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리와 개
이리는 여위고 말라서 뼈만 앙상했다. 목장을 지키는 개가 엄중하게 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여윈 이리가 길가에서 혼자 지나는 목장지기 개와 마주쳤다.
개는 토실토실 살이 쪘고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털빛도 반질반질 윤이 났다.
이리는 개에게 당장 덤벼들어 잡아 먹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그러나 여윈 몸으로 건강한 개를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이리는 작전계획을 바꿨다. 이리는 개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다음 살찐 몸둥이의 아름다움을 한껏 칭찬해 주었다.
"뭐 내가 살이 쪘다지만 자네도 마음 먹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살이 찔 수 있을 걸세. 우선 숲속에서 나와 살아 보게. 반드시 몸이 건강해질 테니 말야. 숲속의 자네들 생활이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것이 아닌가. 한 끼 얻어먹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거지 생활이나 다를 게 뭐야. 그런 데서 살다가는 굶어 죽을 수밖에 없지. 나 있는 곳으로 따라 오면 마음 편히 살 수 있어."
이리는 솔깃해 가지고 다시 물었다.
"자네 있는델 가면 난 뭘 하게 되나?"
"아무 일 안해도 좋아, 몽둥이를 든 사람이나 거지들을 쫓아주고 집안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만 하면 그만이야. 그렇게 하면 닭고기 뼈다귀 같은 걸 얼마든지 얻어 먹게 될 거고 주인의 먹다 남은 음식으로 늘 배가 불룩하게 될 거야."
이리는 감개가 무량했다. 이제야말로 마음 편히 쉬고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 하고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다.
"그럼 목장으로 가자."
개는 이리를 데리고 목장으로 걸음을 옮겨 놓았다. 개를 뒤따르던 이리는 개 목에 털이 벗겨진 자국을 보았다.
"자네 목에 털이 벗겨졌는데 다친 자국인가?"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라니? 그럼 그게 왜 그렇게 됐냐 말야?"
"그건 목걸이 자국이야."
"목걸이라니? 자네는 집에서 목에 끈을 매고 있단 말이군 그래."
"때로는 매여 있을 경우도 있지만......"
"그럼 속박을 당한다는 말인가?"
"그런 일은 간혹 있지만 그리 대단찮은 일이지."
"아무리 좋은 음식을 얻어먹는대도 나는 속박하는 건 싫어. 세상없는 좋은 보물을 준대도 난 그처럼 자유없는 곳에 가지 않겠네."
이리는 다부지게 잘라 말하고는 걸음을 숲속으로 향해 쏜살같이 달아나버렸다.
-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운 라 퐁떼느의 동물우화이다.
"자유를 다오. 그렇잖으면 죽음을 다오."
이것은 미국의 독립전쟁 때, 그러니까 1775년 버지니아 식민지의 투사 패트릭 헨리의 말이다.
자유! 그것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
# 수탉과 고양이와 새앙쥐
아직 세상 모르는 어린 새앙쥐가 있었다. 하마터면 아무도 모르게 잡혀 갈뻔했다. 새앙쥐는 그 사실을 어미쥐에게 보고했다.
"남의 나라로 혼자 여행이라도 하려는 젊은이처럼 씩씩하게 내가 달려갔지요. 그러니까 무언지 모를 짐승 두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 마리는 아주 얌전하게 생겨서 보기에도 참 예뻤지만, 다른 한 마리는 선머슴같이 우락부락하고 목소리는 귀를 찢을 것 같고 무서웠어요."
새앙쥐가 무슨 미국서 온 동물처럼 어미쥐에게 이야기한 것은 수탉과 고양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그 놈이 말이야, 제 옆구리를 두 팔로 탁탁 치면서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나는 평소의 그 용기마저 사라지고 질려 도망을 쳤습니다. 속으로는 '이 망할 놈의 짐승' 하였지만 겁이 앞섰는 걸요. 그 놈만 없었으면 그 옆에 있던 그 얌전하고 예쁜 짐승하고 동무가 되어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 짐승은 우리들처럼 털이 있었고 털에는 무늬가 있었습니다. 꼬리가 길다랗고 눈알은 반짝반짝 빛났는데 무척 인정이 있는 눈이었어요. 그런 짐승은 쥐아저씨들과도 마음이 맞을 거예요. 쥐도 우리와 같이 생겼구...... 아, 내가 가까이 갈려는데 그 못된 짐승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 야단법석을 해서 그만 달아난 거예요."
"에그 이것아, 쯔쯔!"
어미쥐는 큰일났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하였다.
"......그 예쁘다는 놈이 바로 고양이란다.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을 것 같은 얌전한 얼굴을 하고 있으나 네 부모 할 것 없이 골탕을 먹여온 나쁜 놈이 고양이였지. 그리고 네가 무서워했고 미워죽겠다던 그 짐승은 고양이와 정반대로 우리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고 때때로 우리들의 반찬이 되어 주기도 한 닭이라는 짐승이야. 알겠지? 고양이란 놈은 우리를 잡아먹고 사는 짐승이니 조심해라. 그리고 얼굴이 잘 생기고 못 생긴 데서 그 마음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 세상엔 미소란 것이 있다.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 있으나 속은, 상대를 이용하려는 마수의 마음을 갖는 자가 있다. 그리고 생김새에 따라 그 인간성을 판단하려는 것은 어쩌면 큰 과실을 초래할 경우가 있다.
처세는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에는 비수가 들어있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 황소와 개구리
황소 두 필이 암소 한 필을 가운데 두고 결사적인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한 마리의 개구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왜 그러니?"
걱정하는 개구리의 옆에 있던 동료개구리가 싱겁게 물었다.
"너는 그것도 모르는구나. 저 황소들의 싸움이 끝나면 그 중 한 놈이 저기서 못 살고 쫓겨나게 될 거야. 큰일 났어! 그렇게 되면 그 놈은 틀림없이 이 늪으로 와서 갈대밭을 돌아다니면서 죄없는 우릴 못 살게 할테니 이 일을 어쩜 좋아, 우리들은 그 황소 놈에게 밟혀 죽게 될 거니까 말이야."
한 필의 암소를 두고 다투던 두 황소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한참 동안이나 싸웠다. 승부는 좀체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황소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구경하고 있던 개구리들은 숨을 죽이고 풀숲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그 개구리의 예견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싸움에서 패배한 황소는 개구리들이 노는 곳으로 도망쳐 왔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스무 마리의 개구리를 짓밟아 죽이고 말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졌던 것이다.
- 슬프다! 옛부터 내려오는 '약육강식'이란 말처럼, 약한 자는 크고 강한 자의 몹쓸 행동 때문에 희생되고 마는 모양이다.
'우화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 퐁떼느 우화5) 박쥐와 두 마리의 족제비/사슴과 우물/聖者의 기념품을.. (0) | 2011.05.01 |
---|---|
라 퐁떼느 우화4) 꼬리를 잘린 여우/광에 들어간 족제비/독수리와 부엉이 (0) | 2011.03.07 |
라 퐁떼느 우화2) 사냥개와 개집/사자와 모기/사자의 몫 (0) | 2010.11.13 |
라 퐁떼느 우화1) 독수리와 산돼지와/노인과 나귀/늑대와 어린양/병든... (0) | 2010.09.28 |
새 카테고리 '우화의 세계'를 열면서/ 왕을 바라는 개구리들 (0) | 2010.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