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臘)
조선시대에는 동지 후 제 3 미일(未日)로 납일(臘日)을 정하여 종묘와 사직(社稷)에 큰제사를 지냈다.
생각컨대 <芝峯類說>에 채옹(蔡邕)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靑帝)는 미랍(未臘)으로써, 적제(赤帝)는 술랍(戌臘)으로써, 백제(白帝)는 축랍(丑臘)으로써, 흑제(黑帝)는 진랍(辰臘)으로써 한다" 했으므로 우리 나라도 미(未)로써 납일을 삼았으니, 동방(東方)이 목(木)에 속하기 때문이라 한다.
내의원(內醫院)에서 각종의 환약을 만들어 올린다. 이것을 납약(臘藥)이라고 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근시(近侍)와 지밀나인[至密內人] 등에게 나누어 준다. 청심원(淸心元: 淸心丸)은 정신적 장애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고, 안신원(安神元: 安神丸)은 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며 소합원(蘇合元: 蘇合丸)은 곽란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건릉(健陵: 正祖) 경술년(1790)에 새로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의 두 종류의 환약도 만들었으니 실로 밝으신 생각에서 고안해 낸 것이다. 이것들은 소합환보다 효과가 더욱 빠르다. 그것을 모든 영문(營門)에 나누어 주어 군사들을 치료하는 데 쓰게 했다. 또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납제(臘劑: 臘藥)를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 주고 각 관청에서도 많이 만들어 나누어 주기도 하고 서로 선물하기도 했다.
납향(臘享)에 쓰는 고기로는 산돼지와 산토끼를 사용했다. 경기도내 산간의 군(郡)에서는 옛부터 납향에 쓰는 산돼지를 바쳤다. 그러기 위해서 그곳 수령은 온 군민을 발동하여 산돼지를 수색하여 잡았다. 그러나 건릉[正祖]이 특히 이 관습을 파하고 서울 장안의 포수더러 용문산, 축령산 등의 산에 가 사냥을 해다가 바치도록 했다.
또 참새를 잡아 어린이를 먹이면 마마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항간에서는 이 날 그물을 쳐서 참새를 잡기도 하고 탄환을 재어서 총을 쏘아 잡아도 묵인했다.
납일에 온 눈의 녹은 물은 약용으로 쓰며, 그 물에 물건을 적셔 두면 구더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 제석(除夕)
조신(朝臣) 2품 이상과 시종신(侍從臣)들이 대궐에 들어가 묵은 해 문안을 올린다. 사대부 집에서는 사당에 참례한다. 연소자들이 친척 어른들을 찾아 방문하는 것을 묵은세배[舊歲拜]라 한다.
또 이 날은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길거리의 등불이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는다.
대궐 안에서는 제석 전날부터 대포를 쏘는데 이를 연종포(年終砲)라 한다.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것은 곧 대나(大儺)의 역질 귀신 쫓는 행사의 남은 제도이다. 또 제석과 설날의 폭죽(爆竹)을 터뜨려 귀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모방한 제도다.
생각컨대 연경(燕京: 北京) 풍속에, 연말의 들레임이 등절(燈節: 정월 보름)이 되어서야 그친다. 이것을 연나고(年나鼓)라고 한다. 연경의 풍속에, 서울(북경)의 풍속이 이렇다고 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다만 궁중 안에서만 이를 행한다.
제석 하루 이틀 전부터 소를 잡지 못하게 하던 것을 완화한다. 여러 법사(法司)에서 소 잡지 못하게 하는 패(牌)를 회수했다가 설날에 이르러서야 내어준다. 이는 시민이 정초에 쓸 쇠고기를 실컷 먹으라는 뜻이다. 혹 이런 행사를 하지 않기도 한다.
인가에서는 다락, 마루, 방, 부엌에 모두 등잔을 켜 놓는다. 흰 사기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환하게 켜 놓으니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다. 이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 이는 곧 경신(庚申)을 지키던 유속(遺俗)-섣달 중의 경신일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道敎에서 나온 풍속-이다.
생각컨대 온혁(溫革)의 <碎쇄錄>에 "제야에는 신불(神佛)의 앞이나 마루, 방, 변소 등에 불을 밝혀 새벽까지 가는데, 집안의 광명을 주로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 생각컨대 <東京夢華錄>에, "서울 사람이 제야만 되면 부뚜막에 불을 켜 놓는 것을 조허모(照虛모)라고 하며, 일반 백성의 집에서는 화롯가에 둘러앉아 아침이 되도록 자지 않는 것을 수세(守歲)라고 한다"고 했다. 또 생각컨대 소동파가 촉(蜀)지방의 풍속을 기록한 대목에, "술과 음식으로 서로 맞이하는 것을 별세(別歲)라 하고, 제야에 자지 않는 것을 수세(守歲)라 한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속담에, 제야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세어진다 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대개 속아 잠을 자지 않는다. 혹 자는 애가 있으면 다른 아이가 분(粉)을 개어 자는 아이 눈썹에 바르고 깨워서 거울을 보게 하면서 놀린다.
붉은 싸리나무 두 토막을 잘라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든 것을 윷이라고 한다. 길이는 세 치 가량이다. 혹 콩같이 작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것을 던져 내기하는 것을 윷놀이[柶戱]라고 한다. 네 개가 다 엎어지면 모(牟), 네 개가 다 잦혀지면 윷(流), 세 개가 엎어지고 하나가 잦혀지면 도(徒), 두 개가 엎어지고 두 개가 잦혀지면 개(開), 하나가 엎어지고 셋이 잦혀지면 걸(杰)이라 한다. 그리고 말판에 29개의 점을 찍어 두 사람이 상대하여 던져서 각각 네 개의 말을 쓴다. 도는 한 밭을 가고, 개는 두 밭을 가며, 걸은 세 밭을 가고, 윷은 네 밭을 가며, 모는 다섯 밭을 간다. 말판에는 돌아가는 길이 있고 곧장 가는 길이 있으며, 말도 빨리 가기도 하고 천천히 가기도 함으로써 내기를 결정한다. 이 놀이는 명절에 가장 성행한다.
