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세계

끄르일로프의 우화3) 이리와 뻐꾹새/ 친절한 여우

如岡園 2011. 11. 1. 12:10

          # 이리와 뻐꾹새

 "뻐꾹새야 잘 있거라"

 이웃집의 이리가 봇짐을 꾸려가지고 나오면서 나무 위에 점잖게 앉아 있는 뻐꾹새를 쳐다보고 하는 말이다.

 "이리아주머니, 어딜 가셔요?"

 "난 조용히 살 수 있을까 하고 여기 왔는데 못살겠어. 여기도 역시 사람들이 있으며 사나운 개가 있으니 어디 맘놓고 살겠니? 그놈들은 모두 심뽀가 나빠서 이 편이 천사라도 싸움 안할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아주머니는 어디론지 떠나시는 거예요? 참 아주머니 좋아하시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나의 행선지는 알카지아의 숲이란다. 그 숲속은 정말 훌륭한 곳이지, 거기 사는 사람들은 마음씨가 어린 양과 같이 순하디 순하니까 싸움이란 걸 모르고 살지. 거기는 이러나 저러나 천국이야, 우유빛 냇물이 고요히 흐르는......"

 "그런 곳이 세상에 있나요?"

 "있고 말고, 있다 뿐이야, 그 곳에서는 누구나 서로 정다워서 형제처럼 지내고 개들까지도 물거나 짖기는 커녕 남을 보면 꼬리를 흔들거든...... 그리고 이런 좋은 나라에 가서 산다는 건 얘기만 해도 흐뭇하잖어? 그럼 뻐꾹새야 잘 있거라, 우리만 그런 데로 이사를 가자니 섭섭하다만 이 곳에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살기보다는 딴판이니까 아니 갈 수 없잖아."

 "부디 몸조심하여 안녕히 가십쇼. 그런데 이리아주머니 그 전부터 가진 그 사나운 성질과 날카로운 잇빨은 여기 내버리고 가시는 겁니까? 가지고 가시는 겁니까?"

 "당치 않는 소리! 버리다니......"

 "정녕코 그러시다면 제 말씀을 명심해 주십시요. 아주머니는 거기 가서 가죽을 벗길 때가 올 것입니다."

 

 -성질이 나쁘거나 간악한 사람은 불평불만을 곧잘 털어 놓는다. 그런 사람에겐 어디를 가도 불만이 따르는 법. 그리고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간악한 것은 모두 씻어버려야 한다.

 

          # 친절한 여우

 어느 봄날 사냥꾼이 개똥쥐빠귀 한 마리를 쏘아 죽였다. 이 동물에게 생긴 재난은 그 개똥쥐빠귀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라 그의 어린 생명 세 마리에까지 미쳤다. 새끼들이 어미 없는 고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되는 이 갓난 새끼들은 먹지도 못하고 게다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불쌍한 어린 것들을 보고 어찌 맘이 편하겠소? 가슴이 미어지는 듯합니다."

 한 여우가 개똥쥐빠귀의 보금자리 맞은 편 바위 위에 앉아서 나무가지에서 놀고 있는 새들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며 한 말이었다. 

 "여러분들, 저 새끼들을 가만히 보기만 하면 되겠소, 이것들은 그냥 두면 굶어죽고 맙니다. 단 한알씩이라도 좋으니 먹이를 물어다 줍시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넣어 줍시다. 그것이 저 어린 것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 되며 추위를 면케하는 것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친절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소."

 그리고 여우는 뻐꾹새에게도 말하였다.

 "당신은 보아하니 한참 깃을 갈고 있군요. 이왕 빠질 것이니 몇 개라도 뽑아서 저 개똥쥐빠귀의 집에 넣어주지 않으렵니까?"

 다음에는 종달새에게 말하였다. 

 "종달새야, 너는 높은 하늘에서 곤두서고 바로서고 하면서 놀지 말고 저 아기들에게 줄 먹이나 좀 물고 오는 게 어때?"

 그리고 또 여우는 비둘기를 찾아갔다.

 "당신 아기들은 벌써 다 자랐지 않어? 인제 저희들끼리 있어도 모이를 주워 먹을 줄도 다 알테니 저 개똥쥐빠귀집에 들어가서 어미 노릇을 좀 해 보세요. 당신 아기들은 엄마가 곁에 없어도 하느님이 잘 보살펴 주실거요."

 제비와 꾀꼬리에게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보세요 제비들, 그 날쌘 날개로 벌레를 물어다 저 어미없는 애들에게 좀 먹여주시지요. 꾀꼬리아가씨들이 그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면 저 가련한 애기들의 마음은 진정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친절이라는 게 그 얼마나 좋은 건지 모릅니다. 우리 숲속에서 그런 친절을 베풀어서 가엾은 것들을 도웁시다."

 남에게 개똥쥐빠귀의 어린 새끼들을 도와주자고 부산하게 떠들며다니던 여우는 자기 굴로 돌아와 한잠 늘어지게 자고 나서 개똥쥐빠귀의 보금자리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그리고는 가만히 그것을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왼종일 다녀서 그런지 배가 몹시 고팠다. 세 마리의 개똥쥐빠귀의 새끼를 보고 있던 여우는 자기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개똥쥐빠귀의 새끼들은 너무나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턱대고 밖으로 기어나오다가 여우가 있는 바위 위에 세마리 모두 떨어져버렸다. 

 새끼 세마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자 여우는 번개같이 그 세마리를 모두 홀딱 잡아 먹었다. 지금까지 지껄이던 친절도 망각하고 자기 배를 채우려고 어린 생명을 셋이나 삼켜버린 것이다.

 

 -진정으로 친절한 자는 입으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베푼다. 공연히 남에게 '친절, 친절'하고 떠드는 사람은 대개가 말로만 친절한 사람이다. 실제로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이 '친절한 여우'와 같다고나 할까? 현금의 우리 사회현실, 특히 정치풍토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우화이다. 

 

끄르일로프가 택한 우화의 소재는 매우 광범위하다. 예를 들면 사냥개의 무리에 몰리면서 사냥개에게 열변으로 우정을 토로하는 이리는 러시아에 침입한 세기의 침략자 나폴레옹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그밖의 여우, 돼지, 암탉 등에 대한 우화시는 사회의 가지가지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끄르일로프는 당시의 사회의 실정을 묘사하려고 인간의 약점, 사회의 우스꽝스러운 습관, 정치적 실정을 조소했지만, 그러나 그는 항상 인간도덕의 옹호자를 자처했고 상식과 건전한 합리주의의 철학을 내세웠다. 그는 구체적, 정확, 현실적이었고 시치미떼고, 간결하고, 대담하게 우화를 말했으니 직재(直裁)한 사람이었다. 이 직재한 점, 그리고 순 러시아적 풍자, 기지, 문장의 스타일, 이러한 점들이 끄르일로프의 우화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