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우화소설의 개념
소설이 단지 교훈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평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던져주는 교훈은 소설의 목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요소이다. 일찌기 톨스토이는 그의 문학의 주목적을 교육과 도덕에 두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전적으로 풍자나 도덕적 교훈을 노리는 성격을 가진 문학으로 우화(寓話, fable)가 있다. 이는 현저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동물이나 식물 등의 사물을 인간의 성격이나 약점에 우유(寓喩)하는 수법을 쓰고 있는 문학이다. 이를테면 교활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여우에, 경망스런 사람을 토끼에, 미련한 사람을 곰에 가탁하여 동물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캐내어서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표를 삼기도 하고 인간의 여러 양태를 이와같은 동물의 본성이나 행위에 비유하여 우의적(寓意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유형적인 인간사회의 사상(事象)이나 인간행위를 동물에 가탁하여 간단한 하나의 교훈적 명제를 훈시해 주는 단편담인 동물우화를 소설 형태로 발전시킨 것을 동물우화소설이라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동물을 소재로 하고 등장인물이 동물이며, 동물들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지만 사람의 일을 동물의 일로 바꿔놓았을 뿐이지 그 의도는 어디까지나 인간사회를 우의와 풍자와 해학으로 교훈하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그것은 키플링의 <정글북>이나 차알즈 로보트의<빨간여우>와 같이 단순히 동물들의 생태를 그린 동물문학(動物文學, Animal Literature)과는 구별된다.
동물우화소설은 세계적으로도 중국의<鼠의 宴會> <三友傳>을 비롯하여, 일본의 <나는 고양이로다>, 프랑스의 <고양이 이야기, Romans de ronart>, 영국의 <動物農場, Animal farm> 등이 있다.
동물우화소설의 발전 과정
동물을 의인화(擬人化)한 표현의 역사는 신화를 비롯한 초기 설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만유영혼(萬有靈魂)의 애니미즘(Animism)이나 동물숭배의 토테미즘(Totemism) 사상에 입각한 의인화로서 동물의 개성과 인성의 결부와는 무관하고 의인화된 동물이 숭앙(崇仰) 대상의 인물이나 인간행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원용(援用)되고 있을 따름이다.
불교의 도도한 흐름을 타고 유전(流轉)하던 광포설화(廣布說話)로서 우화의 전모를 갖춘 삼국사기 김유신 조의 <龜兎說話>는 기록으로 남겨진 우리나라 동물우화의 남상이다. 동물우화는 우화가 가지고 있는 강한 교훈성과 풍자성 때문에 큰 매력을 가지고 일찍부터 유행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우화의 속성으로 보아서 기록상으로 정착된 것 이상으로 민담으로 구전되었을 것이다.
이같은 동물우화는 영 정조 시대 이후 문운의 흥기를 타고 고소설이 번성을 이루면서 동물을 의인화한 작품도 비로소 동물우화소설로서의 제모습을 갇추고 본격적인 등장을 하게 되었다.
동물우화소설의 출현은 다른 유의 소설에 비하여 상당히 뒤진 감이 있지만 그러나 무릇 사상(事象)의 발달과정에는 속도의 완급이나 일시적 정체는 있을지라도 단절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면 고려시대에 이미 기록으로 정착된 일이 있는 동물우화가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 그 양이나 질의 확대인 동물우화소설로 출현하기까지에는 기록상으로는 정착되지 않은 허다한 동물우화가 구비문학으로 연면히 이어와서 동물우화소설의 창작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다. 민옹전의 <쟁년설화>는 이와같은 경우의 좋은 본보기이다.
우유(寓喩)로써 인간과 사회현실의 모순 악폐 불합리 결점 등을 풍자하고 교훈하는 동물우화소설은 시대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영 정조 시대에 와서 실학(實學)이 시대의 학문으로 등장하게 되자 현실 비판의 안목으로 사회를 풍자하게 되었고 종래의 설화를 소재로 하여 풍자주의적 수법을 가미시켜 생활을 표현하는 독창적 작품이 나오는 추세를 타고 동물우화소설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의인대상으로서의 동물이란 조건은 심성(心性)이나 식물이나 다른 어떤 사물보다도 인간과 가장 가깝게 합치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조선조 후기의 의인소설의 영역은 동물우화소설로 압축되어진 셈이 되었고, 설화에서 신성(神性)을 가지고 빈번했던 인간과 동물과의 관계가 이 때의 소설에서는 인간행위를 동물의 행위인 양, 동물에 투사 반영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각성과 교훈을 촉구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추세 속에서 조선조 후기에 나타난 동물우화소설은 한문으로 기사(記寫)된 것으로는 쥐를 의인화한 <鼠獄記> <鼠大州傳>, 개구리 구렁이 등을 의인화한 <蛙蛇獄案>, 까마귀와 까치를 의인화한 <鵲烏相訟>이 있고, 국문으로 기사된 것으로는 <토끼전> <장끼전> <두껍전> <서동지전> <황새결송> <녹처사연회> <노섬상좌기> <메기장군전> <까치전> 등이 있어 가히 동물우화소설군을 형성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판소리계 소설인 <토끼전> <장끼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우화소설은 조선조 후반기 중에서도 더욱 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갑오경장 이후 개화기에 접어들면서는 근대소설적인 제일보를 내디딘 신소설이 등장하자 동물우화소설은 그 성격이 지닌 소설로서의 한계성 때문에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하였으나 1908년 안국선의 <禽獸會議錄>을 비롯, <警世鐘> <蠻國大會錄>등의 신소설계 동물우화소설이 출현하여 영 정조 시대 이후 번성했던 동물우화소설의 전통을 이어 주었다.
