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마리의 비둘기
두 마리의 비둘기가 친형제처럼 다정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두 마리 중 어느 한 마리가 없을 때 남은 한 마리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처리하지 않고 꼬박 기다렸다. 그리고 어느 한 마리가 있는 곳엔 또 한 마리가 그림자처럼 따라 다녔다.
두 마리는 서로 기쁨도 슬픔도 반으로 나누어 가졌다. 그들에게 가끔 슬픈 일이 닥쳐 오더라도 괴로움을 극복하며 세월 가는 줄 모르게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헤어져 어디로 가버린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비둘기 중의 한 마리가 세상의 신기한 일들을 구경하며 '거짓'과 '참'을 구별하려고 공중 여행을 떠나려 했다. 그때 다른 한 마리의 비둘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딜 가려는 거냐? 온세상을 다 돌아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니? 나와 헤어지는 것이 좋아 그러느냐, 이 매정스럽게 차가운 놈아, 내사 어떻게 되든 괜찮지만 가만히 생각해 봐. 독수리나 매 같은 새나, 덫이나 사나운 폭풍이라든지...... 그런 여행의 위태로운 일들을 생각해 보란 말야. 그리고 또 부탁하고 싶은 것은 그런 먼 여행은 제발 봄이 오면 떠나는 게 어때? 지금은 먹을 것마저 구하기 어려울 때가 아니냐. 아아,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까마귀가 울면 흉한 일이 있다는데 제발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 있어요. 우리끼리 재미있게 지내면 그만이지 왜 어디 가겠단 말야? 네가 가고 없으면 나 혼자 집에서 덫이랑 매랑 번갯불이랑 그런 것들이 꿈속에도 자꾸 보여 밤낮 네 걱정만 하게 될 것이다. 하늘에 구름만 끼어도 내 사랑하는 동무가 지금 어디 있을까, 어떻게 지낼까, 병이나 걸리지 않았을까, 굶주리고 있지 않을까... 이런 걱정 때문에 못살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떠나려던 비둘기는 혼자 남을 비둘기의 마음이 가엾어졌다. 그러나 한 번 결심한 것을 그냥 백지화하기엔 아쉬움이 앞섰다.
"울지마라, 너와 헤어진다 해도 불과 사흘 안팎이야. 그보다 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보고 돌아올 께. 그 때는 둘이서 내가 본 세상야기를 하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지 않느냐, 넌 가만히 있어도 온갖 데를 다 구경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으냐 말이다. 며칠 동안만 어떻게 참고 기다려 다오."
남아 있어야 될 비둘기는 이제 말할 힘도 없었다. 둘은 서로 껴안고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세계여행을 떠난 비둘기는 있는 힘을 다해서 비행하였다. 비둘기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드넓은 바다였다. 그때 비를 만났다. 비는 번갯불과 우뢰를 수반하고 세차게 쏟아졌다. 공중에서 피할 데 없이 당황한 비둘기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때마침 마른참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우선 급한대로 참나무를 의지했지만 온 몸은 비에 젖어 달달 떨었다.
얼마 후 비는 멈췄고 햇볕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쨍쨍 비쳤다. 비둘기는 다시 희망을 얻어 여정에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이번엔 숲과 밀밭이 보였다. 비둘기는 쏜살같이 내려갔으나 그만 새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한참 동안 날개를 퍼덕이었다. 그 그물이 좀 낡아 살아날 구멍을 찾아내었다.
비둘기는 한쪽 날개와 한쪽 발을 다쳤다. 그러나 여행하기엔 그다지 불편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매 한 마리가 공중 높이 선회하고 있었다. 비둘기는 눈 앞이 캄캄했다. 매를 피해 죽을 힘을 다해 날아갔다. 그러나 매를 당할 수 없었다. 매의 발톱이 비둘기의 등에 닿자 커다란 날개에서는 찬바람이 일었다.
그때였다. 독수리 한 마리가 높은 공중에서 번개같이 매를 차갔다. 그리하여 연약한 비둘기는 두 번째의 화를 면했다.
