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時風俗

설날[元日]의 풍속

如岡園 2010. 2. 13. 17:24

 의정대신(議政大臣)은 모든 관원을 거느리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을 드리고 전문(箋文)과 표리(表裏)를 바치고 정전(正殿)의 뜰로 가서 조하(朝賀)를 올린다. 팔도의 관찰사, 병사(兵使)나 수사(水使), 주(州) 이름이 있는 고을의 목사도 전문(箋文)과 방물(方物)을 바치며, 州, 府, 郡, 縣의 호장리(戶長吏도 모두 와서 반열(班列)에 참례한다. 동지에도 전문을 올리는 행사를 한다.

 

 서울 풍속에 이 날 사당에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 한다. 남녀 어린이들이 모두 새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이라 하고,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 한다. 이 날 시절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이 때의 술을 세주(歲酒)라 한다.

 생각컨대 최식의 <月令>에 '설날 조상에게 깨끗한 제사를 올리고 초백주(椒栢酒)를 마신다' 고 했다. 또 종늠의 <荊楚歲時記>에서는 '설날 도소주(屠蘇酒)와 교아성(膠牙성)을 올린다' 고 했다. 이것이 세주(歲酒), 세찬(歲饌)의 시초다.

 

 사돈집에서는 부인들이 근친하는 뜻으로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문안을 드린다. 이 하녀를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이참봉 광려(李參奉 匡呂)의 시에

 "뉘 집 문안비가 문안하려고 뉘 집으로 들어가는고(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 라고 하였다.

 

 각 관청의 서예(胥隸)와 각 영문의 교졸 등은 종이를 접어 이름을 쓴 명함을 관원이나 선생의 집에 드린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대문 안에 옷칠한 쟁반을 놓아두고 이를 받아들인다. 이것을 세함(歲銜)이라 한다. 각 지방의 관청에서도 그렇게 한다.

 생각컨대 왕기(王錡)의 <寓圃雜記>에, '서울 풍속에 매년 설날이면 주인은 모두 하례하러 나가고 다만 백지로 만든 책과 붓 벼루만 책상 위에 배치해 두면 하례객이 와서 이름만 적을 뿐, 환영 환송하는 일은 없다' 고 했다. 이것이 곧 세함(歲銜)의 시초다.

 

 멥쌀 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 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白餠)이라 한다.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고추가루를 친 것을 떡국(餠湯)이라 한다. 이것은 제사에도 쓰고 손님 대접에도 사용하므로 세찬에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다. 국에 넣어 끓였으므로, 옛날에 습면(濕麵)이라고 부르던 것이 바로 이와 같다. 시장에서는 시절 음식으로 이것을 판다. 속담에 나이 먹는 것을 떡국을 몇 그릇째 먹었느냐고 한다.

 생각컨대 육방옹의 <歲首書事詩> 주(註)에, '시골 풍속에 설날에는 반드시 탕병(湯餠)을 쓰는데 이를 동혼돈(冬혼돈), 연박탁(年박탁)이라고 한다'고 했다. 이것이 대개 옛 풍속이다.

 

 맵쌀 가루를 시루 안에 깔고 삶은 팥을 겹겹으로 펴는데 쌀가루를 더 두툼하게 깐다. 시루의 대소에 따라 혹 찹쌀가루를 몇 겹 더 넣어 찌기도 한다. 이것을 증병(甑餠;시루떡)이라 한다. 이것으로 새해에 신에게 빌기도 하고, 또 삭망전(朔望奠)에 올리기도 하며, 아무때나 신에게 빌 때에도 그것을 올린다.

 

 승정원에서는 미리 뽑은 시종신(侍從臣) 중 당하(堂下)의 문관들에게 연상시(延祥詩)를 지어 올리게 한다. 이 때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提學)에게 운자(韻字)를 내게 하여 오언이나 칠언의 율시, 절귀를 짓게 한다. 그리하여 채점해서 합격한 것은 대궐 안의 기둥이나 문설주에 붙이게 한다. 입춘날의 춘첩자(春帖子)나 단오날의 단오첩(端午帖)도 모두 이 예를 적용한다.

