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 관한 고사
옛날에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팔아 살아가는 영길이란 청년이 있었다. 영길이에겐 예쁜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만 병 때문에 결혼 사흘 전에 죽고 말았다. 영길이는 매일 무덤에 가서 슬피 울었다.
어떤 날 무덤 옆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돋아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영길이는 이 꽃이 죽은 약혼자의 넋이라고 생각해서 집에 옮겨 심고 그 꽃을 가꾸며 사는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약혼자가 죽은 후부터 왠지 그릇도 그 모양이 슬퍼하듯 찌그러져 잘 팔리지 않아 고생은 점점 심했다.
세월이 흘러 영길이는 늙어지고 매화나무도 자랄대로 자랐다. 명절마다 매화나무 꽃 그릇을 새로 만들어 옮겨 심고는, 산 사람에게 말하듯 내가 죽으면 누가 돌봐주느냐고 슬퍼했다.
영길이는 더 늙어 눈도 잘 안뵈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불쌍한 노인을 돌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또 세월이 흘렀다.
그 후 동네사람들은 영길이 노인집 대문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슨 곡절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안에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고 영길이가 앉았던 자리에 예쁘게 만든 그릇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휘파람새가 날아 나왔다.
영길이가 죽어서 휘파람새가 된 것이다. 아직도 매화꽃에 휘파람새가 따라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화의 꽃말은 '아름다운 덕'. 사군자의 하나다.
매화의 어원과 풍습
梅花의 '梅'자는 고자(古字)로 '某'이다. 매실이 시고 달기 때문에, '甘'자와 '木'자를 합성한 것이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주는, 삶의 의욕과 희망을 찾아 주는 눈 속의 꽃이다.
겨울의 매화는 죽은 용의 형상인데, 여기에서 꽃이 피어남은 늙은 몸에서 정력이 되살아나는 회춘(回春)을 상징한다.
매화를 집 안에서 가꾸는 것만으로도 춘정(春情)을 북돋우며, 그 열매로 담근 술은 강장 효과가 있다.
또한 매화는 사랑을 상징하는 백 가지 꽃 중에서 으뜸이다. 모란이 부귀, 연꽃이 군자, 난초가 은군자와 귀녀, 국화가 은일자, 해당화가 신선인 데 비해 매화는 꽃 중의 우두머리라고 <백미고사(白眉故事)>에서 설명하고 있다.
매화는 여성의 비녀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하고, 민화의 화조도에도 즐겨 그려진다. 모두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이다.
풍습에서 양가의 여인들은 대나무의 절개 상징성에 더하여 매잠(梅簪) 대신 매죽잠(梅竹簪)을 사용하였다. 조선 세조 때의 성삼문은 호를 매죽헌(梅竹軒)이라고 하였다. 눈 속에 피는 매화와 대나무의 절개를 표상하여 충신의 의지를 상징한 것이다.
'매화도 한 철 국화도 한 철'이라는 속담이 있다. 매화가 아무리 사람들의 애호를 받는 좋은 꽃이라 하더라도 그 명성은 한 철에 그치므로 결국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 삼라만상은 어차피 덧없기 마련이다.
매화의 열매는 한방에서 약으로 쓰인다. 약성은 온(溫)하고 산(酸)하며, 수렴(收斂), 지사(止瀉), 생진(生津), 진해(鎭咳), 구충(驅蟲) 등의 효능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매실을 소주에 담가 매실주를 만들어 먹기도 하며, 꽃잎을 넣어 죽도 쑨다.
궁중에서 똥을 매화라고 하였고, 임금의 대변기를 매화틀이라고 하였다. 왕의 신성성을 높이고자 한 데서 생겨난 상징일 것이다.
매화의 정신적 표상
매화는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많이 재배하였다.
정도전은 '매천부(梅川賦)'에서 당시의 선비 하유종의 고결한 인품을 매화로 상징해 읊었다.
다음의 시조도 고결한 기품의 선비를 상징하고 있다. 매화의 향내는 선비의 고결한 덕의 발현을 상징한다.