비둘기에게 닥친 불행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불행은 언제나 다음의 불행을 이끌어들이는 모양이다. 다음의 사건은 철없는 아이들이 던진 사기조각에 당한 수난이었다.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그제서야 비둘기는 여행의 뜻을 꺾고 고향을 향했다. 부러진 날개와 삔 발목과 그리고 상처입은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남아 있었던 비둘기의 극진한 위로와 간호로 여태까지 겪은 고생은 잊어버릴 수 있었다.
- 외국여행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 하나가 있다.
"남의 땅에 머물 때 제 나라 그리운 줄 안다."
제 집이 싫어서 달아난 자가 남의 집에 머물면 제 집 그리운 생각이 앞서는 법이다.
# 원숭이
남의 흉내도 지혜롭고 좋은 것이라면 이점(利點)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흉내 치고 지혜롭거나 훌륭한 것은 없다. 결코 쓸데없는 흉내는 좋은 현상이 못된다. 그런 흉내는 그만 두는 편이 차라리 좋을 게다.
원숭이는 남의 흉내를 여실히 내는 네 발 달린 동물이다.
이 이야기의 무대는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사는 아프리카의 일대다. 울창한 숲 속에는 원숭이들이 나무가지에 떼를 지어 앉아 있었다. 그 나무 바로 아래에는 사냥꾼 한 사람이 그물을 뒤집어 쓰고 풀밭 위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있었다.
원숭이들은 그물을 뒤집어 쓴 사람의 하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거나 서로 눈을 껌벅하다가 조용히 소근대었다.
"저봐, 저 철없는 사람 좀 봐, 대관절 뭣한다고 야단법석이야. 나동그라지기도 하고, 몸을 폈다 굽혔다 하기도 하고, 또 손이나 발이 보이지 않도록 둥글둥글하게 몸을 움츠리기도 하고...... 저런 정도의 재주라면 우리가 훨씬 더 잘 할 거 아냐? 어디 우리도 저 사람의 흉내를 내보는 것이 어때? 재미 있겠지? 저 사람도 이제 지쳐서 돌아갈 때가 됐으니 가고 나거든 한 번 해 보자."
한참 후 사냥꾼은 안 보였다. 가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그물 뿐이었다.
"잘 됐다. 그물을 잊고 갔구나, 어서 한 번 흉내나 내볼까?"
원숭이들은 일제히 나무에서 내려갔다. 풀밭에는 커다란 그물이 원숭이를 위해 쳐 있었던 것이다. 원숭이들은 그물을 뒤집어 쓰고 곤두섰다가 나동그라졌다가 그물에 다리를 걸어 보다가...... 그리하여 깩깩 소리를 지르며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그물 주인은 나무 뒤에 살짝 숨어서 이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원숭이들이 그물에서 빠져나오려 했을 때였다. 그물 주인은 이제 됐다는 듯이 커다란 자루를 메고 원숭이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원숭이들은 와아! 하며 달려가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냥꾼은 원숭이를 모조리 사로잡고 말았다.
# 이리와 여우
여우는 재수좋게 숱한 닭고기를 만났다. 배가 터질만큼 실컷 먹었다. 그리고 남은 고깃덩어리는 두었다가 다시 먹기 위해 간직해 놓았다. 그리하여 마른 풀더미 아래 벌렁 누웠었다. 한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그때 비쩍 말라빠진 이리 한 마리가 홀쭉한 배를 안고서 가까이 오고 있었다. 여우의 곁에 이르자 대뜸 하는 소리가
"여우아주머니, 참 큰일났소. 종일 돌아다녀도 뼈다귀 하나 구경하지 못했소. 이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개란 놈은 심술을 부리지요. 또 양치기는 낮잠도 안 자지요. 정말 기가 막혀서 자살이라도 하고 싶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려구?"
"아니야, 정말 시장해서 죽겠소."
"그렇다면 딱하구려, 마른 풀이라도 먹겠소? 풀이라도 좋다면 나누어 드릴께!"
여우는 감추어 둔 닭고기엔 일체 언급을 피하고 있었다.
이리는 풀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고기가 먹고 싶은 판이었다.
이리는 결국 여우한테서 위로만 받고 주린 배를 움켜쥔채 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 남의 것을 욕심 낼 것도 없거니와 제거라고 너무 틀어안고 있어도 나쁘다. 서로 정당히 주고 받을 줄 아는 것이 참다운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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