스럽다고 야단이고, 메뚜기는 돼먹쟎다고 되씹고, 벼룩은 죽여버린다고 별러댔다.
혼자 득도한 듯 외면만 하고 있는 파리를 건방지다고 벼룩이 쏘아붙이자 이 부부는 우리 파리는 왜 건드리느냐고 역성이고, 쥐죽은 듯 가만 있던 빈대가 일어나 벼룩은 본래 배은망덕한 후레자식이라고 하고, 메뚜기는 딱 버티고 서서 시끄럽다고 협박하여 혼란은 무제한으로 계속되었다.
評 說
1957년에 창작 동물우화소설로 발표된 <衆生>은 강자의 오만과 허세가 부침(浮沈)하는 시대상의 일단을 암시하는 획기적인 작품이다. 인체에 기생하는 이와 빈대, 벼룩, 파리를 의인화했다는 자체부터가 자못 해학적이요 풍자적이다.
작가는 서두의 프롤로그에서,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오직 좁은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무자각의 심연 속에서 충동에 휩쓸려 들고 있었다."고 운을 떼었다. 바쁜 삶의 와중에서 무자각한 현실의 혼돈을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은 어느 것이고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마련이지만 풍자의 속성 때문에 풍자성을 띤 문학은 어떤 종류의 문학보다 시대와 밀착되어 있기 마련이다. 동물우화소설이 가지는 풍자의 특징은 동물의 세계에 가탁하여 비평적 안목으로 사회상, 인간성의 모순을 해부하는 데 있다.
"간밤에는 요새 미국에서 돌아온 신랑이 대학인가 하는 이상한 고장에서 들고 왔다는 물약을 뿌리는 통에 일가 친지를 다 죽이고 홀아비 신세가 되어서 문틈으로 빠져 이 굴뚝 기슭에 당도한 그들이었다. 날쌘 벼룩도 그놈의 물약에는 별 수 없었다."(<중생> 본문)
1950년대의 한국 풍토에 밀어닥친 미국의 풍조야말로 벼룩이나 빈대에게 뿌려진 물약 이상의 세력이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약삭빠른 벼룩같은 인간일지라도 미국 세력에는 맥을 못추게 되어 있다. 그런 풍조를 기화로 허세를 부리는 빈대와 같은 오만한 인간이 팽배하는 사회다.
"빈대는 크게 한바탕 기침을 하고 나서 연설을 시작하였다. '너 들어 보아라. 너의 일가가 방안 왕국에서 보채던 일, 더구나 너희들 행패 때문에 우리 일가가 당한 가지가지 참변을 생각하면 오살을 해도 시원치 않겠지마는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가 정신이 혼미한 것을 보고 내 秘傳으로 살려 준거야. 너는 그것도 모르고 내 엉덩이가 구리다고 했겠다. 요놈의 벼룩아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벼룩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또 앞발을 쳐드는 빈대를 보고 벼룩은 기가 질려서 자기 앞발을 모아 절하였다. '각하, 왜 배은망덕하겠습니까?"(<중생> 본문)
세상이 바뀌고 예전과는 사정이 달라졌다. 죄는 자기가 저지르고 벌은 이쪽에 넘기는 얄미운 족속들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폐하라는 건 없을 터이니 각하쯤으로 대접받는 빈대는 "언제나 진중하시고 인자하시고 지혜롭고 덕망이 높으신 분이라고 저 방 천지에서는 각하의 빈대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파리, 모기, 좀을 비롯하여 저희들 벼록족 간에 칭송이 자자한" 새로운 권력자로 군림한다.
김좌수의 손자놈이 내갈긴 소변의 강은 어쩌면 전쟁(6.25)의 소용돌이일 수 있다. 그 소변의 강이 벼룩과 빈대의 자리바꿈에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렇게 무섭던 홍수가 멎고 벼룩이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을 때, 살아난 것이 오로지 빈대의 덕이라면서 복종을 강요했던 것이다.
각하로 대접받는 권력자의 오만은 화를 자초한다. 안하무인 격이 된 빈대는 파리를 건방지다고 하고 메뚜기를 부려먹지만 여론의 입방아에 얹혀 패가망신하고 만다.
김좌수네 식구들에 기생하여 아귀다툼을 하던 그들은 침몰하여 가는 타이타닉호에서 최후까지 연주를 계속하는 악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현실에 대한 비평적 태도에 근거를 두고 골계를 지향하는 풍자 해학 아이러니의 문학이 동물우화소설이다. 동물을 인간에 비유한 자체가 익살스럽고 이들 동물의 대화와 언어적 재치로 웃음의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기롱을 하고 있다는 데 묘미가 있다. 인간 사회의 자만, 자기 도취의 망상을 수반한 윤리적 결함을 하찮은 동물의 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衆生>은 이와 벼룩과 빈대와 파리와 메뚜기들을 등장시켜 서로 으르릉거리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제가 잘났다고 뽐내고 그러다 결국 모두 잡혀 죽는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인간을 이와 빈대, 벼룩의 수준으로 떨어뜨려 놓고 그들이 벌이는 작태를 통해 인간과 인간사를 풍자하고 있다.
이나 빈대를 몰살하는 파리약처럼 인간을 멸종시킬 수도 있는 원자탄으로 대변되는 인간 문명에의 비판, 빈대와 벼룩의 자리바꿈으로 빗대어진 권력 다툼, 허세와 오만이 활개치는 1950년대 중반의 한국의 사회사 내지 정치풍토를 동물우화적인 수법으로 구상화한 소설이<衆生>이다. ((金在煥 著 <寓話小說의 世界>(도서출판 박이정.1990.12.15)에서 발췌))
如 岡 金 在 煥
'여강의 글B(논문·편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뱅이 굿 (0) | 2009.09.07 |
---|---|
동인지<길>10호를 내면서(회장 권두언) (0) | 2009.07.28 |
개구리와 뱀의 獄事 - 송사를 제재로 한 동물우화소설<蛙蛇獄案> (0) | 2009.04.04 |
우정어린 격려의 글 (0) | 2009.01.30 |
클라우디아 이해인 수녀의 글 (0) | 2009.0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