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나라는 망했건만 산하는 남아 있다는 것(國破山河在)이니,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의 <春望>이라는 시의 첫 귀절이다.
두보는 벼슬이 하고 싶은 숙망(宿望)이 43세에야 이루어져 조그마한 벼슬자리에 앉았다. 이제부터 안정된 생활이 이루어지나보다 했더니 난데없이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이 일어났다. 안록산은 18만의 병력을 쥐고 남하하여 낙양(洛陽)을 함락, 스스로 대연황제(大燕皇帝)라고 일컬었다. 장안(長安)도 위태로왔으니 현종황제(玄宗皇帝)를 비롯하여 관리며 귀족들이 시골로들 피난하였다.
두보도 처자를 촌락으로 피난 시키고 당시 현종의 태자로서 시골에서 왕위에 오른 숙종(肅宗)을 섬기고자 떠났던 바 포로가 되어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그러나 두보는 조로(早老)한 데다가 벼슬도 낮았기에 목숨도 건지고 감시도 덜 받는 가운데 전화(戰禍)로 망가진 서울의 모습을 체험하게 되었다.
안록산은 본래 호인(胡人)이었기에 호병들이 거드럭거리며 말을 몰고 다니며 부녀자는 공포에 떨고 왕손 공자들도 거지의 몰골을 하고 어정거렸다. 이 안록산의 반란은 그 후로 사사명(史思明) 부자의 반란으로 번져 9년 동안이나 꼬리를 끌었다. 그리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당나라는 어지러울 대로 어지럽혀지고 무사들은 멋대로 할거하였다.
두보는 남의 눈을 꺼리며 장안을 헤매는 동안 그 서글픈 풍정(風情)을 수많은 시로써 읊었는데 <春望> 또한 그 중의 한 편이다.
나라는 망했건만 산하는 남아 있고 國破山河在
성은 봄이라서 초목이 짙었구나 城春草木深
세월의 변천을 느껴 꽃에도 눈물 뿌리고 感時花천淚
이별을 원망하여 새를 보고서도 도적인가 싶어 놀란다 恨別鳥驚心
전쟁의 횃불은 석달이나 이어져 烽火連三月
가족의 편지는 그지없이 소중하다 家書抵萬金
센 머리를 긁으니 더욱 성글어져 있어 白頭搔更短
갓끈을 맬 비녀를 꽂기에도 어슬퍼구나 渾欲不勝簪
# 고희(古稀)
70세 나이를 '고희'라 한다.
당의 서울 장안, 그 동남쪽에 곡강(曲江)이라는 못이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못으로서 봄이면 서울의 상춘객이 들끓었다. 그 곡강 가에서 두보는 몇 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나이 47세 때 일이다.
날마다 조정에서 돌아오면 봄옷을 전당 잡히고
곡강 가에서 만취해 돌아간다
술빚(酒債)이야 예사로운 것, 가는 데마다 있거니와
인생이란 예로부터 일흔까지 산 이가 드무느니 (人生七十古來稀)
두보는 당시 1년 미만을 숙종 밑에서 조그마한 벼슬을 살았거니와 숙종을 에워싼 정치의 소용돌이가 두보의 심사를 어지럽혔다 한다. 그 무렵에 곡강 가에서 꽃과 술을 벗삼아 노래한 시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인생도 59세로 끝나 일흔을 넘기지 못하였는데 유랑과 가난으로 일관된 고달픈 일생이었다.
# 건곤일척(乾坤一擲)
한유(韓愈)의 싯귀로서, 천하를 잡느냐 놓치느냐 하는 커다란 모험을 말한다. 즉, 운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룸을 뜻한다.
진(秦)나라가 망하고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던 무렵,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이 팽팽하게 맞서 있었다. 치열한 싸움 끝에 휴전이 성립되어 항우는 군병을 이끌고 귀국하니 유방도 돌아가려 하였다.
이때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유방을 충동질했다.
"우리 한나라는 천하의 절반을 차지하고 여러 군주를 거느리고 있거니와 초나라는 군사도 지쳤고 식량도 없습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초나라를 멸망시키려는 징조요, 이 판에 치지 않는다면 범을 길러두어 후환을 남기는 거나 같습니다."
유방은 뜻을 정하여 초나라 군병을 추격하니 한신(韓信) 팽월(彭越)의 군사와 합세하여 항우를 포위하였다.
유방의 이 추격이야말로 천하를 쏟아바친(乾坤一擲) 모험이었던 바 그가 훗날 한나라의 고조이다.
# 경원(敬遠)
겉으로는 존경하는 척 하면서도 내심은 꺼려서 멀리 한다는 오늘 날의 뜻과는 달리, 본래는 신령을 섬기면서도 그를 멀리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공자는 불륜의 죄업으로 태어난 사람이었기에 정상적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 보다 더욱 도덕적으로 완전하고자 했다. 그런데 자기 부모의 행실을 부정하면 불효가 될 것이요, 부모의 행실을 용인하면 배덕(背德을 승인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공자는 도덕은 도덕으로서 받들고 부모는 부모로서 섬기며 도덕과 부모와의 관계에는 관여치 않는다는 자기중심주의를 견지하게 되었다.
하늘과 조상, 그리고 하늘에서 주어진 도덕률 등 사람의 의지를 초월한 모든 권위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의지를 초월했으면서도 어째서 권위인가 하는 비밀을 추구하지는 않고, 그런 권위에게 복종하기 위한 실천론만을 가르친 셈이었다.
공자의 제자인 번지(樊知)가 영지(英知)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대답하기를 백성으로서의 의무에만 힘쓰고 영혼이나 신령은 섬기면서도 그를 멀리 하는 것(敬遠)이 곧 영지(英知)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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