작품의 양상(樣相)
우리나라 동물우화소설은 조선조 후기에 집중적으로 발달하여 가히 일군을 형성, 동물을 의인화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테마와 구상을 하고 있으나 개개의 작품간에는 형성 과정이 다르기도 하고 내용이나 형식면에서의 차이와 주제의 경향 등 개별성이 따르게 마련이며 이본(異本)의 의심이 들만큼 유사성이 있는 것도 있고 같은 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
<토끼전>과 <장끼전>은 판소리계 소설이고 <두껍전>은 판소리계 소설일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여타의 동물우화소설에서도 판소리 사설조가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물우화의 희화적(戱畵的) 요소는 판소리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판소리의 사설조는 동물우화를 소설로 발전 형성 시키는 데 상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鹿處士宴會>와 <老蟾上座記>는 <두껍전>의 이본으로 생각할 만큼 <두껍전>이 가지고 있는 화소(話素)들을 갖추고 있으나 구성이 다르고 내용의 진전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어 이본이 아닌 유사작품으로 봄이 마땅하다.
<두껍전>의 내용이 다른 두 작품에 비하여 훨씬 윤색되어진 것으로 볼 때 <녹처사연회>와 <노섬상좌기>가 합하여 <두껍전>이 형성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동물우화소설 중 <토끼전>은 동일한 모티브로 된 스토리를 가진 이본이 가장 많아 이 작품에 대한 매력이나 관심을 짐작할 수 있고, <서대주전> <서옥기> <서동지전>은 쥐를 의인화하여 소송사건을 취급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이나 내용과 착상(着想)은 전혀 다른 작품들이다.
<메기장군전>은 어류(魚類)를 소재로 한 점, 특히 어류들의 생김새나 이름에 따라 관직명(官職名)을 부여한 점, 메기가 꿈풀이를 하려고 가자미를 수부(水府)에 보내어 고래장군을 청해 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토끼전>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동물우화소설은 대부분 구전되던 전승설화(동물우화)의 소설화이거나 직설적으로 표출하기 어려운 억울한 사건을 동물의 행위에 가탁하여 우화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물우화소설의 중심이 된 설화(우화, 민담의 동물담)는 '龜兎說話', '爭長說話', '野鼠婚說話', '訴訟說話', '꾀꼬리와 따오기의 목청자랑' 등이다.
귀토설화는 <토끼전>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데 불전(佛典)에서 나왔으리라고 보는 이 설화가 불교의 전법(傳法)을 목적으로 한 승려나 신도에 의하여 전승되어 오다가 어느 호문가(好文家)나 광대에 의하여 윤색이 첨가되면서 소설적인 내용으로 다듬어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동물우화소설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구전설화를 소설화했다는 단순한 사실보다도 동물우화의 요소만을 취해 동물우화소설로 작품화했다는 점에 비중을 두지 않을 수 없고, <토끼전>의 이본에 따라서는 짐승들이 모여 자리다툼을 하는 <두껍전>류의 장면이 부가되는 것을 보더라도 동물우화소설 형식의 소설에 대한 관심사를 알 수 있다.
<두껍전> <녹처사연회> <노섬상좌기> 등의 작품은 연암 박지원의 <閔翁傳>에 나오는 '쟁년설화'가 소설로 발전한 것이고, <장끼전>의 부분적 모티브가 된 설화는 '야서혼설화'이다.
<황새결송> <까치전> <와사옥안> <서동지전> <서대주전> <서옥기> 등 소송문제가 주제가 된 동물우화소설의 근원은 '꾀꼬리와 따오기의 목청자랑'이란 민담에서 찾을 수 있다.
