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수리와 산돼지와 고양이
속이 텅빈 고목이 있었다. 그 속의 높은 꼭대기에는 독수리가 새끼를 기르고 있었고, 밑둥에는 어미 산돼지, 그리고 한가운데는 암코양이가 새끼를 데리고 있었다. 이렇게 제각기 자리를 잡고 아무 불편없이 사이 좋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약삭빠른 고양이가 의좋은 세 집 사이의 의를 갈라 놓고 말았다. 고양이는 맨 먼저 독수리의 집으로 올라 갔다.
"우리들은 오래잖아 죽게 될 거예요. 다 죽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 아기들은 살아나질 못할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미의 마음에는 새끼가 죽으면 자기도 죽은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가만히 보셔요. 저 아래층에는 보기 싫은 산돼지가 밤이나 낮이나 흙을 파서 구멍을 뚫고 있지 않아요? 저건 틀림없이 이 고목을 뿌리째 넘어뜨려서 우리 아기들을 모조리 죽이자는 수작이예요. 이 고목이 넘어지기만 하면 아기들은 모두 그 놈이 먹어버릴 테니 정말 조심해야지 큰일 납니다."
독수리는 암코양이의 말을 듣고 공포에 벌벌 떨고 있었다. 암코양이는 독수리를 성공리에 설복시킨 다음 이번에는 산돼지를 찾아 내려 갔다. 산돼지는 갓낳은 새끼를 안고 있었다.
"우리 이웃 아주머니, 뭘 좀 알려 드릴 것이 있어 찾아온 거랍니다. 아주머니가 집을 비우고 밖에 나가기만 하면 저 독수리란 녀석이 아기한테 덤벼 들거든요. 미리 알고 계셔야지 큰일 납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러더란 말은 하지 마셔요. 괜히 제가 미움을 사게 되니까요."
산돼지는 불안에 떨었다. 그러고 나서 고양이는 제 집에 돌아왔다.
독수리는 고양이의 말을 듣고 난 뒤로 새끼들 걱정 때문에 외출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새끼들의 먹이가 문제였다.
산돼지도 마찬가지였다. 새끼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궁리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독수리나 산돼지는 그 대책을 수립하지 못하고 불행한 앞날을 그리다 보니 바깥은 한걸음도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마침내 모두 굶어 죽고 말았다. 산돼지의 새끼들도, 그리고 독수리의 새끼들도 죽음의 구렁에 빠져버렸다. 그 바람에 덕을 본 것은 고양이의 식구였던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 교묘한 말로써 남을 속이는 것은 알아내기 힘든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나온 온갖 악 가운데서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미워하는 것은 남을 속이는 일이 아닐까. 세상에는 사기한이 무척 많다. 그러나 속는 사람보다 속이는 자가 나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나는 속았다'고 떠벌리는 인간도 바보인 것이다. ***
# 노인과 나귀
한 노인이 나귀를 타고 어딘지 가고 있었다. 그들은 꽃과 풀이 무성한 들판에 당도했다. 노인은 그 곳에서 화려한 꽃과 좋은 향기에 매혹되어 한참 동안을 무료히 쉬고 있었다.
노인은 나귀를 풀어 주었다. 나귀는 마음껏 풀을 뜯으며 또 노래부르며 잔디밭에 뛰놀고 있었다. 그럴 때 노인의 원수가 나타났다. 노인은 무서움에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달아나자!)
노인은 마음을 굳게 먹고 나귀를 불렀다. 그러나 나귀는 능청만 떨고 있었다. 노인은 드디어 뺑소니를 쳤다. 저 숲속으로...... 그러나 나귀는 혼잣소리처럼 지꺼렸다.
"나는 어떤 사람의 것이 되거나 매한가지다. 도망갈 사람은 가거라. 난 풀이나 먹어련다. 내게는 언제나 주인이 나의 원수인 걸."
*** 이 놈이나 그 놈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든 다를 바 없다는 뜻이렷다. ***
# 늑대와 어린양
새끼양은 갈증을 느꼈다. 개울을 찾아가서 물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늑대가 찾아온 것이다.
"내가 물을 마시는 곳을 더럽히다니 무례한 놈 같으니......"
늑대로부터 야단을 맞은 새끼양은 여러가지 말로 변명을 했다. 그리고 뚝 떨어진 하류로 옮겨 물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늑대는 그것마저 용서하지 않았다.
새끼양은 태어난지 불과 몇 달짜리였다. 늑대는 자꾸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작년에 나에게 욕설을 퍼분 것은 네가 아니냐?"
"그 땐 저는 세상에 아직 태어나기 이전이었어요."
"그럼 그건 네 형이든지 어머니든지, 그렇잖으면 네 일족이 아니냐?"
늑대는 언성을 높이며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새끼양을 숲 속으로 끌고 가서 잡아먹고 말았다.
*** '가장 강한 자의 주장은 언제나 옳다'는 일반적인 처사. 그것이 세상엔 유행하고 있다. 여기엔 법도 그 절차도 위력을 상실하고 마는 법이다. 이것은 봉건시대의 지배자의 압정을 풍자한 것이지만 오늘날도 그대로 유통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형편이다. ***
# 병든 사자와 여우
굴 속엔 대궐이 있었다. 그 깊숙한 곳에 사자가 병을 앓고 있었다. 사자는 모든 짐승의 왕자(王者)다. 그는 모든 짐승에게 문병차 방문을 허락한다는 통지를 보냈다. 그리하여 대궐출입허가증을 발행하였다.
이 허가증을 가지고 왕을 방문하는 자는 물론 그 하인에 이르기까지 대궐에서는 신변안전을 보장한다고 덧붙여 놓았었다.
사자의 명령은 곧 사방으로 퍼졌고 여러 짐승이 문병을 왔다. 그러나 여우만이 한마리도 찾아오지 않았다. 여우는 굴 속에 들어앉아서 여러 짐승에게 대궐을 방문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자왕의 대궐에 병문안을 간 짐승들의 발자국을 찾아보면 어느 것이나 모두 대궐 쪽으로 향해 있었을 뿐 어느 하나도 되돌아 나온 발자국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게 내겐 이해가 성립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는 아예 그런 곳에 들어가지 않는 거야. 출입허가증을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걸 가지고 사자의 굴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게 되면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과 다를 게 뭐야."
*** 강자의 횡포에 대처하는 약자의 지혜를 빗댄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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