생각컨대 사(柶)는 <說文>에 비(比)라 했다. 특히 네 개의 나무의 뜻을 취하여 사(柶)라 했다. 또 생각컨대 <芝峯類說>에는, "탄희요, 저포(樗蒲)라"고 했다. 그러므로 윷놀이는 곧 저포의 종류다.
세속에 제야와 원단(元旦)에 윷을 던져 패를 보아 새해의 길흉을 점친다. 그 점치는 법은 64 괘(掛)로 나누어 각각 요사(요辭: 謠言의 臺詞)가 있다. 대개 세 번을 던져 '어린애가 젖을 얻는 괘', '쥐가 창고에 들어가는 괘' 등이 나오면 길하다. 혹 세 번 던진 것 중에서 첫번 던진 것은 묵은 해를, 둘째번은 새해 첫날을, 셋째번에 던진 것은 정월 보름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윷을 연이어 던진 괘를 보아야 한다고 한다.
항간의 부녀들은 흰 널조각을 짚단 위에 올려 놓고 그 널빤지 양 끝에 마주서서 뛰면 서로 반대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다하여 몇 자까지 올라간다. 그리하여 힘이 빠져 지치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 이것을 여도판희(女跳板戱: 널뛰기)라 한다. 정월 초까지 이것을 한다.
생각컨대 주황(周煌)의 <琉球國記略>에, "부인들이 널빤지 위에서 춤추는 것을 판무(板舞)라고 한다"고 하였으니 이 풍속과 비슷하다.
함경도 풍속에, 빙등(氷燈)을 베풀어 놓는데 마치 원주(圓株) 안에 기름 심지를 해 박은 것 같다. 그것을 켜 놓고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희(儺戱)를 행한다. 이를 청단(靑壇)이라고 한다. 평안도 풍속에서도 빙등을 설치하며, 여러 도의 주읍(州邑에서도 각기 각 고을의 풍속대로 연말의 놀이를 행한다.
의주(義州) 풍속에, 동네에서 지포(紙砲:딱총)를 놓는다. 연경(燕京:北京)의 풍속을 모방한 것이다.
# 기타 月內의 풍습
초하룻날 선부(選部:吏曹와 兵曹)에서 조신(朝臣) 중에 파면되었거나 강등되었던 사람의 이름을 상신하는 것을 세초(歲抄)라고 한다. 점수가 낮은 사람을 서용(敍用) 또는 감등(減等)한다. 6월 초하루에도 그러했다. 이는 대체로 대정(大政: 관원을 성적에 의하여 직위를 박탈 내지 승진시키는 일))은 6월과 12월에 있기 때문이다. 또 국가의 경사가 있어 사면하게 될 때에는 따로 세초를 상신한다. 이는 대체로 소탕(疏蕩)의 은전(恩典)에서 나온 것이다.
평안도 황해도의 두 병마절도사는 예에 따라 세찬(歲饌)을 조정의 벼슬아치와 친지의 집에 보낸다. 각 도의 감사(監司), 병사(兵使), 수사(水使) 등과 수령 등도 세궤(歲饋: 연말에 진상하는 貢物)의 예를 따른다. 편지 안에 따로 작게 접은 종이를 준비하여 토산물의 여러 종류를 열거하여 적는다. 이것을 총명지(聰明紙)라고 한다. 각 관청의 아전들도 생치(生雉), 곶감, 등의 물건을 자기의 친한 집에 선물한다.
생각컨대 주처(周處)의 <풍토기>에, "촉(蜀) 지방 풍속에, 연말에 서로 선물하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饋歲)라 한다"고 했다. 또 생각컨대 소동파의 시에, '쟁반 위에는 큰 잉어를 가로 놓았고, 소쿠리를 내놓으니 두 마리 토끼가 누웠구나'라 하였으니 이 풍속은 옛날부터 그러했던 것이다.
젊은이들이 축국(蹴鞠: 공 이름)으로 놀이를 한다. 그 공은 큰 탄환 만한데 위에 꿩털을 꽂았다. 두 사람이 상대하여 서로 서로 마주 차는데, 계속하여 차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훌륭한 기술이다.
생각컨대 유향(劉向)의 <別錄>에 "한식에 답축(답蹴: 지금의 打毬)을 하는데 황제(黃帝)가 만든 것이라" 하였다. 혹 어떤 이는, 전국(戰國)시대에 군대의 세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것으로 일명 백타(白打)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지금 풍속도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겨울부터 시작하여 새해에 더욱 성하다.
고성 풍속에, 군의 사당에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관에서 제사를 드린다. 비단으로 신의 가면을 만들어 사당 안에 비치해 두면 12월 20일 이후에 그 신이 그 고을 사람에게 내린다. 그 신이 오른 사람은 그 가면을 쓰고 춤추며 그 관아의 안과 고을 동네를 돌아다니며 논다. 그러면 집집에서는 그 신을 맞이해다가 즐긴다. 그렇게 하다가 정월 보름 전에 그 신을 사당 안으로 돌려 보낸다. 이 풍속이 해마다 있으며 이는 나례신(儺禮神)의 종류다.
<동국세시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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