다분히 풍간적 의미(諷諫的意味)가 있는 이 민담은 뇌물거래로 따오기가 꾀꼬리보다 목청자랑에서 이기게 되는 모순성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공정해야 할 재판이 뇌물거래로 흐려진 정치상을 동물의 세계에서 일어난 것처럼 꾸며 풍자한 이야기는 바른말을 대놓고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울한 심정을 털어놓는 그지없이 통쾌한 방편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관심사를 소설화한 것이 소송사건을 주제로 한 동물우화소설이다.
<메기장군전>은 동물형태유래담과 관련이 있다. 동물의 형태유래담은 동물우화에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솝우화에서도 '목이 긴 황새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나라의 경우 '목이 짧아진 자라의 이야기', '참새와 파리 이야기' 등이 있다.
<메기장군전>의 결말에서 가자미가 메기장군의 비위에 거슬리는 해몽을 했다가 이뺨 저뺨을 무수히 얻어맞고 얼굴이 모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이와같은 동물형태유래담이 동물우화소설의 한 형태로 발전한 예라 하겠다.
내용상의 특성
문학작품은 시대의 반영이고 그중에서도 서사문학인 소설은 더욱 구체적 시대상을 서술하고 있다. 조선조 후기에 집중적으로 발달한 동물우화소설은 조선조 후기의 사회상을 너무도 잘 나타내고 있다.
세도정치로 인한 중앙에 있어서의 정치기강의 문란은 곧 지방에 있어서의 행정 내지 재정의 난맥상을 초래하고 수령이나 서리들의 탐학은 19세기에 있어서의 세도정치 아래에서 현저하게 극심해져 간다. 뇌물을 바치고 관직을 얻은 관리들은 농민에 대한 가렴주구를 서슴지 않았을 것이고, 딱한 사정을 관아에 호소해 보았자 그것을 귀담아 듣는 지방관도 없었을 것이다.
쥐를 의인화한 소설이 동물우화소설의 한 유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 양곡과 쥐를 관련시켜 볼 때 이같은 농촌사회의 실정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고, 동물우화소설에 빈번히 나타나는 잔치와 그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소한 일로 송사까지 벌인다는 것(서동지전, 황새결송, 까치전, 두껍전, 녹처사연회, 노섬상좌기 등)은 식생활의 단순한 일까지도 그들로서는 심각한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가학적인 지배계급에 대한 서민들의 숨김없는 감정이나 사회적인 불만이 풍자와 비판으로 나타나 이 시대 소설의 한 경향이 되었고, 더구나 그 불만과 억울을 직설(直說)할 수 없을 때 동물로 우의(寓意)된 동물우화소설은 하나의 시대적 문학으로서 각광을 받아 사회제도나 민중의 의식구조의 교정에 기여했으리라고 본다. 특히 동물우화소설에 소송사건이 취급된 것이 많은 것은 세상사 인간사를 풍자하고 교훈하는 우화소설 본래의 목적성에 비추어 볼 때 조선조 후기 소송사건을 둘러싸고 위정자와 그에 아부하는 무리들 간에 부조리한 사례가 빈번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세태의 부조리상은 기성양반사회를 부정하고 윤리도덕관을 비판하는 서민의식을 성장시켜 군왕에 대한 충성심을 희화화하기도 하고(토끼전), 가학적 위정자를 도외시하기도 하며(녹처사연회, 두껍전, 노섬상좌기, 까치전 등),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진리였던 봉건적 유교이념 아래서는 생각도 못한 개가(改嫁) 문제가 언급되고(장끼전) 여성의 발언이 먹혀들어가기도(서동지전) 하였다.
단적으로 말해서 조선조 후기는 유교이념이 지배하던 봉건사회의 모순이 누적되고 지리하고 번뇌한 이론상의 시비를 야기했던 관념주의를 깨고 전통적으로 고수해 왔던 인륜도덕의 실천적 규범을 준수하면서도 실제적인 사고에 입각한 현실생활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중심과제였을 것이고 그러한 현실문제를 정면으로 표현할 수 없었을 때 필봉(筆鋒)을 동물들의 이야기로 돌려 표현한 것이다.
조선조 후기 인간사회의 모순과 불합리, 주로 지배계급의 행위나 소송사건을 둘러싼 뇌물수수의 부정을 풍자하고 양반 의식의 논리가 현실비판적 평민의 속물적 논리에 의하여 웃음거리가 되는 동물우화소설은 동물이 인간처럼 말한다는 아이러니를 통하여 지성적 흥미가 성립되고 우매를 일깨우고 있다.
풍자를 지향하면서 동물로 의인화 된 미천하고 무력한 주인공이 타락한 기성에 대립하여 갈등을 빚고 봉건제도가 지닌 획일적 절대주의가 부정되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신랄하게 반영한 평민문학으로서의 동물우화소설은 비유를 통한 우회의 수단으로 비판정신을 마찰없이 표현한 소설이라 하겠다. (김재환, 동의대학신문 교수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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