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세계

끄르일로프의 우화1) 개와 사람과 고양이와 매/ 개집으로 들어간 이리/ 농부와 여우

如岡園 2011. 7. 26. 23:23

          # 개와 사람과 고양이와 매

 개와 사람과 고양이와 그리고 매가 한 번은 이런 약속을 맺었다. 그것은 앞으로 서로 형식적이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며 정답게 지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넷이 모두 한 집에서 살고 식사도 함께 나누자고. 또 기쁜 일이나 궂은 일이나 다 같이 나누어 가지며 상호부조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아끼지 말자는 굳은 협상을 했다.

 어느 날 이런 굉장한 약속을 맺은 그들 넷이 똘똘 뭉쳐서 사냥을 나갔다. 너무나 먼 길을 걸어서 모두 피곤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냇가에서 한참 쉬게 되었다. 벌렁 누워 있는 놈, 앉아 있는 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놈, 그들은 태평연월을 즐기며 있었다. 

 그 때 숲속에서 큰 곰 한 마리가 입을 딱 벌리고 어거정 어거정 기어 나왔다. 그들은 언제 약속이나 했느냐는 듯이 서로 제 목숨을 구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매는 공중으로 푸루루 날아버렸다. 고양이는 숲속으로 살금살금 숨었다. 그러나 사람은 꼼짝달싹 못하고 그만 곰에게 목숨을 바칠 판이 되었다. 진실한 개가 이를 보고 그 무서운 곰에게 달겨들었다. 개는 곰한테서 몇 번인가 내동댕이쳐졌지만 한사코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개가 곰을 물고 늘어져 기진맥진했을 때 사람은 총을 메고 집으로 도망쳐버렸다.

 - 진실한 개에 비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입으로만 친절이니 절친한 사이니 뭐니 아무리 떠벌려도 소용이 없다. 그의 행동이 바로 친절화되어야 하겠다. 정말 참 친구란 세상에 드물다. 그것은 곤란한 변을 당했을 때 비로소 그 마음에서 그 행동에서 표현되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때를 당해 보아야 참된 벗이 그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 것인가를 비로소 알 수 있다.

 친구의 덕택으로 어려운 가운데서 구함을 받고도 그 진실한 친구를 불행의 구렁에 빠뜨리는 자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급기야는 그 친구의 있는 욕 없는 욕까지 하지 않는가.

 

          # 개집으로 들어간 이리

 한밤중이었다. 한 마리의 이리가 들어간 것은 제 집이 아니라 개집이었다. 잘못 들어간 것이었다. 개집에서는 당장 큰 소동이 벌어졌다. 방안에 있던 개들은 회색털에 싸인 이 침입자를 보자마자 일제히 짖어대며 덤벼들었다. 

 그 집 주인도 잠결에 놀라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개집은 난장판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몽둥이를 든 사람, 총을 든 사람들이 벌떼처럼 온 집을 누볐다.

 "불을 밝혀라!"

 어둠을 헤집고 들려온 소리였다. 이윽고 등불이 비쳤다. 이리는 한쪽 구석에 납작 들어붙어서 이 쪽의 모양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무서움에 견딜 수 없었다. 털을 곤두세우고 달달 떨기만 했다. 그러나 이리의 강인한 마음은 눈으로 통해 들어났다. 유독히 표독스럽게 부릅뜨고 있었다. 

 이리는 이때야말로 위기일발이라 생각했다. 자칫하면 목숨이 사라질 판국인지라 응급대책이 안 생길 리 없었다.

 이리는 이렇게 말문을 열어 놓았다.

 "여러분, 대체 뭣 땜에 이렇게 야단법석입니까? 나는 당신네들의 옛친척입니다. 나는 싸움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잘 지내기 위해서 협상하러 온 것이랍니다. 여러분, 흘러간 그 세월의 자잘못을 캐낼 것이 아니라 그것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같이 정답게 지내지 않으렵니까? 나도 앞으로는 이 곳 가축들에겐 손대지 않겠으며 다른 짐승에게 그럴 작정입니다."

 미리 이리의 말이 끝매듭을 지우기도 전에 개가 앞으로 쑥 나와서 말했다.

 "여보시오 가까운 양반, 자네와 나는 달라. 나는 흰빛인데 자네는 회색이 아닌가. 더 긴 설명을 들을 것 없네. 옛부터 자네 습관을 잘 알고 있어. 나는 이렇게 할 마음을 먹었다네. 자네같은 짐승은 먼저 껍질을 벗겨 놓고 화해를 하거나 말거나 해야지."

 개들은 일제히 이리에게로 덤벼들었다. 그리하여 이리는 죽고 말았다.

 

          # 농부와 여우

 산길은 험악했다. 한 농부가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그 때 한 마리의 여우를 만나 얘기를 걸었다.

