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오지(旬五志)
순오지는 조선 숙종 때 학자인 홍만종(洪萬宗)이 쓴 잡록이다. 필사본 2권 1책으로 일명 십오지(十五志)라고도 하는데, 보름 만에 완성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1678년(숙종 4년) 홍만종의 나이 36세 되던 해에 이루어졌으나, 간행되지 못하고 필사본으로만 전해져 왔다. 책머리에 김득신(金得臣)의 서(序)와 자서(自序)가 있다. 자서에서, 자신이 병으로 누워 지내다가 옛날에 들은 여러 가지 말과 민가에 떠도는 속담 등을 기록하였다고 밝혀 놓았다. 내용은 고사일문(故史逸聞), 시화(詩話), 양생술(養生術), 유현(儒賢), 도가(道家), 불가(佛家), 삼교합론(三敎合論), 문담(文談), 문집, 별호, 속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유불선(儒佛仙) 삼교에 대한 매우 해박한 논설을 펼쳤는데 그 중에서도 도교에 대한 내용이 많다. 특히 도교의 신선술(神仙術)과 양성보명(養性保命)의 내용은 일종의 건강 비법이기도 하다.
신선술(神仙術)
태백진인(太白眞人)은 병을 마음으로 고치는 비결이 있었으니, 이는 모두 중요한 말이요, 알아둘 필요가 있는 일이기에 아래에 기록해 두고 내 스스로 살피는 자료로 삼으려 한다.
만일 자신의 병을 고치려거든 마음을 다스리고, 또한 그 마음을 반드시 바르게 해야만 한다.
환자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하고, 또 평생의 자신의 허물이나 뉘우침 등을 몰아낸 다음에 자신이 타고난 올바른 천품을 그대로 바로잡아 이것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한다면 자연히 마음이 태연하고 성품과 생각이 화평해져 모든 세상 만사가 텅 빈 것같이 될 것이로다.
이렇게 되면 온종일 할 일이 모두 헛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본래 내 몸은 비어 있는 것이며, 화복도 내게는 소용이 없고 죽고 사는 것도 모두 한번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자연히 깨달음을 얻고 지난 일에서 깨끗이 벗어난다면 마음은 자연적으로 밝게 되고, 깨끗해질 것이며 질병도 없어질 것이니 약을 필요로 하기 전에 병은 이미 완쾌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인(眞人)의 병을 마음으로 고치고, 마음을 도(道)로써 다스리는 큰 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조 때 대제학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옛 사람들의 수련법을 택해서 그 중에서 행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후손들에게 권장할 만한 것 100여 가지를 요약하여 놓은 것이 있기에 아울러 여기에 적어 둔다.
약을 먹을 때 올바른 방법으로 먹지 않는다면 재물만 허비할 뿐 아무런 효과도 없게 되며, 생명도 위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수련법에 의지하여 병을 고치면 약을 먹는 이보다도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약을 먹는 것이나 수련하는 것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모두 쓸 데가 없이 되고 만다.
이 수련법이란 한두 달 동안만 열심히 행하고 나면, 저절로 습관이 되어 중지하고자 해도 어렵게 된다.
우선 새벽에 일어나서 몸 속에 있는 탁한 공기를 내뱉고 코로 새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기를 세 번씩 한 다음 아래윗니를 서로 맞부딪치기를 26번 정도 하고, 다음으로는 눈두덩을 엄지손가락으로 27번 문지르고, 엄지와 검지를 가지고 콧등을 대여섯 번 문지른다. 다음엔 귓바퀴 안팎을 몇 번 문지르고 나서 얼굴을 두 손으로 문질러 더운 기운이 나도록 한다.
이런 수련법은 모두 새벽에 일어났을 때 해야 하는 것이며, 또한 낮에도 때때로 이렇게 하면 저절로 기분이 상쾌하고 맑아진다.
<조식법調息法>
이 법을 자주 행하면 신선이 된다. 하지만 양생하는 데에도 이 법이 필요하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운을 차린 뒤에 바로 이 법을 행하는데 한가히 앉아서 모든 잡념을 버리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한다.
이렇게 하면 호흡은 저절로 느려지고 이 호흡이 배꼽 밑에까지 와 닿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시 배꼽 밑에서 나오는 공기가 코끝에까지 나오면 다음엔 다시 서서히 새 공기를 들여마셔 마음과 호흡이 일치하도록 하면 몸 안에 있는 열은 아래로 내려가고 수기(水氣)가 위로 올라오게 된다.
<탐진법呑津法>
탐진법에, 본방은 혓바닥 위에서 생기는 침을 씹어서 삼키는 것이다.
하지만 침을 혓바닥 위에 생기게 하는 방법은 혀를 구부려서 움직이기만 하면 저절로 침이 생기니 별로 어려울 것은 없을 것이다.