매화 피었다기에 산중에 들어가니/ 봄눈 깊었는데 만학이 한 빛이라/ 어디서 꽃다운 향내는 골골에서 나나니(무명씨)
도연명의 정원엔 소나무, 국화, 그리고 대나무뿐/ 梅兄은 어찌하여 여기에 들지 못했나/ 내 이제 梅兄까지도 아울러서 風霜契를 만드니/ 절개와 맑은 향기 흠뻑 알겠네(이황, 節友社)
천연한 玉色은 세속의 어두움 뛰어넘고/ 고고한 기질은 뭇 꽃의 소란스러움에 끼여들지를 않아(이황, 湖堂梅花)
승 일연은 다음의 시에서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을 매화로 상징하여 표현했다.
金橋엔 눈이 덮여 얼어붙음 풀리지 않아/ 鷄林엔 봄빛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는데/ 기특하기도 해라 봄의 신 꾀도 많아서/ 毛禮의 집 매화에다 먼저 손을 썼네.
동양문화권에서의 매화의 위상
매화나무는 잎사귀가 나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매화나무는 추위가 한창인 중국 북방에서 유일하게 온실 보온 없이 꽃이 피는 나무이며, 새해에 먼저 꽃이 피는 나무이다. 그러므로 꽃이 필 무렵에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된다.
매화를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 하여 천진하고 순결한 처녀에 비유하였다. 따라서 매화는 겨울과 여인을 상징한다.
달 구석 매화 몇 가지/ 추운 겨울 혼자 피네/ 멀리 보아 눈은 아니니/ 은은한 향기 스스로 풍기네(왕안석)
매화의 다섯 잎사귀는 다섯의 상서로운 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운수를 예측하는 데 사용하였는데, 이는 철학자 소옹(邵雍)에 의해 발전되었다.
매화는 몸종이니, 시녀 이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성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기생집 침상 도구에는 매화 그림이 많으며, 이도매(二度梅)는 재혼을 말한다. 또 양매병(楊梅病)은 매독으로, 몸에 매화같은 반점이 보인 데에 유래한다.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겨울의 세 친구'로 불린다.
청매죽마(靑梅竹馬)라 하면 한 쌍의 연인이 어릴 때부터 의좋게 지낸 관계를 가리킨다.
또 매화나무는 많은 씨를 퍼뜨린다 하여 다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龍城錄>에 의하면,
"수나라 조사웅이 나부산(羅浮山)을 구경하다가 해가 지고 추워서 민가를 찾았다. 솔밭 사이로 불빛이 보여 내려갔다. 그런데 소복 단장한 미인이 마중을 나오며 맞이하였다. 잔설이 얼어붙은 위로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었다. 여인의 말씨는 몹시 청아하고, 향기로운 냄새는 방 안에 가득하였다. 술을 즐기는데, 홀연히 한 녹의동자(綠衣童子)가 나와 춤과 노래로 취흥을 돋우었다. 취해 쓰러져 잤는데 추위를 느껴 깨어보니 큰 매화나무 아래에 누워 있었다."
여기서 미녀는 매화나무의 정령으로 호색요녀(好色妖女)를 상징한다.
일본에서는 곧게 자란 매화의 어린 가지에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영력(靈力)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하거나 제사 지낼 때 매화지팡이로 집안을 두드려 악귀를 쫓는다. 또, 악마가 붙어 아픈 소는 매화막대기로 치면 악마가 떨어져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
의식 때에 매화지팡이를 사용하는 수가 있고, 사원에서 수법(修法)하는 사람들도 매화지팡이를 사용한다. 또 귀인이 땅에 꽂은 매화지팡이에서 뿌리가 내려 큰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많이 있다. 이들 모두는 매화지팡이에 특별한 종교적 의의가 있고 신성함을 표상한다.
겨울은 역학적(易學的) 사고로는 죽음의 상태에 있는 계절이다. 이 계절의 끝머리에 피기 시작하는 매화는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천지의 양기의 회복을 알리는 전령사, 또는 우주 생기의 최초의 발현을 상징한다.