 생각컨대 온공(溫公)의 <日錄>에, '한림이 춘사(春詞)를 청하는 조명(詔命)을 기다려 써 두었다가 입춘날 잘라내어 궁중의 문에 붙인다' 고 했다. 또 생각컨대 여원명(呂原明)의 <歲時雜記>에는 '학사원(學士院)에서 단오 1개월 전에 궁정 정문에 붙인 단오첩자를 지어 두었다가 기한이 되면 진상한다' 고 하였으니 이것이 대체로 옛날 법규이다.

 

 도화서(圖畵署)에서는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하는 것을 이름하여 세화(歲畵)라 한다. 그것으로 송축(頌祝)하는 뜻을 나타낸다. 또 금(金), 갑(甲)의 두 장군상을 그리는데 길이가 한 길이 넘는다. 한 장군은 도끼[斧鉞]를 들고, 또 한 장군은 절(節)을 들었는데 이 그림을 모두 대궐문 양쪽에다 붙인다. 이것을 문배(門排:歲畵)라 한다. 또 붉은 도포와 까만 사모를 쓴 상을 그려 궁전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또 종규(鐘규)가 귀신잡는 상을 그려 문에 붙인다.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기도 한다. 이것들로써 액과 나쁜 병을 물리치게 한다. 그러므로 여러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의 문짝에도 모두 이것들을 붙인다. 여염집에서도 모두 이를 본뜬다.

 속담에 금(金), 갑(甲) 두 장군은 사천왕의 신상(神像)이라고도 하고, 혹은 울지공(울遲恭)과 진숙보(秦叔寶)라고도 한다. 붉은 도포를 입은 자는 위정공(魏鄭公)이라고 한다.

 생각컨대 송민구의 <春明退潮錄>에, '도가(道家)에서 상소하여 천문(天門)의 수위 金, 甲 두 사람을 그리는데 갈장군(葛將軍)은 깃발을 들고 주장군(周將軍)은 절월(節鉞)을 들었다' 고 하였다. 지금의 문배(門排)가 이 葛, 周장군 같은데 세속에서는 전기(傳奇) 중의 당나라 문황(文皇)의 일을 억지로 붙여서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서울과 지방의 조관(朝官)과 명부(命婦)로서 70세 이상 된 사람에게는 새해에 쌀, 물고기, 소금 등을 내리는 것이 통례다. 조관으로서 나이가 80 이거나 일반 백성으로서 나이가 90 이면 한 등급을 올려 주고, 나이 백 세가 되면 특히 한 품계를 승진시켜 준다. 이렇게 매년 연초에 노인들에게 계급을 승진시켜 자격을 주어 정치에 관여하게 함으로써 하비(下批)를 품(稟)하게 하는 것은 노인우대하고 존중하는 성대한 의식이다.

 

 항간에서는 벽 위에 호랑이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가기를 빈다. 생각컨대 동훈의 <문례(問禮>에서는, '풍속에 초하룻날을 닭날이라 한다' 고 했다. 또 생각컨대 <형초세시기>에, '정월 초하루에 닭을 그려 문에 붙인다' 고 했다. 지금의 풍속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요, 호랑이를 그리는 것은 인월(寅月;호랑이 달)에서 취한 것 같다.

 

 남녀의 나이가 삼재(三災)를 당한 자는 세 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 삼재법(三災法)이란 이런 것이다. 巳, 酉, 丑이 든 해에 난 사람은 亥, 子, 丑이 되는 해에, 申, 子, 辰이 든 해에 출생한 사람은 寅, 卯, 辰이 되는 해에, 亥, 卯, 未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巳, 午, 未가 드는 해에, 寅, 午, 戌년에 태어난 사람은 申, 酉, 戌년에 가각 삼재가 든다는 것이다. 세속에서는 이 복설(卜說)을 믿고 이렇게 세 마리 매를 그려 액을 막는다. 생년으로부터 9년만에 삼재가 들기 때문에 이 삼재의 해에 해당하는 3년간에는 남을 범해도 안되고 모든 일에 꺼리고 삼가는 일이 많다.