이 법을 한동안 계속해서 몸에 배도록 하면 그만둘래야 그만둘 수가 없으며 또 배고프고, 피로할 때도 힘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도인법導引法>
이것이 무엇보다도 행하기 어려운 법이다.
오랫동안 길을 걸어서 피곤할 때나 매우 덥거나 추워서 참기 어려운 때는 마치 몸의 모양을 활을 쏘는 것과 같이 하는 방법이다.
팽팽한 활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듯이 힘을 주고, 또 양쪽 발을 두 손으로 잡아당겨 몇 번씩 힘을 주면 마음 또한 화창해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댈 때에도 이 법을 써서 힘을 주면 능히 견딜 수가 있다.
입 안에 대추씨를 물고 있으면 허기가 나지 않는다.
몹시 춥거나 덥거나 바람이 불고 습기를 만났을 때도 호도 두어 쪽을 입 안에 넣고 굴려서 그 기운을 오장 속으로 들여보내면 어떠한 병도 감히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보화탕保和湯>
아무리 이름 있는 의원이라 할지라도 고치지 못하는 병인, 수신방(修身方), 삼부경(三部經), 삼수결(三瘦訣)을 거뜬히 고칠 수가 있다.
이것은 모두 선인들이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탐욕을 버림으로써 스스로의 수명을 연장시키던 요법이다. 이것은 내가 수많은 책 속에서 뽑아 간추려서 여기에 수록한 것이다.
보화탕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간사스런 마음을 먹지 않는다
착한 일만 행한다.
양심을 속이는 행위는 안 한다
일을 방편(方便)대로 행한다
자신의 본분을 지킨다.
질투나 시기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교활하고 간사스런 마음을 없앤다.
성실하려고 노력한다.
하늘의 도를 따른다.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
마음을 밝게 하고 탐욕을 없애도록 한다.
인내하여 부드럽고 순하게 한다.
겸손하며 평화롭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청렴하고 삼가며 결백하고 후해야 한다.
절약하고 수수하며 중용을 행한다.
기회를 잘 알고, 자기 자신을 존엄하게 생각한다.
양보할 줄을 알고 정숙해야 한다.
남몰래 이웃을 돕고, 살생을 경계한다.
화내거나 표독하지 않는다.
물욕을 탐내지 말고 혼자 있기를 삼간다.
위의 20가지 일을 가루가 될 때까지 입으로 씹어서, 그 속에 심화(心火) 한 근과 신수(腎水) 두 사발을 넣고 5분 동안 달여서 마치 시간이 없어 수시로 먹는 것 같은 기분을 가져야 한다.
수신방이란 다음과 같다.
효성과 착한 마음[孝順] 열 푼쭝.
좋은 장위(腸胃) 한 가닥.
자비심 한 조각
온순하고 부드러운 마음[溫柔] 반 냥쭝.
노실두(老實頭) 한 개.
올바른 도리(道理) 세 푼.
충직스런 마음 한 뭉치.
음덕(陰德) 전부.
방편(方便) 다소를 불구.
이 약은 큰 가마솥에 불을 지르고 약을 대충 볶아 가루를 만든 다음, 좋은 꿀로 보리차 크기의 환약을 만드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
이것을 잊지 말고 매일 세 번씩 평심탕(平心湯)으로 복용하면 만병이 금세 없어진다.
여기에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지 말며, 행실은 올바르지 못하면서 말만 번지르르하다든가 어두운 곳에서 화살을 겨누는 것과 같은 쓸모없는 짓이나, 웃음 속에 가시가 돋힌 음험한 짓, 그리고 뱀을 찾기 위해 풀을 뽑고 잔잔한 물결에 풍랑을 일으키는 악한 일은 꼭 삼가야 한다.
삼부경(三部經)이란 무엇인가.
방편을 참아야 하며[忍方便], 본방에 의거해야 한다[依本方].
태백 진인이 말하기를,
"세상의 사람들이 복을 구하고, 화를 면하기 위해 경문(經文)을 외우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마음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래가지고 아무리 경문을 외운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단지 겉껍데기만을 구하고 그 안에 있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삼부경은 겨우 여섯 글자로 된 경문이다. 이 경문이 비록 너무 간단하기는 하지만 그 공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그것은 이 경문을 유자(儒子)가 외우면 성인이 될 것이며, 도사(道士)가 외우면 신선이 될 것이며, 화상(和尙)이 외우면 부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생각을 체념하고 실천한 후에 외워야 한다. 이 삼부경이란 단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 저 대장경(大藏經) 속에 있는 경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이것을 성심성의껏 받아 가진다면 병도 재앙도 없어지게 되어 자연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비록 자기 자신은 복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손에게는 기필코 복을 주게 된다."
삼수결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원나라 회계(會稽) 양태사(楊太史)인 유렴(維廉)이 지은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 늙은이를 길에서 만났는데,
나이 많은 신선에 비길 만하네.
그대 어떻게 장수를 했는지,
그 비결 내게도 알려주오.