천지 간에 음기가 꽉 차 있어/ 어느 곳에서 봄빛을 찾는담/ 기특하기도 해라 저토록 수척한 것이/ 얼음 서리 물리쳐 내네.(정도전, 매화를 읊다)
坤陰이 힘을 부리는 것 막기 어려워/ 만물이 뿌리로 돌아가 쉬이 찾아지질 않네/ 어젯밤 남쪽가지에 흰 송이 하나 생겨났기에/ 향 사르며 단정히 앉아 天心을 보네.(이숭인, 매화)
시에서 옥, 선녀, 달 등의 이미지와 관련해 표현된 데서 알 수 있듯이 매화는 미녀 중에서 순결의 감각을 주는 미녀를 상징한다.
천향국염(天香國艶)은 원래 모란을 상징하였으나, 조선시대 이황에 이르러서는 매화를 가리키게 되었다. 모란과 매화는 대조적인 꽃이다. 그런데 도학적 미의식은 성장(盛粧)한 미녀의 이미지인 모란 대신에 담장(淡粧)한 미녀의 이미지인 매화를 최고의 미녀로 상징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옥 같은 살결엔 아직 맑은 향기 있네'(이규보, 매화), '곱고도 아리따운 玉仙의 자태여'(김구용 매화 그림), '더불어 같은 것이 없는 천향국염이로다'(이황, 지인 우연히) 등의 표현이 그렇다.
매화는 사군자의 필두로서 고결한 선비 정신을 상징한다. 시조에 나타난 최초의 매화는 이색의 작품이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러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골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매화는 낙목한천(落木寒天)에 홀로 서 있는 오상고절(傲霜高節)의 국화와 더불어 선비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 왔다. 그것의 속성이 아담한 운치와 높은 절조에 있기 때문이다.
조선 말 안민영은 <詠梅歌>8수로 매화찬(梅花讚)의 대미를 장식했다. 다음에 1수를 본다.
어리고 성긴 가지 너를 믿지 않았더니/ 눈 기약 능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때 暗香조차 浮動터라.
송나라 임포의 시 '暗香浮動月黃昏'에서 따온 제6구는 인구에 오래 회자되어 왔다. 안민영은 서호에 은거하며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는 임포의 고사를 염두에 두고 시를 썼을 것이다.
근대 시에 보이는 매화로는 이육사의 '광야'가 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일제 강점기에, 이육사는 매화 향기를 환각하면서 조국 광복의 꿈을 싹틔웠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사로서, 문사로서 높은 정신적 경지를 보여 준 작품이다.
김진섭은 '매화찬'에서 매화의 교훈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즉, 매화는 초지상적, 초현세적인 인상을 주는 꽃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초고(超高)하고 절개가 굳은 꽃이며, 한때를 앞서는 선구자의 영혼에 피어나는 꽃이라고 하였다.
매화는 고려 이래로 우리 미술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진 소재이다. 고려 때에는 세한삼우(歲寒三友) 또는 사군자라 일컬어지는 梅, 蘭, 菊, 竹이 묵화로 즐겨 그려졌다. 이에 따라 고려 도자기에서도 그러한 소재가 의장 무늬로 많이 쓰여졌다. 이러한 화훼(花卉)는 회화에서 그 고결함으로써 군자를 상징한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풍속이 아름답고 예절이 발달한 나라라 하여 군자국(君子國)으로 불리었다. 조선시대 회화와 도자기, 나전 칠기 등 각종 공예 미술에도 의장 요소로 많이 쓰여졌다.
고려 회화로서 현재 일본에 있는 해애(海崖)의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가 있다. 고려 때는 북송의 영향을 받아 묵죽(墨竹) 묵매(墨梅)가 유행했던 것이다.
고려 삼강 청자로서 매화, 대나무, 소나무가 그려진 매병(梅甁)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청화백자매조문호(靑華白磁梅鳥紋壺) 등에서 매화가 즐겨 시문(施紋)되었다. 이러한 매화는 선비의 아취를 상징한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중에는 야생의 매화를 생식력의 상징으로 삼는 부족이 있다. 야생 매화는 번식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꿈에 그 열매가 나타나면 에로틱한 의미를 띠며, 성적 쾌락의 욕망을 보여 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매화는 동양적 정서의 꽃이다.
如岡 편글, 韓國文化象徵辭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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