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구리와 황소
황소 한 필이 푸른 목장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개구리 한 마리가 뚱뚱한 황소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 개구리는 생각하였다.
(나도 저 황소만큼 뚱뚱해질 수 있다.)
이 개구리는 항시 남에게 지는 것을 극히 싫어했다. 개구리는 배에다 힘을 주어 힘껏 숨을 들이켰다. 차차 배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어때! 저 황소만큼 뚱뚱해졌어?"
옆에 있는 작은 개구리에게 물었다.
"아직 멀었어요."
그 모양을 유심히 보고 있던 작은 개구리가 말했다. 개구리는 다시 한 번 더 크게 바람을 속으로 들이마셨다.
"그럼 이만하면 됐지?"
"아직 황소만 하려면 어림도 없어요."
"이래도?"
"그럼요."
"이래도?"
"아직 멀었어요."
"이만하면 되겠지?"
"아까와 마찬가진 걸요."
큰 개구리는 한 번씩 크게 바람을 들이쉬고는 작은 개구리에게 물었다. 그러나 작은 개구리의 대답은 언제나 그 모양이었다. 큰 개구리는 있는 힘을 다 모아 배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배는 잔뜩 부풀었다. 이제는 뱃가죽이 늘어날대로 늘어나 그만 '펑' 소리와 더불어 터지고 말았다.
- 뱁새가 황새 걸음을 따르려면 가랭이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개구리가 뱁새와 같다고나 할까? 이런 일은 우리들의 눈으로 흔히 보는 일들이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마찬가지로 돈을 쓰는 거나 남의 동정을 받아온 사람이 온정을 베푼 사람과 같이 여유있는 생활을 하는 거나 모두 이 개구리처럼 결과는 뻔한 것이다.
# 개미
일찌기 보지 못한 굉장한 힘을 갖고 있는 개미 한 마리가 있었다. 이 개미는 보리 알 두 개쯤은 거뜬히 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용기가 대단해서 호걸이라는 소문까지 퍼졌다. 이 개미는 배추벌레에게도 겁 없이 덤벼들었고, 거미에게도 혼자 대항했다. 개미의 나라에서는 이 힘이 센 개미의 소문이 대단했고 보는 개미마다 입을 딱 벌리며 놀랬다.
지나친 칭찬은 언제나 이로운 것보다 해로운 것이 더 많은 법이다. 이 개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이 개미는 남의 칭찬이 무척 좋아서 결국 교만한 성질만 늘어갔다.
칭찬하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서 언제나 그 칭찬의 소리만 머리에 가득히 담아둔 이 개미는 그리하여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억센줄 믿게 되었다.
이제 그 교만은 밖으로 나가 힘을 겨눌 생각까지 유인했다. 하루는 농군이 끄는 짐마차에 올라타고 자랑스러운 듯이 으시대며 장터로 갔다.
장터에 간 그 개미는 무엇을 느꼈을까? 개미는 처음 생각하기를 불 난 곳에 사람이 죄다 모여들 듯이 제 둘레에 모여와서 억센 자기의 모습을 구경해 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죄다 각기의 일에만 열중할 뿐 한 사람도 자기를 바라보는 이는 없었다.
개미는 기가 찼다. 그리하여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나무잎을 끌어 당기기도 하며 입으로 물어뜯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딴 개미로서는 당하지 못할 만큼 힘이 드는 것까지 떠밀기도 했다. 개미는 땀을 방울방울 흘리며 힘에 겨운 짓을 다 해보았으나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으니 칭찬이란 기대하기마저 어리석은 노릇이었다. 이쯤 되고 보니 개미는 기진맥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피곤할대로 피곤했다. 기운이 다 빠졌다. 움직일 힘마저 다 잃었을 때 마침 짐마차 옆에 누워 있는 개를 보고 화가 치민 개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마도 이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맹추들 뿐인 모양이다. 그렇지? 벌써 한 시간 동안 내 재주와 힘을 보여 주었는데 한 사람도 그걸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그런 바보들이 어디 있어? 우리 개미의 나라에선 누구 하나 나를 모르는 개미는 없는데......."