맨 위 늙은이 말하기를,
큰 도로 넓은 성품 온전히 가졌었네.
가운데 늙은이 하는 말은,
한서(寒暑)를 따라 부드럽게 했노라.
아래 늙은이 하는 말이,
백년의 절반은 혼자서 잤네.
이것이 세 늙은이 비결이니,
이리하면 장수는 저절로 온다.
양성보명(養性保命)
내가 아무 할 일이 없을 때, 한가로이 옛 사람의 서적만 뒤적이고 있었다. 이때에 항상 아름다운 말이나 격언을 보면 이것을 마음 속에 명심하거나 혹은 오래되면 잊어버릴까 염려하여 몇 가지 낱말을 분류하여 적어놓은 것이 있다.
이것은 첫째로 목숨을 보전하고 성품을 기르는 것[養性保命]이요, 둘째는 몸을 세우고 스스로가 먼저 행해야 한다는 것[立身行己]이요, 셋째는 가정을 다스리고 사물을 처리하는 것[處家理物]이요, 넷째는 관리가 되어 올바른 정치를 한다는 것[居官리政]이다.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만 골라서 스스로 암시하고 또는 후손에게 보여서 각 가정에 한 가지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양성보명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듣고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다 사람의 정신과 기운을 소모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면벽(面壁)이란 석씨(釋氏)에게 있고, 좌한(坐閑)이란 선가(仙家)에게 있다.
이것은 모두 정신과 힘이 없어지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괴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오래 사는 비법이다. 자신의 성품을 기르기 위하여 사나운 것과 노여워하는 것을 버려야 하며, 정신을 기르기 위하여 생각을 적게 하고, 그 기운을 기르기 위해선 말을 조금만 해야 하며, 그 정기를 기르려면 욕심을 아주 끊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원기(元氣)에 의뢰하여 사는 것뿐인데, 술과 색(色)은 원기를 가장 해치는 것이다.
그러니 늙을수록 이 두 가지를 더욱 삼가야 할 것이다.
색을 보면 원수 피하듯 하고,
바람끝 불어오면 화살 피하듯 하라.
빈 속엔 술을 먹지 말고,
야밤 중엔 밥을 많이 먹지 말라.
즐거운 일은 너무 좋아하지 말며,
매사를 자기 욕심대로만 하지 말라.
기름이 없으면 등불은 희미하며,
골이 아프면 사람도 죽게 되느니.
춥지 않게 적당히 따뜻하게 하며,
시장하지 않을 만큼 장을 적당히 채우라.
욕심 없음을 영화로 삼고,
화가 없음을 복으로 삼으라.
이 같은 처세술로 사람이 산다면 훌륭하다고 하겠다.
입이 무거우면 머리속에 생각하는 일 적고,
장이 비어 있으면 밤중에 졸음도 적다.
위에 적은 4가지를 행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
몸이 평안함은 마음 편한 것만 못하고,
보약은 음식으로 보전하는 것만 못하네.
부귀를 오래 영위하면 스스로의 몸을 죽이고,
음식에 욕심이 많으면 수명을 단축시킨다.
복이란 맑고 검소한 데서 이루어지고,
도는 온순하고 고요한 데서 이루어진다.
많은 욕심은 걱정을 낳게 하고,
재물을 탐하면 화가 생기는 법이다.
풍류로 득의한 일이라도,
한번 지나고 나면 문득 허무한 생각이 든다.
맑고 참되고 쓸쓸한 시골에서도,
오래 있으면 점점 즐거운 일도 생기는 법이다.
취한 후 미치광이 소리, 정신이 나면 후회되고,
편안할 때 쉬지 않으면 병나서 고생하네.
양생의 길은
욕심없이 사는 게 제일이고,
도가의 근본 뜻은,
화를 알지 못함이 으뜸일세.
노여움이 심하면 편벽되어 기운이 없어지고,
많은 생각은 정신을 공연히 어지럽게 한다.
정신이 피곤하면 마음이 어둡고,
기운 약해지면 병이 저절로 오네.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말고,
마시고 먹는 것 일정하게 해야 하네.
두 순배 세 순배 밤 술에 취하지 말고,
아침에 화를 내는 것을 가장 경계하라.
고요한 밤이라도 구름 북 올리는 듯,
새벽에 일어나서 맑은 물에 입 씻으라.
요망하고 간사함 내 몸 성치 못할 게요.
나의 정신과 기운으로 올바르게 행하라.
모든 병 없기를 그대 만일 원하거든,
항상 매운 음식을 적게 취하라.
정신 편안하면 즐겁게 마련이요,
기운을 아껴야만 화락함 보전하리.
수명의 길고 짧음을 명이라고 알지 말라,
딲고 행하는 것 사람에게 있는 것을
만일 이런 이치를 따른다면,
평지에서도 옥황을 만나리라.
이 10구로 되어 있는 시는 일종의 수를 기르는 방법의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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