 "여우아주머니, 왜 당신은 닭만 도둑질해 갈려고 하지? 난 당신의 하는 짓이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야. 아무도 없는 데서 만났으니까 말이지, 도대체 아주머니는 도둑질하는 것이 나쁜 일인 줄 모르시나? 점심때나 저녁때나 도둑질을 해먹고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까딱 잘못하면 닭장에 아주머니 가죽이 걸리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닭을 잡아먹는 일을 그렇게까지 애써서 할 것까진 없지 않느냐 말야"

 농부의 기나긴 얘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여우가 대답했다.

 "누군들 이런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줄 아십니까. 하루 세 끼를 마음놓고 먹지 못하는 신세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 것 같답니다. 아저씨는 내 사정을 모르시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겠죠.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가 아이들은 많지요. 이런 팔자니까 내 생활이 칼날같이 위험하다 해도 이 세상에 도둑질해 먹는 것이 나 뿐이라고 나무랄 수는 없잖아요?"

 "그런가요? 아주머니가 정말 거짓말장이가 아니라면 내가 아주머니의 그 절도죄를 변호해 드리겠어. 말하자면 정당한 벌이를 시켜 주겠단 말야.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집 닭장을 좀 지켜 달라는 거요. 닭 지키는 하인 밑에서 닭장에 들어오는 여우들을 쫓는 일을 해주구려. 여우들이 하는 짓은 여우아주머니가 제일 잘 알 테니까 가장 적임자 아니겠나? 그 대신 아주머니가 먹고 사는 일은 내가 책임지지. 도둑질을 안 해도 좋도록 말야."

 여우는 곧 농부의 말대로 닭 지키는 일을 맡기로 약속하였다. 농부의 집에 온 여우는 그 생활이 전보다 훨씬 윤택해졌다. 농부는 부자였다. 끼니 걱정은 당초에 없었다. 여우에겐 노동의 댓가로서 보수를 치루어 주었다.

 여우는 마음이 편했다. 먹는 것은 언제나 충분했다. 그리하여 여우는 살이 찔대로 쪘다. 그러나 나쁜 버릇은 가시지 않았다. 받아먹는 밥보다 훔쳐먹는 것이 더 맛이 좋았다. 그리하여 어느 그믐날 밤 농부의 닭을 훔쳐 먹다가 기어이 쫓겨나고 말았다.

 - 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 즉 마음 고운 사람은 어떤 고생이 있더라도 남을 속이거나 나쁜짓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쁜 버릇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남이 후하게 대접해도 배은망덕하기는 일반. 그리고 도둑의 버릇은 쉽게 가시지 않는 습관이다.

 

이반 안드레비치 끄르일로프 (1769~1844) 러시아의 풍자문학가이며 우화시작가. 끄르일로프는 육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시대부터 역경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시시한 일을 하면서 생계를 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에까쩨리나 여왕의 시대에는 그는 몇 편의 희극과 가극을 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후 각종 풍자잡지의 편집자로 다소의 수완을 보이다가 마침내 우화시작가를 천직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그의 최초의 우화시집은 1809년에 발행되어 비상한 성공을 거두었으니 그 후 그의 명성은 점차 높아졌다. 1820년대에는 당당한 명사가 되었다. 1812년부터 그는 공설도서관에서 29년간 근무했다. 청년시대에 관리, 귀족, 농사제도를 비난 공격한 끄르일로프는 고된 경험을 하고, 풍자작가의 길이 고난에 가득차 있는 것을 안 다음에는 여하한 정치적 싸움에나 문학적 논쟁에나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소극적이며 중립적인 친절한 방관자의 태도를 취하여 궁중의 애호를 받아 학사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황금의 중용>과 <자그마한 행동>을 구가하면서 쾌락주의자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냈다. 선례를 존중하는 그의 인생관은 매우 보수적으로 되었고, 상식과 무사주의의 입장에서 거의 일탈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지가 풍부한 그의 말은 관헌의 의심을 받아 검열 때문에 몇 편의 우화시는 개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5 편에 이르는 우화시 속에는 45 편만이 프랑스의 라 퐁떼느, 플로리앙, 독일의 겔레르트, 그리스의 이솝 등의 개작이다. 그러나 이 개작도 자작우화와 비교하여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러시아화되어 있다. 그의 우화시는 하나의 큰 풍속희극의 각 장면 같은 감이 있다. 동물의 세계를 그렸을 때나 인간의 세계를 그렸을 때나 끄르일로프의 우화시는 극적인 예리한 대화, 약동적인 장면과 간결한 수식을 가지고 있다. 끄르일로프의 인간 및 사건에 대한 판단 방법은 아부근성, 허영, 인간의 우둔성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마음속 깊이 간직한 명랑성과 상식을 잃고 있는 늙은 농부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끄르일로프의 모든 작품에는 이 전형적인 러시아 정신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