 

 연소한 친구를 만나면,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하는 등의 말을 한다. 이것을 덕담(德談)이라고 한다. 서로 축하하는 말이다.

 

 꼭두새벽에 거리로 나가 어떤 방향에서 들려오든지 관계할 것 없이 첫번 들려오는 소리로 연간의 길흉을 점친다. 이를 청참(聽讖)이라 한다.

 생각컨대 연경(燕京:北京) 풍속에 제야에 부엌 앞에서 방향을 일러 달라고 빈다. 그리하여 부엌 귀신이 일러 주는 방향을 따라 거울을 가지고 문 밖으로 나가 거리의 첫번 말을 듣고 새해의 길흉을 점친다. 우리나라 풍속도 그와 같다.

 

 오행점(五行占)을 쳐서 새해의 신수를 점친다. 오행점에는 각기 다른 점사(占辭:점괘에 나타난 말)가 있다. 나무에 金, 木, 水, 火, 土를 새겨 장기쪽같이 만든다. 그것을 일시에 던져 그것들이 자빠지고 엎어진 것을 보고 점괘를 얻는다.

 

 남녀가 일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빗상자 속에 넣었다가 반드시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친다.

 생각컨대 손사막의 <千金方>에, '정월 인일에 백발을 태우면 길하다' 고 했다. 설날에 머리카락 태우는 일이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속담에 야광(夜光)이란 귀신이 있다. 이 귀신이 이날 밤 인가에 내려와 두루 아이들의 신을 신어 보고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가버린다. 그러면 신을 잃은 주인은 불길하다. 그러므로 여러 아이들이 이 귀신을 두려워하여 모두 신을 감추고 불을 끄고 잔다. 그리고 체를 마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 둔다. 그러면 이 야광신이 와서 이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아이들의 신을 훔칠 생각을 잊는다. 그러다가 닭이 울면 도망가 버린다. 야광(夜光)이란 어떤 귀신인지 모르겠으나 혹 약왕(藥王)의 음이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약왕의 형상이 매우 추하여 아이들을 두렵게 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생각된다.

 

 중들이 북을 지고 시가로 들어와 치는 것을 법고(法鼓)라 한다. 혹은 모연문(募緣文)을 펴 놓고 방울을 울리면서 염불을 하면 사람들은 다투어 돈을 던진다. 또 중들은 떡 한 개를 속세의 떡 두 개로 바꾸기도 한다. 속담에 중의 떡을 얻어 어린이를 먹이면 마마를 곱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후에 조정에서 중들의 도성문(都城門) 출입을 금지했으므로 성 밖에서나 이런 풍속이 남아 있다.

여러 절의 상좌중이 재를 올릴 쌀을 오부(五部:서울 장안의 다섯 구역) 내에서 빌기 위하여 새벽부터 바랑을 메고 돌아다니면서 문 앞에 와 소리를 지르면 인가에서 각기 쌀을 퍼다 준다. 이는 새해의 복을 맞는 뜻이다.

 

 광주(廣州) 풍속에, 이 날은 서로 경하(慶賀)하며 일월신(日月神)에게 절을 한다. (輿地勝覽을 보라)

 제주 풍속에 대체로 산, 늪, 냇물, 연못, 물가, 평지, 나무, 돌 등에다 고루 신의 사당을 만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매년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무격(巫覡)이 신독(神纛)을 받들고 나희(儺戱)를 행한다. 징과 북을 울리며 안내하여 동리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다투어 재물과 돈을 내놓으며 굿을 한다. 이것을 화반(花盤)이라 한다. (輿地勝覽을 보라)

 

                                                                                  -東國歲時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