- 옹졸하기 비할 데 없는 사고방식이다. 좁은 세계에 알려져 있는 이름을 온 세상이 다 알 것이라고 속단하는 옹졸이다. 이런 사람을 두고 '세상 넓은 줄 모른다'는 속담을 모두 아끼지 않을 것이다.
# 독수리와 거미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오르고 있었다. 코카사스산맥이 구름을 찌르며 솟아 있었다. 산맥의 꼭대기에 올라간 독수리는 백년도 더 늙은 나무가지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 봤다. 넓고 넓은 들판과 산이 눈 아래 즐비하게 깔려 있었다. 독수리는 한 눈에 세상이 다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멀리 아득하게 펼쳐 있는 넓디넓은 들판 가운데 구비구비 흘러가는 강이 보였고 이 편에는 숲과 목장에 꽃이 즐비하게 피어 봄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거칠은 카스피바다가 멀리 까마귀의 날개처럼 시커멓게 보였습니다. 제우스신이여, 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제우스신이여, 당신께서 나에게 주신 힘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높은 산정에 오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오를 수 없는 이 높은 산 위에서 온 세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다 볼 수 있게 해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때 독수리가 앉아 있는 나무가지에 거미 한 마리가 올라왔다.
"야아, 독수리야 너는 무척 떠벌리는구나, 그래, 나는 여기 있다마는 너보다 아랜줄 아니?"
독수리는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소리 쪽으로 고개를 추켜들었다. 거미 한 마리가 가지 맨끝에 그물을 치고 있었다. 마치 독수리에게 비치는 태양의 광선을 막아버린 것 같았다.
독수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거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거미야, 너는 어떻게 이처럼 높은 델 올라왔니? 날개도 없이 이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왔니?"
"기어 왔느냐고? 천만에 말씀, 그런 건 생각도 안해 봤어!"
"그럼 어떻게 올라 왔느냐 말이다."
"나는 네 몸에 착 달라붙어 왔지, 말하자면 네 날개가 나를 여기까지 실어다 준거야. 하지만 너가 없어도 좋아, 내 앞에서 이제는 잘난 체 하지 말아."
거미가 말을 미처 못다 했을 때, 세찬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리하여 거미는 산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 안이하게 얻는 행복은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남의 덕분으로 잘난 체 하는 인간, 그것이 문명사회에 있는 일부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끄르일로프의 우화시는 하나의 큰 풍속희극의 각 장면 같은 감이 있다. 동물의 세계를 그렸을 때나 인간의 세계를 그렸을 때나 끄르일로프의 우화시는 극적인 예리한 대화, 약동적인 장면과 간결한 수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 및 사건에 대한 판단 방법은 아부근성, 허영, 인간의 우둔성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마음속 깊이 간직한 명랑성과 상식을 잃고 있는 늙은 농부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끄르일로프의 모든 작품에는 이 전형적인 러시아 정신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당대의 유명한 서정적 풍자시인이요 러시아 시인 전기작가로 유명한 베른스키(1792~1878)공작이 말한 끄르일로프의 '냄새'는 이때까지의 러시아 문학의 온상이었던 귀족의 쌀롱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러시아의 '흙의 냄새'였던 것이다. 5천부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했던 당시의 시집 출판 사정에서 7만 5천부나 팔렸다면 경이적 사건에 틀림없으며 러시아 문학의 민중화는 끄르일로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언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사실 그는 이제까지의 우화시의 저급한 형식을 고도의 형식으로 끌어올렸지만 그의 용어는 다듬고 또 다듬은 말 대신에 소박한 민중의 말을 문학 표현의 수단으로 써서 성공한 것이다. 그는 민중이 즐겨 말하는 속담을 자기의 시 속에 많이 사용했고 그가 우화시 속에서 쓴 말은 그대로 속담이 되고 러시아 민중의 생활지혜가 되어 지금도 변함없이 살아 있다. 아니 장차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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